코로나19가 일상을 위협한 지 3년째가 됐다. 사실상 전 세계적 유행이었다. 사망자만 1500만명을 넘겼고 후유증을 갖게 된 이는 훨씬 더 많다. 여러 나라가 변이 속에서도 일상으로 복귀하는 수순을 밟고 있지만 전염병이 남긴 변화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경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그저 기분이 아닌 안전문제가 된 건 놀랄만큼의 문화적 변화다. 마스크 착용이 예의바른 일처럼 여겨지고 낯선 이들과의 접촉빈도도 훨씬 더 줄어들었다. 유럽 국가들처럼 인사차 스킨십으로 친밀감을 표현하던 문화권에서도 변화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영화계에서도 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준비하는 이가 많았다. 드라마와 액션, 멜로와 스릴러를 막론하고 일상화된 전염병을 소재로 관객 내면의 무엇을 자극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특히 상업영화 1번지 할리우드에선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제작자들이 코로나 시대의 영화를 준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락다운 213주 포스터

▲ 락다운 213주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마이클 베이가 제작한 코로나 소재 영화

할리우드 대표 흥행감독이자 제작자인 마이클 베이도 빠질 수 없다.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 <아일랜드> <트랜스포머>시리즈로 이어지는 베이의 연출작 대부분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 흥행을 거듭했다. 자연히 천문학적 수익이 뒤따랐다. 덕분일까. 그는 <아일랜드> 이후부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제작에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COVID-23 변이 바이러스로 시민들이 집 안에 갇혀 지낸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락다운 213주>는 베이가 제작한 코로나시대의 블록버스터다. 영화 속 LA는 무려 213주째 락다운 상태다.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마비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필 같은 공산품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도시를 자유롭게 나다니는 건 소수의 면역자들 뿐이다. 면역자에겐 신분을 증명하는 노란 팔찌가 주어지고 대다수 시민은 집에 갇혀 산다. 자유를 박탈당한 꼴이 교도소나 다름없지만 갇혀 지내는 시민들은 제 사정에 만족할 밖에 없다. 전염병이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하고, 열이 나는 이들은 Q존이라 불리는 수용소로 보내져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점점 더 공포분위기로 내몰리지만 락다운 상황에선 저항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락다운 213주 스틸컷

▲ 락다운 213주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코로나 시대의 사랑

영화는 이 같은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야기다. 면역자인 니코(K. J. 아파 분)는 격리된 사람들에게 물건을 배달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도 친구도 만날 수 없는 신세지만 니코는 소중한 단 한 사람을 바라보며 모든 걸 견딘다. 같은 도시에 사는 여인 새라(소피아 카슨 분)다.

니코는 돈을 모아 새라와 함께 안전한 도시로 벗어나는 꿈을 꾼다. 격리를 한 뒤 코로나 대응이 완화된 도시로 함께 떠나면 같이 살 수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매일 새라의 집을 찾아 통화를 하고 물건도 건네지만 새라의 손 한 번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적잖이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니코와 새라의 감정이 관객에게 전해질 무렵 영화는 예고된 위기국면으로 접어든다. 새라의 이웃과 할머니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살아나온 사람은 없다는 Q존으로의 강제이송을 피하기 위해 니코와 새라는 탈출을 준비한다.
 
락다운 213주 스틸컷

▲ 락다운 213주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재미에만 초점 맞춘 전염병 영화

영화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국면을 극적 장치로 활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방역당국의 조치가 어떤 고민 하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그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조금도 언급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극 후반부에 방역당국을 이끄는 수장이 제 입으로 음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황당한 사연을 줄줄 털어놓는다. 사실상 서사나 주제의식을 포기한 채 극적 재미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 선언이 당당하게 느껴진다기보단 변명처럼 여겨진다는 점에 있다.

사랑을 위해 폭압에 맞선다는 단순한 갈등구도도 문제다. 니코와 새라에게 준비된 드라마는 허술하여 관객의 공감을 사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신인급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이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기 일쑤다.

영화는 다른 축에 경험 많은 배우 데미 무어가 연기하는 부잣집 마나님 파이퍼 그리핀을 배치한다. 주연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고육책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드라마는 병약한 그녀의 딸에 대한 모성애나 바람난 남편(브래들리 휘트포드 분)에 대한 혐오 정도로 단편적인 것뿐이다. 정부로부터 내쫓기는 액션영화 가운데 데미 무어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폭은 황당할 만큼 제한적이다.
 
락다운 213주 스틸컷

▲ 락다운 213주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콜레라 시대보다 못한 코로나 시대의 사랑

결국 영화는 시종일관 내달리다 이도저도 아닌 채로 끝맺고 만다. 방역당국의 수많은 공무원이 어떤 내적 갈등을 겪었는지, 인간성을 말살하는 조치에 대응하는 이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에 대해선 단 한 장면도 내어주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성에 있어 시간과 노력이 드는 캐릭터와 드라마는 철저히 배제한 인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 밀어놓은 태도가 참담하게 느껴진다.

개봉 직후 평단에선 냉혹한 평가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처음부터 OTT 서비스 납품을 겨냥하고 준비된 작품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할리우드에선 전염병과 관련한 작품 여럿이 연달아 제작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개중 적잖은 수가 <락다운 213주>와 비슷한 설정이다.

전염병 속에 피어나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의 오랜 소재였다. 콜레라 시대의 묵직한 사랑을 그린 장 폴 라프노의 <지붕 위의 기병>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창궐은 인류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이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관객 내면에 일으킬 파문 대신 자극적으로 콘텐츠를 클릭하도록 이끄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진 않은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만 못한 코로나 시대의 사랑들이 민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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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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