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로호>에 출연한 배우 김연교.

영화 <파로호>에 출연한 배우 김연교. ⓒ 스터터엔터테인먼트

 
'안녕하세요 내일 인터뷰 하는 김연교입니다 :) 여의도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인터뷰 전날 낯선 번호로 온 문자, 그리고 19일 오후 약속된 시간보다 10여 분 일찍 그는 장 우산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임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로호> 속 미리는 속을 알 수 없는, 그래서 주인공 도우(이중옥)의 내면을 끝내 무너뜨리는 인물이다. 그 미리를 연기한 배우 김연교는 다소 차분한 표정으로 동시에 조금은 상기된 말투였다.
 
영화 <파로호>는 치매를 앓는 노모를 모시는 한 남성이 결국 살인자로 의심받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린다. 허름한 모텔을 운영하며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는 이 남성에게 다방 종업원 미리가 다가가고, 거짓말과 각종 의뭉스러운 행동으로 자극한다.
 
그녀의 정체
 
대중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김연교에게 <파로호>는 처음 경험하는 극장 개봉작이기도 하다. 상업 영화 <탐정 리턴즈>나 <백두산>에 단역으로도 출연했다지만, 친구들조차 그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량이었다. "저를 한번 영화에 찾아보라 미션을 주곤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뭔가 영화 외적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기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라며 그가 운을 뗐다.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으로 몰린 시민 등 2만여 명이 수장된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화천의 호수 파로호는 그 자체로 묘한 기시감을 준다. 영화에서도 남성의 노모를 비롯해, 키우던 강아지, 동네 친구 등이 차례로 파로호 주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 남자를 자극하는 미리를 위해 김연교는 오디션을 봤고, 결국 합류할 수 있었다.
 
"<보이스>라는 영화에 취업 준비생으로 잠깐 등장했는데 엉엉 우는 장면만 찍으면 되는 거였다. 그때 연출부였던 분이 <파로호> 인물 담당이었더라. 그분 인연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다. 그간 전 차분하거나, 사연이 있어서 우울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미리는 그런 면이 있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면, 밝아지는 모습도 보여야 하는 넓은 스펙트럼의 인물이었다. 잘하고 싶어서 촬영 때 많이 긴장하며 찍었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볼 땐 그때 제 모습이 너무 보여 부끄럽더라. 감독님께서 정말 섬세하신 분인데 후반 작업이 정말 치열했겠다 싶더라."
 
노인들과 중년의 주민 사이에 다방 종업원 미리는 좀 동떨어져 보인다. 영화에서 그 존재가 도우의 상상 속 인물인지 모호하게 처리되지만, 김연교는 "연기하는 배우로선 당연히 실존하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했다"라며 말을 이었다.
 
"감독님이 쓴 것과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소속감을 갖고 싶어하지만 가져 본 적 없는, 늘 불안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유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중심에 두고 접근했다. 감독님도 그 동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을 말씀하시더라. 일단 다방 종업원 분들 관련 자료를 찾는데 제가 살아온 삶과 많이 달라 보였다. 저와 멀어지면 연기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 제 자신에게서 미리의 모습을 찾았다.

저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했던 시절이 있었고, 불안했던 때가 있었다. 제 곁에 있어줄 한 사람을 바랐던 때도 있었다. 그 상황을 떠올리며 준비했던 것 같다. 저도 그 무렵 모든 걸 끊고 떠나고 싶었거든. 미리는 정말로 떠나버린 사람이라 생각했다."

 
 영화 <파로호>의 한 장면.

영화 <파로호>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오래 연기하기를 꿈꾸다
 
끊고 떠나고 싶었다는 감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아마 그만큼 사랑했고 치열한 뒤에 따라오는 무언가 아닐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품었던 애정을 말했다. TV 드라마를 테이프로 녹음해 대사들을 옮겨 적으며 외우던 기억, 엄마와 사극 말투로 대화하며 놀던 기억들은 현재 김연교의 선택에 영향을 줬다. 세 번의 대학입시에 서로 다른 전공을 경험했던 그는 결국 돌고 돌아 본인이 가장 설레고 좋아하는 자리에 서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다. 수능이 끝난 뒤 하고싶으면 하라는 말에 곧바로 입시를 준비해 08학번으로 한 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가 한 달 정도 지나 자퇴했다. 몸도 많이 안 좋았고,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좀 더 준비하고 도전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 도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해엔 엉뚱하게 성악과에 지원했다가 다 떨어졌다.
 
제가 친구들도 인정하는 박치에 음치였는데 그때 뮤지컬 선생님이 재능이 있다는 말을 하셨거든. 스스로도 노래 못하는 건 알지만 공부가 싫었던 거다. 그 다음 해에 점수맞춰서 일어일문학과에 가게 됐다. 솔직히 점수 맞춰서 간 셈이다. 아버지께서 제가 언어 쪽 전공하길 원하셨거든. 나름 재밌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취업 준비하는데 연기할 때가 생각나더라. 한 6개월만 해볼까 했던 게 지금까지 하게 됐다."

 
연극 <안나라수마라> <로스쿨생 모놀로그> 등으로 무대 연기를 거쳤고, 2017년 단편 <용이를 찾습니다>로 난생 처음 영화제도 경험했다. <파로호>는 내심 연기가 좋고 재밌어 버티던 김연교의 마지막 보루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연기를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하던 때였다고 한다.
 
"<파로호>를 찍은 이후인 2021년에 그 고민을 많이 했다. 일이 정말 없었거든. 그만 하겠다는 말에 누군가가 물었다. 연기를 너무 오래 해서 지친 건지, 아니면 기다리다가 지친 건지. 완벽하게 후자였다. 연기를 그만하겠다는 이유가 연기를 하지 못해서라니. 제가 조급했더라. 전공도 여러 번 바꿨고, 그러면서 포기하는 게 제 결핍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연기하면서 일단 5년을 채워보자 생각했는데 잘 안되니 또 포기하려는 거다. 제가 뭐라도 될 줄 알았나보더라. 연기를 오래 한다고 생각하면 조급할 일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제 생각을 바꿨다. 전에는 일 없으면 불안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연기 외적인 제 삶을 건강하게 지내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유산소 운동도 하고, 모닝페이지도 쓰고, 책도 읽는다. 최근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글도 쓰면서."

 
 영화 <파로호>에 출연한 배우 김연교.

"저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했던 시절이 있었고, 불안했던 때가 있었다. 제 곁에 있어줄 한 사람을 바랐던 때도 있었다. 그 상황을 떠올리며 (영화 <파로호>를) 준비했던 것 같다." ⓒ 스터터엔터테인먼트

 
실제로 김연교는 소화라는 필명으로 본인의 에세이집을 냈다. 알고 보니 지금의 이름도 연기를 하면서 받은 예명(본명은 김세정)이라고 한다. <조각난 마음이 나는 싫으니 내가 마음을 준다면 고스란히 다 주리>라는 제목에서 언뜻 그의 일부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난해엔 동료들과 단편영화도 한 편 연출했다. 연기를 멈추기엔 너무도 그 마음과 재능이 아까울 정도다.
 
"참 막연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 자연스러운 배우가 되고 싶다.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사극도 너무 하고 싶다. 어렸을 때 엄마 없을 때 한복을 입고 있을 정도였다(웃음). 요즘엔 글 메일링 서비스도 하고 있다. 구독자는 거의 없다(웃음). 글을 쓰며 마음을 회복한다."
 
그 마음이 또 어떤 작품에 고스란히 담기게 될까. <파로호> 이후 계속 연기할 이 배우의 이름을 기억해두어도 좋겠다.  
파로호 김연교 독립영화 보이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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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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