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는 신예 감독이 자신의 데뷔 장편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소재와 장치를 총동원해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운을 불어넣은 뒤 100분 동안 밀어붙이는 느낌의 영화다. 개중 어떤 요소는 감탄사가 나오지만 어떤 요소는 굳이 언급하거나 부각시킬 필요가 있나 갸우뚱거릴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감독이 초지일관 제대로 '장르'에 충실하려는 도전은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 이 영화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긴장의 밀도를 유지해낸다. 첫 장편에서 이 정도 집중력을 스릴러 장르로 지탱해 낸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임상수 감독의 가능성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1_역사의 비극과 작은 사회가 결합된 유배지의 풍경
 
주인공 '도우'는 강원도 양구·화천 일대에서 쇠락한 낡은 모텔을 운영하는 중이다. 제법 나이도 있지만 그에겐 노모 외엔 다른 식구는 포착되지 않는다. 얼핏 보면 그는 팔자 좋은 유형으로 단정되기 딱 좋다. 딸린 식구도 없고 대충 물려받은 건물만 유지하고 자리만 지키면 '사장님' 소리 듣는 자리 아닌가. 하지만 실은 고달프기 짝이 없는 도우의 인생이다. 그가 운영하는 모텔은 시설이 낡을 대로 낡아 인근에 새로 문을 연 무인모텔과의 경쟁에 밀려나는 중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겐 딱히 대규모 리-모델링을 감행할 여력도, 의욕도 엿보이지 않는다. 도우는 첫인상부터 지치고 권태롭기 짝이 없다. 이렇게 심드렁한 표정을 가진 주인공이라니.
 
그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텔 카운터에는 액자가 한 장 걸려 있다. 신문기사 스크랩으로 보이는 액자의 내용은 그가 소문난 효자로 표창을 받았다는 것이다. 도우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혼자 오랫동안 수발을 들고 있기에 다른 일자리는 생각도 못하고 결혼도 포기한 채 낡은 모텔에 마치 유배된 죄수처럼 묶인 신세인 것이다. 이 징벌과도 같은 상황은 사실상 이 영화 <파로호>의 분위기와 전개를 좌우하는 결정적 환경에 해당된다. 도우는 이 거역할 수 없는 무게에 허덕이다 끝내 주저앉고야 말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도우는 표창까지 받은 효자로 인증된 지역사회 일원이지만 별로 주변과 교류 없이 지극히 제한된 접촉만으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온전한 자유와는 아득히 거리가 멀다. 다른 스태프 없이 혼자 모텔을 관리하며 치매 노모를 수발들기란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기 어려운 옥죔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낡은 모텔에 드문드문 오는 손님들은 예측을 불허하는 낯선 존재들이다. 모텔에선 자잘한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관할 경찰과 형사는 유독 자주 본다며 덕담이랍시고 건넬 정도다.
 
그리고 유일한 피붙이인 노모는 주인공에게 허울뿐인 사회적 명예를 안겨준 대신 누구에게 말도 못할 피로를 누적시키는 존재다. 노모가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는 비상벨은 도우에겐 평범한 일상을 금지하다시피 한다. 기본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방문객들을 상대하고 뒤처리를 하는 것만도 만만찮아 보이는데,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수시로 발작을 일으키며 그때마다 자식을 못 알아보고 광증을 일으키며 발광하는 노모까지 동시에 감당하기란 점점 더 감당 못할 피로다. 그렇게 위기와 비극은 서서히 수면 아래에서부터 퇴적되어간다.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쿱디스트리뷰션

 
2_제목과 공간적 배경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끌어들이다
 
여기에서 감독은 그 긴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집요하게 지역적인 배경을 암시 요소로 축차 투입한다. '파로호'라는 국문 제목은 해당 지명의 유래, 한국전쟁 당시 역사적 사건만으로도 이곳에 무엇인가 께름칙한 기운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짙게 드리운다(1951년 벌어진 해당 지역 전투에서 중공군은 파로호에 2만여 명이 '수장'될 정도의 대 피해를 입었다). 인공호(저수지)의 명칭도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의 '파로호'로 굳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 정부는 불편함을 공공연히 지속적으로 내비치는 중이다. 무엇보다 파로호에 가라앉은 전사자 유해는 수거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역사적 결과물로 제시되는 영화 속 일상화된 풍경, 군부대의 행군과 황량한 마을 곳곳에 넘쳐나는 군복들은 여전히 이어지는 남북 분단과 군사적 대결 구도를 상징한다. 그런 현재진행형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아마도 동네 토박이일) 도우가 사는 이 좁은 동네는 뭔가 결핍되고 기형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장착한다.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면서도 군대의 존재에 의존하게 만들면서 유지되는 기지촌 지역사회의 풍경은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활력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시골 작은 사회 특유의 폐쇄와 배제가 작품 전체에 음울한 색채를 덧씌운다.
 
지역사회의 표정은 극적인 수준으로 이중성을 드러낸다. 다들 말로는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주인공을 염려하는 행세는 하지만 실질적인 케어 지원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기본적인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면 도우의 스트레스는 훨씬 완화되었을 테고, 실제 현실이라면 영화 속 사건들은 굳이 탄생할 이유도 없었을 테다. 수많은 이웃들 중 오직 단골 미용실 주인만이 도우와 노모에게 선의를 행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 봐온 동네 친구인 철물점 주인도 말로만 친구일 뿐 대충 건성으로만 일관한다. 그가 대충 얼기설기 수리해놓은 덕분에 모텔 천장 누수는 영화 내내 그로테스크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동네 이웃들의 수군거림과 교회 신도들의 위선적 행태는 이미 목가적 공동체와는 까마득하게 먼 한국 시골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재현한다.
 
3_화룡점정을 찍는 배우와 미장센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쿱디스트리뷰션

 
여기에 쐐기를 박으려는지 영화 속 대부분의 사건이 일어나는 모텔 안팎은 의도적으로 조명되는 황량한 풍경,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불길한 느낌의 실내조명, 벽 틈에서 새어나와 뚝뚝 떨어지는 서늘한 물방울들이 연쇄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오직 불편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관객에게 불어넣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감독과 제작진의 집요한 노력이 대견할 정도다. 적잖은 예산을 들여 정교한 미술작업으로 고딕 풍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로호>의 질감은 1990년대 후반 J-호러의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그것과 통하는 형태로 일관된 기조를 구현해낸다. '검은 물밑에서'나 '링' 시리즈, 혹은 이토 준지의 호러 만화를 떠올리면 쉽게 짐작 가능한 지점이다.
 
그리고 독립영화 배우들의 연기력이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몫을 해낸다. 주로 조연으로 활약하다 본격적으로 주연을 맡은 건 처음 보는 주인공 도우 역의 이중옥 배우에겐 랜드 마크가 될 만한 작업이다. 그는 영화 내내 삶에 지쳐 심드렁하고 만사 귀찮아 보이는 표정과 사람은 좋아 뵈는 희미한 웃음기를 왕복하며 주인공의 정체와 심리를 모호하게 묘사해낸다. 아무리 봐도 상업영화라면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긴 어려워 보이는 배우의 이미지가 <파로호>에서는 또 다른 장치로 영화의 기이한 예측불가능성을 완성하는 셈이다. 감독의 뚝심 하나는 상당히 평가받아야 마땅해 보인다.
 
동시에 주로 독립영화에서 종종 만나던 배우들의 연기가 고루 조화를 이룬다. 영화 중반부터 모텔에 출현하는 젊은 남자 역 김대건 배우는 영화의 전개에 핵심적 활약요소다. 그리고 교사생활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연기로 풀어내며 스스로의 한계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변중희 배우의 치매 노모 역할은 작품의 초반에만 등장하다시피 하는데도 왜 한국독립영화 감독들이 이 배우를 캐스팅 1순위로 놓고 고민하게 되는지를 증명해낸다.
 
이제는 '탈' 독립영화배우가 된 공민정 배우가 맡은 형사는 사실상 관객의 대행자로서 미스터리를 쫓아가지만 실제로는 목격자에 가깝다. 형사는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 그저 헛발질을 거듭하며 전전긍긍할 뿐, 그녀가 가진 선의는 주인공을 구해내기엔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다. 이 영화 등장인물 중 가장 굴절되지 않고 평범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말금 배우가 맡은 미용실 주인은 자신도 불치 장애를 가진 남편을 돌보면서 힘겹게 견디는 삶을 산다. 도우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고 돕는 존재다. 이야기 전개가 단순화되지 않게 균형추 역할을 해내는 롤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영화 내내 미스터리한 기운을 증폭하는 존재이자 기지촌 지역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유흥업소 여성인 미리 역 김연교 배우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베테랑 동물배우 뭉치의 작품 속 활용법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4_아쉬운 지점은 있어도 준수한 스릴러 데뷔작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파로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더쿱디스트리뷰션

 
물론 따로 떼어놓고 보면 장르적으로 익숙한 코드의 재활용에 가까운 요소가 제법 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지역성은 사방에 가득하고 그에게서 촉발된 어두운 기억은 공포와 미스터리 장르에 무한한 원천이 되기에 안성맞춤이라 <파로호>의 활용이 아주 새롭진 않다. 2022년 초에 개봉한 <온 세상이 하얗다>에서도 역사의 상처를 안고도 조명되지 못한 강원도 지역 사연이 효과적으로 활용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한국영화에서 몇 안 되는 성공적 공포-스릴러 작업 중 일부로 존중받을 만하다. 군사주의와 분단 상황이란 배경을 적절히 녹여내지 못하고 겉치레에 그친 상업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감독은 시골 소도시의 좁디좁은 동네가 갖는 특수성에, 공공기관과 복지시스템이 자기 의무를 방기한 채로 방치시켜 놓은 가족주의의 한계점까지 끌어와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폐소 공포증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데 도전한다. 하나하나 따져보니 장르물 꾸미기에 정말 차고 넘치는 소재가 이 영화에는 가득하다. 잔뜩 준비한 배경을 가로세로 종횡으로 연속 투입해가며 감독은 적절한 완급 조절을 통해 미지의 스릴러를 풀어내고 있다.
 
모텔에선 줄곧 투숙객이 자살을 하고 노모의 광증은 심해진다. 도우의 상태를 반영하듯 모텔의 상태도 점점 더 고쳐 쓰기엔 한계다. 그와 함께 아슬아슬 유지되던 주인공의 균형은 허물어져간다. 그리고 그에게 닥쳐오는 파국은 기이한 환상성으로 관객에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무엇이 참인지 모호하게 다가온다. 관객은 앞선 유사장르영화들을 봤던 경험을 떠올리고 추리회로를 가동해가며 영화 내내 감독과의 퍼즐 게임을 필사적으로 이어나가게 될 테다.
 
하지만 그저 영화적 유희로만 머물기엔 영화 속에 담긴 한국적 현실의 끈적한 기운이 만만찮다. 그렇게 '검은 물 밑에서' 무엇인가 스멀스멀 올라올 것 같은 기운을 유지하며 영화는 파국의 카운트다운을 셈해나간다.

물론 재료만 많이 쓴다고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는 건 아니다. <파로호>는 전반적인 밸런스 유지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과잉과 허술함이 슬쩍 튀어나오는 측면이 분명 있다. 다양한 코드가 활용되지만 그 모든 게 동시에 융합되는 순간보다는 병렬적으로 어떤 건 익숙하고 어떤 건 모호한 식으로 다가오는 편이다. 그럼에도 궤도를 잃지 않고 용케 잘 견뎌내는 편이다. 영화는 단품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다. 사회적 소재와 장르적 코드가 조화로운 작업은 늘 흥미롭고 기대되기 마련이지만 감독의 후속 작품이 더 궁금해지는 데뷔작이다.
 
<작품정보>
 
파로호 Drown
2022|한국|스릴러
2022.08.18. 개봉|100분|15세 관람가
감독 임상수
주연 이중옥(도우 역), 김대건(호승 역)
출연 김연교(미리 역), 변중희(이순 역), 공민정(형사 역), 강말금(혜수 역), 뭉치(몽실이 역)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
배급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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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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