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밤하늘의 별들.

밤하늘의 별들. ⓒ envato elements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온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며 한눈에도 아름다운 별무리 사진을 찍어왔다.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선물이라며. 좀처럼 별을 볼 수 없는 대도시의 적막함과 대비를 이룬 산골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은 잊고 지내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제였다. 보고 있는 동안 깜깜했던 내 가슴에도 별 하나, 반짝 떠오르는 것 같았으므로.

이제는 너무 오래돼 지명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도 않는 그곳으로, 그해 여름 우리는 소위 MT라는 걸 떠났었다. 가을에 올릴 노래동아리의 첫 공연 연습을 위한 MT였기에 산 좋고, 물 맑으면서 사람들의 방해가 없는 곳이라야 했다. 북과 기타 소리가 매일같이 울려댈 테고, 거기다가 아직 채 완성되지 못한 수상한 노래들을 주야장천 부를 테니 인적이 드문 곳이면 더 좋을 터였다.

사흘 치의 식량과 노래 악보와 각자가 갈아입을 옷이며 소소한 잡화까지 더해지니 짐은 꽤나 무거워서 가다 쉬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마음이 맞는 선배들과 떠나는 여름날의 MT는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의 열기도 잊게 할 만큼 신나는 일이었다. 어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내게는.

꽤 폭이 넓은 물길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곳에 텐트를 치고 서둘러 장비를 정비한 다음, 식사 준비를 했던 거 같다. 요즘에야 물만 부으면 되는 캠핑용 밀키트나, 간편식이 대세라지만 예전에야 어디 이런 것이 있었던가. 이고 지고 온 소중한 먹거리들 속엔 며칠 분의 쌀과 감자와 양파, 심지어 된장과 고추장까지 있었으니 그걸 메고 산길을 올라온 남자 선배들이 새삼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선배,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라면 끓여 먹으면 어때요? 오느라고 너무 힘들었잖아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콧수염을 길러 산적이라고 종종 불리던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가시나! 첫 끼니부터 라면 먹으면 노래 연습은 어찌할라고?"

자취 경력 4년을 자랑하는 선배의 진두지휘 아래,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풀고 감자를 듬뿍 넣은 다음 누군가의 어머니가 챙겨주신 돼지고기도 넣어 고추장찌개를 끓여 든든한 식사를 마쳤었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느라 거의 체력과 정신단련에 가까운 수련회만 참석해오던 내게 이날 선배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었던 한 끼의 밥은 참 소중한 경험이자 새로운 시대를 뚜벅뚜벅 신념 가득한 걸음으로 걸어가야겠다는 확신의 양식이 돼 주었다.

"야들아~하늘 한번 봐라, 와~"
 
 밤하늘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 누군가가 아끼는 보석들을 흩뿌려 놓은 듯, 그렇게 늦여름 산골 밤하늘의 별은 어두운 주변을 온통 등불처럼 밝히고 있었다.

밤하늘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 누군가가 아끼는 보석들을 흩뿌려 놓은 듯, 그렇게 늦여름 산골 밤하늘의 별은 어두운 주변을 온통 등불처럼 밝히고 있었다. ⓒ envato elements

 
설거지를 하고, 노래 연습에 매진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위는 이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도시와는 달리 산골엔 더 일찍 밤이 찾아온다는 걸 모를 리 없었으면서도 노래 연습에 열중한 나머지 우리를 감싸며 짙어지는 어둠을 빨리 알아채지 못해 저으기 당황했었다. 허둥지둥 모닥불을 겨우 피우고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데 갑자기 한 선배가 "야들아~하늘 한번 봐라, 와~" 이러는 거였다. 밤하늘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 누군가가 아끼는 보석들을 흩뿌려 놓은 듯, 그렇게 늦여름 산골 밤하늘의 별은 어두운 주변을 온통 등불처럼 밝히고 있었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이렇게 비만 내리는 거야
나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만이 이 밤도
저 비 되어 나를 또 울리고
아름다웠던 우리 옛일을 생각해보면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나의 꿈은 사라져 가고
슬픔만이 깊어 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나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만이 이 밤도
저 비 되어 나를 또 울리고
아름다웠던 우리 옛일을 생각해보면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나의 꿈은 사라져 가고
슬픔만이 깊어 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가사

여행스케치가 1989년 발표한 앨범 속 '별이 진다네'의 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던 그날의 정경은 세월이 흘러도 왠지 쉬 잊히질 않았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이고 코끝에 닿은 초록빛의 풀 내음에 젖어, 밤벌레의 노래와 무논에서 울리는 개구리의 합창을 들으며 별을 보았던 우리의 시간을, 마치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이 노래의 전주는 맑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 그대로를 담아 시작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어지는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라는 가사는 고왔던 한 시절이 지고 난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얘기해 주고 있었기에 말이다.

그날, 하늘에 빛나는 별을 쳐다 보라며 취기 어린 목소리로 얘기했던 선배는 우리의 첫 공연과 이후 수차례 이어진 앙코르 공연 후, 민중과 함께 하는 삶을 치열하게 살다 거짓말처럼 별들의 세상으로 훌쩍 가버렸다. 선배의 부고를 들은 날 나는 담당 프로듀서에게 부탁해 이 노래를 맡고 있던 프로그램의 오프닝 곡으로 선곡을 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잠깐 머무르는 것일 뿐이라'는 선배를 위한 헌사도 함께 덧붙여서.

너무 젊은 나이에 하늘로 돌아간 선배는 자신의 유골을 지리산에 뿌려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어쩌면 지리산의 밤하늘엔 유난히 순정했던 선배를 닮은 별 하나가 선배가 잘 치던 꽹과리의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여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로도 종종 늦여름이 되면, 문득문득 어느 산골 맑은 시내 곁에 둘러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화음을 맞춰보던 우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앞만 보지 말고 별도 보고, 해도 달도 헤아리며 살라던 선배의 순한 눈동자가 생각나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 그렇게 잊히다 생각나기를 반복한 세월이 한참이다. 선배를 추모하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8월이 다 가기 전에 선곡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고.

그러다가 다시 아이가 찍어 온 사진 속 별들이 새롭게 아픈 기억 하나를 데리고 왔다. 다시 '별이 진다네'를 들어야 할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사십 년 우정을 이어 온 유일한 '남자 사람 친구'의 소식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후 나무 아래 아내의 유해를 묻어주었다는 소식.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나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 아내의 부고 소식에 나 또한 속울음을 울 수밖에 없었다. 죽음은 들이닥친다. 예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다. 별이 일순간에 뜨고 지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음에 우리는 가끔 나아가야 할 항로를 잃기도 한다.

내 친구의 가슴에서 져 버린 가장 빛나던 별 하나도 오래전 떠나간 선배처럼 어느 하늘로 옮겨 가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꿈도 사라져 가는 것 같고, 슬픔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테지만 우리는 안다. 별이 지고 다시 뜨는 일이 온 우주의 섭리인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마음도 언젠가는 그렇게 다시 순환하게 되리라는 걸. 하여 지금까지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친구를 위해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어 보라 권해볼 참이다. 슬픔을 정점으로 끌어올려 줄 노래를 들으면 그 끝에는 다시 평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별이 지면 한 계절도 조금씩 이울며 안녕을 고하는 것 아닐까. 이제 여름의 끝에 서서 떠나 보냈던, 혹은 떠나보내야만 할 것들을 위한 헌사를 함께 곱씹어 보자. 우리 가슴속에서도 뜻하지 않게 별이 지기도 하며 밤하늘의 별들은 더 찬란해질 내일을 위해 오늘의 빛을 거둔다. 진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떠오르고 피어나기 위한 마중물일지도 모르겠다.

하늘 아래 지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음이니 어디에선가 다시 무엇이 되어 만날 시간을 기약하며, 기꺼이 떠나 간 그들을 위해 노래 부르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개인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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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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