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교체됐지만 한일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1965년 박정희 정부 시절 한일 협정을 잘못해서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사진이 발굴되었다.

JTBC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뉴스룸>에서 한일 협정 당시 뒷거래 정황이 담긴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당시 정권 실제였던 박준규와 김종필 등이 A급 전범과 야쿠자 두목을 요정에서 접대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보도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지난 25일 한일 협정 당시 뒷거래 정황이 담긴 사진을 보도한 오승렬 JTBC PD를 서울 상암 JT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오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사료 거래 플랫폼에 올라왔다 내려가"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 JTBC

 
- 지난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뒷거래 정황이 담긴 사진을 입수해 보도하셨잖아요. 반응이 어떤가요?
"이게 현대사 기사잖아요. 그러니 이 기사가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으려면 배경 지식도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이런 기사들 반응이 좋기는 쉽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취재하면서도 그걸 감안하긴 했는데 그래도 받아 써주는 데라던가 온라인 포털 반응도 꽤 좋았고요. 처음에는 솔직히 이게 화제가 될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상당히 뜨거워서 꽤 만족스러웠어요."

- 아무래도 시점이 광복절 이틀 후잖아요. 맞춰서 한 건가요?
"원래 15일에 맞춰서 하려고 했었는데 조금 밀리고 좀 더 보강 취재해서 수목에 내자고 해서 17, 18일에 나갔습니다."

- 사진은 제보받으신 것 같은데, 처음 사진을 제보 받았을 때 어땠어요?
"이걸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긴가민가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쪽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사료를 볼 줄 아는 눈도 없고 지식도 많이 없어서 과연 이분이 주장하는 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이 좀 없었어요. 그런데 제보자분 같은 경우는 상당히 현대사회에 많이 박식한 분처럼 보였고요. 사실 당연한 게 현대사 사료를 모으려면 사료를 볼 줄 알아야 되고 그러려면 지식이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분이 사료를 많이 모으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박식한 분이었고 제가 이걸 받아 공부도 하고 전문가 한홍구 교수님과 전문가 검토도 받다 보니까 이게 충분히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사진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 그러면, 처음에 사진 보고 이런 게 있었나 보다고 가볍게 생각하셨나요?
"가볍게 생각했다기보다 이런 거였어요. '이 정도면 다 알려졌을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상당히 큰 얘기잖아요? 박정희 정권의 거물들이 접대하잖아요. 이 정도면 현대사 전문가들은 알 만한 내용일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던 건데 사진으로 남아 있는 건 한홍구 교수님도 보고 굉장히 흥미롭다고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 이게 없었는지 아니면 있었는데, 공개가 안 된 건가요?
"사실 그것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상을 해 볼 수 있겠죠. 중앙정보부에 남아 있었다면 계속 공개를 안 했을 수도 있죠. 이 사진 같은 경우는 일본 쪽에 가 있었잖아요. 제가 기사에 쓰고 싶었는데 못 썼던 건데 이게 사진 원본이 아니고요. 지금도 사진 원본은 일본에 있어요. 사진 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팔려고 사료 거래 플랫폼 어딘가에 올린 거예요. 근데 제보자분이 이걸 보고 내가 사야겠다고 하면서 이미지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거죠. 근데 바로 글이 그게 내려갔대요. 그러니까 지금 누가 가졌는지를 몰라요."

- 그러면 제보자는 원본을 돈 주고 산 게 아니에요?
"네. 원본은 지금 일본 어딘가에 있어요."

- 박정희 정권이 일본 극우 세력과 야쿠자 두목을 한국 요정에서 접대한 거잖아요. 왜 이들을 접대했을까요?
"공식 정치인은 아니지만, 박정희 정권에게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귀빈이었던 거예요. 이게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한데요. 일단 사진에 나왔던 두 일본 사람들이 그냥 깡패나 시정잡배는 아니었어요. 고다마 요시오는 일본 내에서도 지금의 일본 현대정치사까지 굉장히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흑막이었고요. 아주 힘 있는 인물이었어요.

또 그 당시에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긴 한데요.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해서 박정희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상당히 일본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이나 태도 같은 거를 지녔었다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일본 측 인사들은 한국에서 자랐거나 재일교포예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아요. 이들이 한일 협정에 미친 영향은 비사와 정사를 좀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긴 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아베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와 당시 자민당 부총재인 오노 반보쿠를 뒤에서 부추겨서 한일 협정 맺도록 부추긴 인물들로 알려져 있어요."

- 그러면 정치계의 엄청 큰 인물이었겠네요?
"어마어마했던 인물입니다. 거의 지금 일본 현대 우익 정치를 만든 사람 중의 한 명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이러나저러나 굉장히 굴욕적인 장면이기는 하죠."

- 일본 야쿠자 하면 조폭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닌가요?
"조직폭력배가 맞아요. 근데, 이게 조금 애매한 게 있어요. 혹시 <범죄와의 전쟁> 보셨어요? 반달이에요. 고다마 요시오에 대한 설명을 해드릴게요. 이 사람 소재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까지 쓸 정도로 되게 전설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인데요. 주로 음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정사가 아니고 비사나 회고록 같은 데에 많이 나오는 사람이에요. 정치 깡패라고 하죠.

우리나라도 김두한, 이정재처럼 정치깡패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김두한, 이정재는 사실 그냥 깡팬데 정치판에 발을 디딘 정도잖아요. 하지만 고다마 요시오 같은 경우는 당시 일본 총리대신을 선출하거나 일본 자민당을 창당하는 데까지 크게 관여한 인물이고요. 마약이나 밀거래 같은 것 통해서 부를 많이 쌓았고요. 현대 일본 우익 정치의 사상적, 제도적 틀을 만들 정도로 유력한 인물이었고 기시 노부스케와는 감옥 친구예요. 오노 반보쿠가 당시 부총재였었는데 그에게 호통 쳐서 한일 협정 맺게 만든 사람이에요."

- 고다마 요시오는 A급 전범이라고 나오는데, A급 전범이면, 그만큼 권력이 있었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전에도 아마 흑막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말씀드렸지만 반쯤 깡패라고 봐야 될지 그냥 깡패라고 봐야 될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구체적인 행적이나 이게 자세히 드러나 있진 않아요. 일단 A급 전범으로 기소 됐는데 CIA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1960~1970년대에 계속 한일 관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흑막 속의 인물이 되는 거죠."

- 그러면 야쿠자는 어떤 인물이에요?
"마치이 히사유키라고 하는 인물인데 그 당시에 일본 한 야쿠자 조직 큰 거 한 10개 꼽으면은 그 안에 들어가는 큰 조직의 수장이었고요. 그리고 또 재일교포였어요. 한국 이름은 정건영인데요. 이 사람은 더 고다마 요시오보다 조금 더 순수 야쿠자에 더 가깝고 정건영이 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김두한이나 이정재 정도의 정치깡패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죠."

"사진에 적힌 '국사', 굉장히 우익적인 표현"
 
 오승렬 JTBC PD

오승렬 JTBC PD ⓒ 오승렬 제공

 
- 보도 보니까 김종필이 고다마 요시오에게 술 받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되게 모욕적이지 않나요?
"맞아요. 그게 바로 사진의 힘 같은 거긴 한데 우리가 그런 비사 같은 것들은 꽤 알려져 있어요. 저 사람들이 한일 협정의 흑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막강한 권세를 누렸던 것들은 알려져 있기는 한데요. 김종필 씨 하면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고다마 요시오에게 술 받고 있단 말이에요. 그게 바로 일본 측 우익 세력과 제3공화국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는 굴욕적인 한 컷이 아닐까 싶거든요."

- 그 요정 사진을 고다마 요시오에게 보내잖아요, 왜 보냈을까요?
"그건 일종의 접대하고 난 후에 기념 기념사진 같은 거예요. '아 우리 잘 놀았습니다'라면서 기념사진 준 거거든요 그것도 일종의 접대의 마지막 의전 중 하나였을 수 있죠."

- '국사'라고 써 있는게, 극우 세력이 좋아하는 거라고 나오는데요. 국사 의미가 뭔가요?
"그것도 되게 중요한데요. 국사라는 게 나라국에 선비 사자죠. 그런데 이 선비 사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선비지만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를 더 의미하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군국주의적인 표현, 군인 굉장히 우익적인 표현이에요. 나라의 사무라이 그러니까 뜻을 보자면 나라 위해 목숨과 충정을 바치는 인물이란 표현인데요."

- 깡패 아닌가요?
"맞아요 깡패들인데 스스로는 나라의 사무라이인 거죠. 그러니까 나라 위해 목숨과 충정을 바치는 우국지사, 헌신하는 인물이다는 걸 정건영, 고다마 요시오 이런 깡패 정치 깡패들이 주로 굉장히 즐겨썼던 표현이고 그걸 정확히 국사 요시오 선생이라고 써서 보냈다는 건 박종규도 그 단어의 뉘앙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한 곳에 썼던 거죠.

- 요정에서 접대받은 극우 세력과 야쿠자 두목이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고 화랑대에도 올랐어요. 사열하는 건 정상들에게 하는 거 아닌가요?
"정확히 맞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의전인가 궁금하잖아요. 육사에 사실 문의해서 그 사열이 어떤 사람들이 왔을 때 사열을 할 수 있는지 예우 표를 받았거든요. 근데 이 정도 의장대의 예우를 받는 건 말 그대로 해외 정상급예요. 그러니까 해외 원수 혹은 전직 원수 아니면 그 바로 밑에 의전 서열들 있잖아요. 이 정도가 사열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지금도 그 대상이 많지 않아요. 이게 지금 기준이에요.

근데 하물며 그 시절 육사는 지금 같은 육사도 아니잖아요. 군부가 집권하던 시절인데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었고 모종의 예비 권력 집단이기도 했단 말이에요. 근데 고다마 요시오나 마치이 히사유키는 정식 직함 가진 사람도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냥 흑막에서 권력 행사하던 정치 브로커랑 야쿠자 두목이죠.

여기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뭐냐면 그 기사 맨 처음에 나오는 검정 차량이 있어요. 고급 승용차가 아니고요. 캐딜락 리무진인데 이거 박정희 대통령 의전 차량이었던 걸로 보여요. 그러니까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국빈들이 방한할 때 청와대가 제공한 차량으로 알려져 있어요."

- 완전 국가 정상에게 의전하는 거네요? 이해가 안 가는 게 국가 정상도 아닌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솔직히 일본 총리는 기분 나쁠 수도 있잖아요.
"사실 그 연결고리를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엄청나게 유력한 인물들이었고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둘 다 굉장히 힘이 센 흑막이었죠. 그리고 한일 협정에서도 큰 공을 세워 이렇게까지 극진히 대접하는 것 같다는 거죠."

- 일본 정부가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거기서부터는 저의 지식 범위를 넘어서는 추론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쉽게 말하기 쉽지 않죠. 그러니까 얘네가 흑막이었고 일본 실제로 총리라든가 일본 정부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긴 했는데 그렇게 어떤 공식 파견 급의 행동이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제 수준에서는 추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사진이 더 있을 가능성 있겠네요?
"이번처럼 직접적이고 좀 노골적인 사진은 없었지만, 사진은 분명히 더 있습니다. 꽤 많이 더 있을 거예요. 근데 그 제보자분 얘기에 따르면 사진을 가진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는 영원히 세상에 안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하거든요. 이제부터는 원본들이 세상에 드러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죠."

- 국정원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국정원들이 현대사 사진 자료 같은 거 그 숨겨 놓고 있는 경우 제가 이거 전에도 알고 있는 경우들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니까 제가 볼 때는 국정원이 아직도 더 많은 사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때의 한일 관계가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방금 하신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인데요. 이게 옛날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시는 분들은 익히 잘 알겠지만, 1965년 한일 협정이 지금의 한일 관계 틀을 만든 시작이에요. 그러니까 그전까지 한일 관계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죠. 바로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완전히 단절 상태에서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국교 맺은 거긴 한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한일관계 모든 문제가 그때 잘못한 거죠. 위안부, 강제징용 이런 것들은 다 1965년 한일 협정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가지고 지금 치고받고 계속 싸우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옛날 얘기가 아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 관계에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던 거죠. 이 사진은 그 첫 단추가 왜 잘못 끼워졌는지를 아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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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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