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이 밝아온다. 서구 백인 연주자와 청중이 꽉 들어찬 클래식 연주회장 풍경이다. 그런데 정 가운데에는 동양계로 보이는 청년 한명이 클라리넷을 들고 서 있다. 누가 봐도 확 튀는 출현이다. 객석에선 그가 등장하자 박수를 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계속 쭈뼛거리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거나 이미 한 인사를 연거푸 다시 하곤 한다.

슬슬 연주회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흐름이 끊어지는 중이다. 객석이 술렁거리고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지속된다. 그러던 어느 순간, 또 다른 동양계 청년 한명이 무대 뒤에서 홀연히 등장해 클라리넷을 든 이를 챙긴다.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듯하다. 비로소 연주가 시작되려 한다. 그 순간 화면은 암전되고 가운데에 자막이 새겨진다. '녹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1_1. 어느 발달장애 가족의 일상을 엿보다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다시 화면이 바뀌면 2008년이라는 표시가 뚜렷하다. 세 사람이 등장한다. 도입부에 나왔던 두 청년, 은성호와 은건기,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손민서다. 가족의 일상은 형제 중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형 은성호를 중심으로 모든 게 흘러간다. 성호는 마치 태양계의 중심인 항성 같은 존재다. 어머니 민서는 자폐를 가진 아들 성호를 전력을 다해 돌보는 중이다. 성호는 세수하는 것도 면도도 옷을 입는 것도 모든 걸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모든 역할을 어머니가 감당해내고 있다.
 
그런 실태를 생생하게 관객에게 각인시키려는 듯 카메라는 가족의 일상을 전면적으로 초반부터 파헤친다. 어머니 민서는 촬영 중인 스태프 앞에서 성호를 대신해 인터뷰하랴 수발을 들랴 정신이 없다. 동생 건기는 웃는 표정이지만 어머니가 형에게만 주력하는 게 탐탁찮아 보인다. 민서는 건기에게 우리가 유일한 가족이니 내가 없으면 형을 책임져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주입하다시피 하지만 건기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할 뿐이다.
 
모자가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하지만 성호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승객에게 기웃거리며 호기심을 보이고 접촉을 거듭한다. 어머니가 애써 말려보지만 그의 행동은 그칠 기미가 없다. 여자 승객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게임기를 가진 이에겐 뭘 하는지 보여 달라며 거듭 요구한다. 손을 잡는 등 신체접촉도 서슴없이 행한다. 촬영 카메라가 따라다니니 승객들도 대강 분위기를 짐작해 큰 문제가 일어나진 않지만 만약 성호가 장애를 앓는다는 걸 다른 이들이 모른다면 시비가 붙거나 하기 딱 좋은 아슬아슬한 상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이런 상황이 하루종일 거듭되니 어머니 민서는 곧 진이 다 빠지고 만다. 나중에 어머니는 성호를 데리고 (아마 성호가 어릴 적부터 신세를 져왔을 법한) 장애인 보호시설을 방문해 아들의 앞날을 상담해본다. 시설을 운영하는 신부는 지금처럼 가족이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의 한계를 지적한다. 민서는 수긍하지만 과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1_2. 평행선을 달리며 심화되는 가족 사이의 갈등
 

이윽고 평소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단정하게 정장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를 맨 성호의 음악회 장면이 근사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새 2015년으로 변해 있다. 7년의 세월이 훅 지난 것이다. 흰머리가 제법 는 민서와 성인이 된 두 아들이 한군데에 있다. 하지만 성호가 여전히 자폐 상태라는 건 변할 리 없다. 그리고 건기는 예전에는 푸념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소리 높여 규탄하는 모양새다. 그는 사사건건 어머니 민서와 다툰다. 뒤질세라 민서는 건기에게 형을 돌봐야 한다고 절반은 사정, 절반은 의무감을 강권한다. 건기는 차라리 자신이 자폐로 태어났다면 좋았겠다며 울분을 토로한다. 그런 뿌리 깊은 불화를 목격한 후 카메라는 건기의 현재에 대해 인터뷰해나가기 시작한다.
 
2016년, 2017년... 시간이 퇴적되어가는 것에 비례하듯 가족 간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간다. 상황이 심각해져 가는데도 여전히 민서와 건기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린다. 어머니는 변함없는 신념으로 장애인 아들을 보호하는 중이다. 나날이 힘이 부치고 애로가 적지 않지만 단독 연주회를 여는 등 성호의 재능은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음악활동 외의 모든 부분을 가족이 곁에서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나마 건기가 함께 살 때는 잠시라도 동생에게 형을 맡길 수 있었건만 이제는 온전히 24시간을 성호와 밀착해 있어야 하니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다.
 
동생 건기는 어머니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 진저리를 치며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반추한다.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던 집에서 어머니의 관심과 자원은 거의 형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런 선택과 집중의 결과는 둘째에 대한 방치에 가까운 방임으로 이어졌다. 대학 등록금부터 하나하나 벌어가며 충당한 파란만장한 경험담과 함께 자신은 꿈을 무엇 하나 펼쳐보지 못한 설움을 건기는 토로한다. 어릴 적엔 형의 연주와는 다른 깊은 맛이 있다는 평가를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에게 직접 들었건만 그는 지금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아직 이십대인데도 그렇게 격정을 드러낸 건기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이가 들어 보인다. 민서가 어떻게든 가족의 화합을 꾀해보지만 건기는 결국 자신도 어머니처럼 형의 수발을 들라는 것 밖에 뭐가 더 있냐며 폭발하곤 한다.
 
건기의 방황과 고민은 깊어져 간다. 젊은 나이에 여러 차례 운수 지지리도 없는 일들을 여럿 겪었건만 여전히 그에겐 곤란한 사건이 거듭 터진다. 그래도 아플 때 찾는 건 가족이라고 병문안을 온 어머니와 형과의 만남 후 가족 간의 갈등은 조금은 누그러졌는지 그는 형 성호의 러시아 연주회에 어머니 대신 동행한다. 그동안 그렇게 가족 간의 불화와 늘 챙김을 받기만 하는 형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동생이기에 과연 별 탈은 없을까 걱정하게 될 관객들 앞에 영화의 마지막 이십여 분이 흐른다. 과연 두 형제, 그리고 어머니를 포함한 이 가족의 카메라에 담긴 십여 년은 어떻게 결착을 짓게 될까?
 
2_11년의 세월이 갈무리되는 과정의 방법론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녹턴>의 제작과 연출,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은 정관조 감독은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 은성호, 은건기, 손민서 세 가족을 기록한 결과물로 <녹턴>을 세상에 선보인다. 방송 피디 출신인 감독은 2017년 8월, SBS 스페셜 2부작으로 방영되어 화제를 모으며 한국독립PD상을 수상했던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 참여 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버전의 극장용 영화를 추가편집으로 완성했다.

방송용 버전이 시간 연대기 순으로 가족들의 애환을 시청자들의 공감에 맞춰 풀어냈다면, 영화화된 버전은 조금 더 감독의 작가적 시선과 호흡이 느껴지는 편집을 취한다.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접근 가능한 경로를 갖고 중층적인 면모를 짙게 드러낸다.
 
2_1. 장애 소재 영화로 <녹턴> 읽기
 
영화를 소화하는 첫 번째 경로로는 역시나 장애 소재 영화로 보는 시각이 우선될 것 같다. 최근 종영을 맞이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전의 인기와 함께, 주인공 우영우가 가진 장애 형태를 그대로 연상케 하는 이 영화 속 은성호의 음악적 재능과 장애인으로서의 일상이 아무래도 관심을 끌 테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지장이 꽃피긴 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인 집중력에 기반을 둔 특수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픽션과 현실의 둘은 통하는 바가 제법 있으니.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는 발달장애 3급으로 일정한 주변의 조력이 있다면 일상생활을 비장애인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영위할 수 있는 정도로 분류된다. 물론 지능이나 등급과는 무관하게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는 케이스나 상황에 따라 적응에 천차만별 지장을 갖긴 하지만. 현실의 은성호는 2등급으로 보다 더 중증에 속한다. 간단한 활동은 가능해도 장애가 있다는 게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수준이고 항상 돌봄이 필요한 상태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서도 우영우 변호사와 1등급 발달장애인이 함께 있지만 우영우가 1등급 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묘사된다).
 
최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드라마로 인해 조명되면서 때맞춰 개봉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애 관련 영화로 분류될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와는 비교 불허인 현실의 발달장애 당사자 묘사가 충실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화의 핵심적 갈등의 축으로 장애인인 가족 구성원 부양과 돌봄으로 인한 비장애인 가족의 고통과 갈등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실 그대로인 내용은 드라마 속 캐릭터가 판타지를 가미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와 비교해 충분히 유용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2_2. 음악 영화로 <녹턴> 듣기
 

다음으로는 음악영화로 분류되는 접근이 <녹턴>을 즐기는 두 번째 방법론이 될 테다. 은성호는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다년간 오케스트라와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처음에는 장애인 연주자들과 실력 경쟁보다는 희소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점점 그의 음악활동은 실력 자체로 평가되는 발전을 이뤄가는 중이다. 장기간의 촬영을 통해 완성된 영화에는 그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전문지식까지는 갖추지 않더라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고 일정한 정보를 갖춘다면 훨씬 더 확장된 감상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다.
 
특히 <녹턴>에는 쇼팽의 피아노 야상곡들이 영화 내내 중요한 국면마다 등장하는데다, 심지어 영화의 제목까지 차지해버린다. '녹턴'의 풀어쓴 말이 '야상곡'이니 말이다. 음악가가 활동하던 당대에는 기존의 거장들과 유리된 비전형적 연주와 작곡 스타일로 제법 시련도 겪었지만 결국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는 선배 음악가가 된 쇼팽, 그리고 서번트 증후군으로 비장애인 연주자들과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은성호가 은연중에 겹쳐 보이는 효과 또한 부가적으로 파생되는 셈이다.
 
쇼팽의 여러 곡들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곡이다. 어머니 민서가 둘째 건기의 음악적 재능을 드물게 칭찬하는 장면과 연결되는 인상적인 대목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건기가 '쇼팽 녹턴 C# 단조'를 꼭 연주해주길 청한다. 쇼팽이 임종 시에도 젊을 적 떠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 식민 지배에 허덕이던 조국 폴란드를 의인화한 '어머니'를 찾았던 역사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과 함께 하는 피아노 선율은 '녹턴 b장조 op 62-1'이다. 쇼팽과 은성호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녹턴>을 즐기는 하나의 경로로 충분히 흥미진진한 찰나가 될 것이다.
 
3_희로애락이 압축된 인간 드라마, <녹턴>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녹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하지만 '장애를 가진 천재 음악가'라는 소재를 활용한 영화는 의외로 드물지 않다. (정신분열증을 앓던 실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곳의 일화를 차용한 <샤인> 등) 해당 부류의 영화들과 이 영화 <녹턴>의 결정적 차이라면 역시 세 등장인물이 펼치는 십여 년간의 치열한 갈등구조가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져 합의점에 도달해가는 인간 드라마를 뽑아낸다는 점일 테다.
 
물론 영화를 보는 관점은 각자의 선택에 활짝 열려 있다. 누군가는 장애를 딛고, 혹은 극복해 프로 음악가로 활약하는 은성호에게 관심이 기울어질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장애인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헌신하는 어머니 손민서에게 감정이입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될 테다. 하지만 영화를 온전히 소화하고 난다면 <녹턴> 영화에 담긴 지난한 세월을 끌어가는 동력의 원천은 명백히 은건기에게서 공급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건기는 장애문제를 다룬 영화라면 거의 반드시 등장하게 될 캐릭터들, 장애인 당사자(은성호)와, 헌신하며 시련을 겪는 비장애인 가족(손민서)의 전형성을 띤 설정에 구조적 변형을 부여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다른 두 인물이 2008년이나 2017년이나 성숙해졌긴 해도 근본적인 포지션 변화까지 이르지는 않는 편인데 비해 건기는 유일하게 입체적 변화를 겪는다.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과 스트레스에 휩싸이지만 그 시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갈등하고 고뇌하던 것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와 수미상관으로 연결되는 마무리, 러시아의 2번째 대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하일로프스키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는 과정은 극적인 순간이 숱하게 등장하는 <녹턴>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으로 손색이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두 형제만의 시간이 생기긴 했는데 몇 년 간 단절된 일상을 나누던 형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한 집에 살아도 대화가 부재하던 과거 묘사는 감독에 의해 좌우 대칭을 이룬 작은 방에 선호와 건기가 각자 무심하게 있음을 확인하는 인상적인 반복과 연속으로 보강되고 있다). 그런 간극을 헤쳐 나가기 위한 형제의 노력은 각자 진행된다.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의 풍자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연주회에서 두 형제가 보인 앙상블은 가장 감회가 남는 명장면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게 절대 녹지 않을 것으로 상상되던 결정적 태도변화의 징후를 포착해내는 카메라는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촬영 대상들과 호흡을 맞추며 신뢰를 깊숙하게 쌓아온 감독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의지의 결실일 테다. 이유와 시대를 불문하고 다큐멘터리에 가장 기본적인 입장, '최대한 근접하라'에 더없이 충실한 작품이니깐.
 
<작품정보>
 
녹턴 Nocturne
2019한국다큐멘터리
2022.08.18. 개봉|98분|12세 관람가
감독 정관조
출연 은성호, 은건기, 손민서
제작 포이에티케
배급 (주)시네마달
 
2019 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예술공헌상
2020 42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영화상
2020 12회 밀레니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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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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