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8억 달러(역대 3위)와 월드와이드 19억 달러(역대 6위)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2021년 12월에 개봉했기 때문에 2021년 영화로 분류된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올해 개봉한 <쥬라기월드3>가 9억 8400만 달러,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9억 5400만 달러로 10억 달러 고지를 넘지 못해 올해 최고 흥행기록은 14억 달러를 돌파한 <탑건: 매버릭>이 보유하고 있다.

사실 <탑건:매버릭>의 대흥행은 이변에 가깝다. <탑건>의 속편 제작은 지난 2012년 <탑건1>을 연출했던 고 토니 스콧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오랜 시간 표류하고 있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재한 톰 크루즈와 더욱 발전한 할리우드의 기술이 더해지면서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4배가 훌쩍 넘는 성적을 기록하며 공룡과 슈퍼히어로들을 제치고 2022년 최고의 흥행영화로 등극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탑건>의 히어로는 단연 톰 크루즈다. <탑건> 전까진 북미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미남배우였던 톰 크루즈는 <탑건>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했다. 하지만 <탑건>에는 톰 크루즈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보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가 또 있었다. 매버릭의 라이벌이자 속편에서는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까지 역임한 아이스맨을 연기했던 발 킬머가 그 주인공이다.
 
 <탑건>은 외래어표기법상 '톱건'으로 읽어야 하지만 실제로 '톱건'이라고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탑건>은 외래어표기법상 '톱건'으로 읽어야 하지만 실제로 '톱건'이라고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주)리틀빅픽처스

 
톰 크루즈 못지 않은 카리스마 내뿜던 배우

LA에서 태어나 만 17세의 나이에 줄리어드 학원 연극과를 최연소로 입학한 발 킬머는 1984년 영화 <특급비밀>에서 록가수를 연기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 킬머는 아직 신인 티가 채 벗겨지지 않았던 1986년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에서 아이스맨을 연기하면서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탑건>은 세계적으로 3억 5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1986년에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탑건> 이후 인지도가 급상승한 발 킬머는 <윌로우> <나를 두 번 죽여라> 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도어즈>에서는 전설적인 록스타 짐 모리슨을 연기했다. <트루 로맨스>와 <리얼 맥코이> <툼스톤>에 출연하며 착실히 필모그라피를 쌓던 발 킬머는 1995년 '월드스타'로 도약할 수 있는 두 작품을 만났다. 바로 검증된 히어로 영화 <배트맨 포에버>와 마이클 만 감독의 범죄스릴러 <히트>였다.

하지만 <배트맨 포에버>는 <배트맨1, 2>를 연출했던 팀 버튼 감독 대신 조엘 슈마허 감독이 투입되면서 3억 3600만 달러의 흥행에도 영화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히트> 역시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 대결에서 발 킬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발 킬머는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처럼 슈퍼스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발 킬머는 < 닥터 모로의 DNA >와 <세인트> <이집트의 왕자> 등을 통해 스타배우로 무난한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사실 연기 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촬영에 자주 늦고 일정을 바꾸는 등 감독 및 스태프들과 마찰을 자주 빚는 배우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배트맨 포에버>의 조엘 슈마허 감독과 < 닥터 모로의DNA >를 연출했던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은 공개적으로 추후 자신의 영화에 발 킬머를 캐스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03년 <실종>, 2004년 <블라인드 호라이즌> 이후 인지도가 급격히 하락한 발 킬머는 점점 메이저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줄어 들었고 2017년에는 후두암 투병 중임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발 킬머는 후두암 수술과 투병 후에도 <솔져스 리벤지> <블랙머니>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고 올해는 <탑건: 매버릭>에서 36년 만에 아이스맨을 연기하며 오랜만에 메이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미 국방부가 적극 지원한 항공액션영화
 
 톰 크루즈의 <탑건> 시그니처 포즈는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톰 크루즈의 <탑건> 시그니처 포즈는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 (주)리틀빅픽처스

 
198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플래툰>과 <풀 메탈 자켓> <람보>처럼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거 제작됐다. 하지만 베트남전은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이 패했던 몇 안 되는 전쟁이었고 미군은 자신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베트남전이 영화를 통해 자주 언급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군이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탑건>은 달랐다. 미 해군 최상위 1% 전투기 조종사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시설을 배경으로 한 데다가 런닝 타임 내내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항공액션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엔 미군이 통쾌하게 승리한다는 결말까지. 제작사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미 국방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철저하게 미국 중심적인 항공 액션영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눈이 즐거운 액션영화를 만난 관객들도 <탑건>에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이처럼 <탑건>은 북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저 멀리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다. 국내에서 1987년 연말에 개봉한 <탑건>은 서울에서만 27만 관객을 동원했고 당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톰 크루즈는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함께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것처럼 당시 F-14 파일럿을 꿈꾸던 공사 지원자가 급격히 늘었는데 실제 한국엔 F-14 전투기가 도입되지 않았다.

CG사용을 최대한 지양하고 실제 항공촬영으로 완성한 <탑건>의 액션장면들도 대단하지만 영화 <탑건>을 성공으로 이끈 또 하나의 주역은 바로 음악이었다. 특히 두 주인공의 사랑이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흘러 나오는 'Take My Breath Away'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주제가상을 받았던 명곡이다. 참고로 이 노래를 만든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지오 모로더는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만들기도 했다.

현지 시간을 기준으로 1986년에 개봉했던 <탑건1>과 올해 공개된 <탑건: 매버릭> 사이에는 무려 36년의 시간 차가 있다. 이는 주인공 톰 크루즈가 <탑건>이 일부 관객들로부터 신나는 오락영화가 아닌 미 해군을 홍보하기 위한 우익영화라고 인식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건> 속편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10년이 넘는 준비 끝에 2022년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 <탑건: 매버릭>이 완성됐다.

톰 크루즈 친구의 아내로 출연한 맥 라이언
 
 구스의 아내를 연기했던 맥 라이언(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3년 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구스의 아내를 연기했던 맥 라이언(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3년 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 (주)리틀빅픽처스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직장상사와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탑건>에서도 훈련생도인 매버릭이 생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항공물리학 전문가 찰리 교수(켈리 맥길리스 분)와 사랑에 빠진다. 특히 찰리 교수가 매버릭에게 "내가 당신에게 빠졌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화끈한 액션영화 <탑건>을 순식간에 달달한 로맨스 영화로 만들었다.

아이스맨 역의 발 킬머와 줄리어드 학원 연극과 동문인 켈리 맥길리스는 1985년 해리슨 포드와 함께 영화 <위트니스>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탑건>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배우로 탄탄하게 입지를 다진 맥길리스는 1988년 조디 포스터에게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피고인>에서 강간사건의 담당검사 캐서린 머피를 연기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맥길리스의 커리어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이다.

매버릭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지막 비행을 아이스맨과 함께 했지만 사실 영화 내내 함께 했던 파트너는 바로 안소니 에드워즈가 연기했던 구스였다. 구스는 영화 중반 사고로 생을 마감하지만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구스의 아들 브래들리 브래드쇼(마일스 텔러 분)가 '루스터'라는 TAC네임을 가진 파일럿으로 <탑건:매버릭>에 등장한다. 구스를 연기한 에드워즈는 의학드라마 < ER >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마크 그린을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탑건>에는 톰 크루즈와 발 킬머 외에도 훗날 스타로 성장하는 배우가 둘이나 더 출연했다. 쿠거의 후방관제사로 잠깐 등장하는 배우는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였고 구스의 아내로 출연한 배우는 1980~1990년대 '로맨스 여왕' 맥 라이언이었다. 단역이었던 팀 로빈스에 비하면 맥 라이언은 그래도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조연이었는데 <탑건: 매버릭>에 출연해 관객들의 향수를 적셨던 발 킬머와 달리 맥 라이언은 속편엔 출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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