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창제가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부산에서 진행했다. 지난 19일, 부산문화회관은 아창제가 열려 성대한 행사를 진행했다.

아창제가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부산에서 진행했다. 지난 19일, 부산문화회관은 아창제가 열려 성대한 행사를 진행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지난주 중부지방을 강타한 비 소식으로 전국이 떠들석하다. 최근 며칠은 잠시 소강상태를 이루었지만 서울을 벗어나 처음으로 지방에서 펼쳐지는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래 '아창제')의 특별 연주회가 열리는 날에도 서울과 부산에는 약간의 비소식이 들렸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창작음악제인 '아창제'가 부산문화회관과 공동 주최한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는 지난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성료됐다. 이번 공연은 그동안 공모에 선정된 작품들이 일회성으로 연주되는 것에서 벗어나 안정된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고자 특별 연주회로 열린 것이다. 

아창제는 2007년에 시작한 이래 올해는 14회째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만 개최돼 수도권을 벗어난 관객에게 창작관현악곡을 선보일 기회가 적은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지방으로 나서는 첫 투어를 통해 부산뿐 아니라 경남 지역에 아창제와 국악창작관현악곡을 소개하고 창작음악에 대한 대중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기획됐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는 지금까지 선정된 수많은 작곡가들 중 다섯 명을 엄선했다. 최근 10년 이내 국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배려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각 곡들에겐 하나로 모아지는 공통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했다. 다섯 번이 서빙되는 진수성찬이 차려졌지만, 같은 맛은 배제했다. 간장과 고추장이 기본이라도 메인 요리를 다르게 가져가는 형식으로 연출했다.

다섯 곡은 "국악에 충실하라"는 뜻에서 유민희의 '마음의 전쟁'(2013)으로 시작해 지금은 잊혀진 고구려 현악기인 향비파가 이끄는 김현섭의 '학을 탄 선인'(2017), 이란성 쌍둥이 같은 25현 가야금이 잔잔하게 울리는 이재준의 '별똥별'(2020), 비 내리는 장면을 타악기로 재연한 이예진의 '기우'(2019), 진도씻김굿을 부산시립합창단과 두 소리꾼이 완벽하게 완성시킨 이정호의 '진혼'(2017)까지 이어진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 행사가 종료된 후에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 행사가 종료된 후에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세기에 여성작곡가로 박영희가 있다면 21세기에는 이예진이 있다."

공연 중간에 사회자로 나선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네 번째 곡을 만든 이예진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를 '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신있게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예진 작곡가는 '제1회 국제박영희작곡가상'(2016)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작곡가를 꼽으라면, 보통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이나 진은숙(1961~)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박영희(1945~) 작곡가는 197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브레멘음악대학고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정식교수가 됐다. 나중에는 부총장까지 역임하면서 그 도시에 음악을 헌정하기도 했단다. 박영희 작곡가의 작품의 초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곡들이 많았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러 소리를 들으면서 곡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원숙한 현대음악의 기법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21세기가 주목하는 여성 국악작곡가'로 소개된 이예진의 연주곡은 '기우'이다. 비가 내리길 바라는 '기우제'의 마음을 담은 이 곡의 진심이 전해졌을까. 실제로 연주가 진행된 동시간대에 서울에서는 시간당 2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내리기 직전, 먹구름이 자욱한 하늘을 표현한 타악기(김인수)의 능수능란한 리듬도 돋보였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거문과와 가야금의 연주자조차 자신의 악기를 손으로 두드리는 타악기법에 동참했다. 어쩌면 이번에 선보인 방식은 그동안 영화 효과음을 사물로 재현하는 사운드 아티스트이 역할에 가깝다면 맞을지 모르겠다. 

이 중에서 네 번째 곡으로 선정된 비를 내리게 하는 염원을 담은 '기우제'에서 따온 네 번째 곡인 이예진의 '기우'는 비가 오지 않았을 때, 비를 내리게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타악과 관현악의 협주곡인 이 곡은 비가 내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무엇보다 가야금과 거문고가 어떻게 비를 내리게 하는지 집중해서 들어보면 좋겠다. 

"작곡은 노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예진 작곡가는 충분한 노동을 거쳐 이 곡을 완성시켰다. 타악기를 연구하면서 쓴 이 곡은 한 편의 논문과 같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소장하고 싶은 악보로, 흔히들 '소장각'이라고 하지 않나요?" 

좌중을 쥐락펴락한 윤중강 사회자는 이예진의 곡을 이렇게 소개했다. 또한 무대에 놓은 타악기를 보고 관객들은 사물놀이를 떠올린다면 이내 실망할 것이라 장담했다. 윤 평론가는 흥, 신명, 박수가 터져나오는 타악을 예상한다면 이내 실망할 것이라며, 이곡에서는 타악기도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사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공연이 열리고 객석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이예진 작곡가를 직접 만나 이번 무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들어볼 수 있었다. 
 
 아창제 공연을 마치고 이예진 작곡가는 객석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아창제 공연을 마치고 이예진 작곡가는 객석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2019년도 아창제 발표 이후, 아창제 첫 지방공연인 부산에서 다시 재연되는 것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재연 자체가 너무 귀한 기회라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커요. 연주 전에는 부산에서 처음 만나는 김종욱 지휘자님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를 가장 기대했었고요. 도시의 분위기가 워낙 활기차고 멋지다보니 부산에서 뵙게 되는 관객분들은 어떤 분들일지 마음이 설랬습니다."
 
- 2019년 아창제 연주와 이번 공연에서 느끼시는 차이점이 있을까요? 오늘 연주는 어떠셨나요?
"2019년 아창제 연주는 관현협주 버젼의 한국 초연이었습니다. 제1회 국제박영희작곡상 대상 수상 이후의 첫 연주라, 3년 전 외국에서 사온 선물의 포장을 뜯는 기분이었습니다. 선정에 감사하는 마음과 한국 초연에 설레는 마음, 각 섹션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전개되어야 하는 작품이기에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연주에 잘 표현될 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죠. 관객들의 관심도 "해외 수상 작품"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하는 자리처럼 부담이 느껴졌어요.

이번 연주에서 제가 '기우'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판타지가 실현됐습니다. 지휘와 악단의 연주, 협연, 관객 등 모든 것이 완벽했어요. 김종욱 지휘자님께서 얼마나 공을 들여 작품을 들여다보셨는지, 악단의 모든 분들이 주법 하나 하나의 표현에 집중하여 거대한 화학 반응을 표출하였는지 연주를 들으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사실 첫 리허설 전에 현대 주법을 동영상으로 확인 요청하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전날 말로 설명을 드렸는데, 다음날 직접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셨더라고요. 정말 감격스러웠죠. 그분 뿐만 아니라 악단의 다른 분들도 모두 같은 열정을 가지고 계실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김인수 협연자 역시 밤낮 가리지 않고 작품의 템포, 표현 방법, 리듬 교체 등 굉장히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어 저와 '기우'가 좀 더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표정, 제스쳐 등 음악 외적인 표현 역시 음악 안에서 제가 딱 원한 그만큼의 정도로 해주어 소리와 이미지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었어요. 연주 자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습니다.

제 감동의 하이라이트는 관객분들이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많은 분들께서 얼마나 자세하고 열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작품의 부분 부분을 세세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들이 저의 의도와 일치해서 정말 깜짝 놀랐죠. 제가 만난 부산의 관객분들은 통찰력 있고 열정적이고 전달력이 아주 강한 분들이었습니다. 관객이 많이 오신 건 아니었지만 일당백의 감상력과 표현력을 가진 감사한 관객입니다. 이렇게 2022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는 김종욱 지휘자님, 김인수 협연자님,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분들, 최고의 수준을 가진 부산 관객분들의 꿀조합으로 제가 '기우'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판타지를 실현해주었습니다. 제 평생 잊지 못할 연주가 될 겁니다."
 
- 앞으로 아창제에 기대하는 점 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지금처럼 국악관현악을 위한 창작의 통로를 열어 주셔서 작곡가들이 국악관현악 작품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국악관현악기법에 관한 워크샵을 조심스럽게 희망해봅니다. 국악관현악 작품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국악작곡을 전공한 작곡가에게조차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작곡가들이 좋은 작품을 위해 용기낼 수 있도록 워크샵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작품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재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부산 공연이 많은 지역 악단으로 하여금 아창제 선정 작품을 활발하게 재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with 아창제' 시리즈가 각 지역에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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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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