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외국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한국에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생기고 멋진 배우들이 차고 넘친다. 이제는 충분히 '아저씨'로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됐음에도 여전히 멋진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저렇게 멋진 배우들과 얼굴이 바뀐 채로 살아봤으면'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스타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얼굴이 바뀐다면 좋은 점보다는 불편한 점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먼저 자신과 가까이 지내왔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모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대신 살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할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성형수술이 발달해 최대한 특정 인물의 얼굴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의 얼굴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라면 평생 원수처럼 살아온 FBI요원과 테러리스트의 얼굴이 바뀌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액션영화 연출의 대가 오우삼 감독과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멋지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가 만난다면 충분히 두 배우의 얼굴이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1997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하드보일드 액션 <페이스 오프>였다.
 
 <페이스 오프>는 오우삼 감독이 홍콩 감성을 듬뿍 담아 만든 할리우드 영화였다.

<페이스 오프>는 오우삼 감독이 홍콩 감성을 듬뿍 담아 만든 할리우드 영화였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연기와 흥행파워 겸비했던 90년대 슈퍼스타

1954년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존 트라볼타는 70년대 중반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트라볼타는 1977년 전세계에 디스코 열풍을 몰고 온 <토요일 밤의 열기>와 유명 뮤지컬 원작의 <그리스>에 출연하며 단숨에 젊은 미남배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가수를 겸할 정도로 노래 실력도 뛰어나 1978년 올리비아 뉴튼 존과 <그리스>의 OST를 함께 부르며 빌보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졌던 트라볼타는 1989년 가족코미디 <마이키 이야기>를 통해 부활에 성공했다(브루스 윌리스가 마이키의 목소리 연기를 했던 <마이키 이야기>는 갈수록 흥행성적이 떨어졌음에도 3편까지 제작됐다). 트라볼타는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1995년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겟 쇼티>에 출연하며 다시금 스타배우의 명성을 회복했다.

1996년 오우삼 감독의 <브로큰 애로우>에 출연했던 트라볼타는 1997년 오우삼 감독의 세 번째 할리우드 연출작 <페이스 오프>까지 오우삼 감독과 인연을 이어 나갔다.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FBI요원 숀 아처와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의 1인2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친 <페이스 오프>는 8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2억4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99년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씬 레드 라인>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트라볼타는 1999년 <장군의 딸>, 2001년 <스워드피쉬>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로 명성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90년대 만큼 흥행작을 자주 배출하지 못했지만 2007년 <헤어스프레이>로 2억 달러, 2008년 목소리 출연한 애니메이션 <볼트>로 3억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트라볼타는 2010년 <테이큰>의 피에르 모렐 감독이 연출한 <프롬 파리 위드 러브> 이후 이러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트라볼타는 지난 2020년 <제리 맥과이어>와 <황혼에서 새벽까지> 등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1991년에 결혼해 30년 동안 부부생활을 이어갔던 아내 켈리 프레스톤과 사별한 후 2년 넘게 작품활동을 쉬고 있다.

미국에서 펼쳐지는 홍콩식 액션의 향현
 
 <페이스 오프>에서 존 트라볼타(왼쪽)와 니콜라스 케이지는 나란히 1인2역을 소화하며 열연을 펼쳤다.

<페이스 오프>에서 존 트라볼타(왼쪽)와 니콜라스 케이지는 나란히 1인2역을 소화하며 열연을 펼쳤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등 홍콩 누아르의 걸작들을 연출하며 아시아 최고의 액션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오우삼 감독은 1993년 장 끌로드 반담 주연의 <하드타겟>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오우삼 감독은 1996년 <브로큰 애로우>까지 흥행시키며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그의 독창적인 연출스타일을 좋아했던 관객들로부터 "그저 할리우드 스타일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오우삼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세 번째 영화 <페이스 오프>를 통해 영화 속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실제로 <페이스 오프>에서는 오우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쌍권총 액션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중요한 장면에선 여지 없이 비둘기가 날아다닌다. 특히 두 주인공이 마주보며 총을 겨누는 장면은 <첩혈쌍웅>에서 지겹게 봤던 장면이다. 홍콩 누와르의 팬이라면 <페이스 오프>가 오우삼 감독의 작품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페이스 오프>의 백미는 나란히 1인2역을 연기한 두 주연배우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열연이었다. 캐스터 트로이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 집요하게 캐스터를 쫓는 유능한 FBI요원 숀 아처를 연기한 트라볼타는 영화 중반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악당 캐스터와 얼굴이 바뀐다. 캐스터의 얼굴을 한 아처는 폭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감옥에 투옥되지만 곧 자신의 얼굴을 한 진짜 캐스터의 면회를 받는다.

<더 록>,<콘 에어> 같은 전작들에서 정의로운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니콜라스 케이지는 <페이스 오프>에서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로 변신했다. 눈을 크게 치켜 뜨고 입을 벌리면서 웃는 장면은 영락 없는 빌런이다. 수술을 통해 아처의 얼굴이 된 캐스터는 동료들과 가족들을 속이며 아처 행세를 한다. 특히 (아처의 얼굴을 한) 캐스터가 딸 제이미(도미니크 스웨인 분)에게 추근대는 남자를 혼내주는 장면은 은근히 통쾌하다.

당초 <페이스 오프>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로 기획됐다. 아무래도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얼굴로 완벽하게 변한다는 것이 90년대 중·후반의 의학기술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우삼 감독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겠다고 고집했고 결국 <페이스 오프>는 리얼리티는 다소 떨어지지만 오우삼 감독의 '홍콩영화 갬성'이 물씬 풍기는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다.

인터넷 밈의 주인공 된 <노트북> 감독
 
 감독으로 더 유명한 닉 카사베츠의 독특한 웃음은 한국에서 인터넷 밈으로 크게 유행했다.

감독으로 더 유명한 닉 카사베츠의 독특한 웃음은 한국에서 인터넷 밈으로 크게 유행했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조차도 하나 밖에 없는 혈육 폴럭스 트로이에게는 상당히 관대하다. 폭발물 전문가인 폴럭스는 자기 이름으로 비행기를 빌려 FBI의 추격을 자초한 '헛똑똑이'로 영화 중반 캐스터의 얼굴을 한 숀 아처에 의해 추락사한다. <페이스 오프>에서는 조금 멍청하게 나왔지만 폴럭스를 연기한 알렉산드로 니볼라는 상당한 미남배우로 지난 2001년 <쥬라기 공원3>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다. 

<페이스 오프>에서 숀 아처의 아내 이브 아처는 아들 마이클이 캐스터에 의해 살해 당한 후 캐스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남편 숀과의 사이가 소원해진다. 숀과 캐스터의 얼굴이 바뀐 것을 알 리 없었던 이브는 한 동안 숀의 얼굴을 한 캐스터와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캐스터의 얼굴을 한 숀이 집에 찾아와 의사인 이브에게 혈액형을 통해 가짜를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면서 늦게나마 진짜 남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동생 마이클의 죽음 이후 불량청소년이 된 숀과 이브의 장녀 제이미는 숀의 얼굴을 한 캐스터와 맞담배를 피면서 가까워진다. 제이미를 겁탈하려던 남자를 훔씬 두들겨 팬 캐스터는 제이미에게 호신용칼을 선물해 주는데 제이미는 영화 후반부 이 칼로 캐스터의 허벅지를 찌른다. 제이미를 연기한 도미니크 스웨인은 2006년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 영화 <알파 독>에 출연했지만 크게 대성하지 못하고 B급영화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등에서 영상을 보면 중간중간 허탈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뜬금없이 어떤 민머리 남성이 등장해 독특한 소리로 웃는 장면이 밈처럼 삽입된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는 <페이스 오프>의 한 장면으로 닉 카사베츠가 연기한 디트리히 하슬러가 (캐스터의 얼굴을 한) 숀 아처와 농담을 주고 받다가 보여준 웃음이었다. 디트리히 역의 카사베츠는 배우보다는 <존 큐>와 <노트북>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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