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지난 8월 15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 현대카드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 15일, 빌리 아일리시가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두 번째 내한 공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를 통해 한국 팬을 만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때문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취소되고, 2년 후에야 한국 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발매된 정규 2집 < Happier Than Ever >을 기념하는 월드 투어의 일환이다. 공교롭게도 빌리 아일리시의 첫 내한 공연 역시 2018년 광복절에 펼쳐졌다. 그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태극기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를 둘러 싼 모든 상황이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내한 당시에도 촉망받는 아티스트였던 빌리 아일리시는, 현재 Z세대(Gen Z)를 상징하는 슈퍼스타다. 2천 명 규모의 공연장에서 팬들을 만났던 그는, 이제 수만 명 규모의 공연장을 아무렇지 않게 채운다. 올해 재개된 글래스톤베리와 코첼라 등, 세계 최대의 페스티벌에서는 역대 최연소 헤드라이너를 맡는 위업을 세웠다.

2001년생인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 모든 것을 이뤘다. 10대 소녀의 우울과 불안, 혼란, 자기 파괴의 정서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하면서 '안티 팝(Anti Pop)'의 기수로 우뚝 섰다. 2019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는 헤드라이너보다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는데, 그의 존재 자체가 현상이 되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첫 정규 앨범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 (2019)는 그래미 어워드의 본상(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No Time To Die'로 아카데미 주제가상도 받았다. 파격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깊이 역시 갖춘 것이다.

완벽한 무대 장악, 라이브에 답이 있다
 
 지난 8월 15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지난 8월 15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 현대카드

 
하지만 빌리 아일리시의 공연을 앞두고 우려도 앞섰다. 그의 음악은 범대중적인 팝이 아니다. 미니멀한 '베드룸 팝' 스타일의 음악, 속삭이는 듯한 특유의 창법이 대형 공연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양갈래 머리를 묶은 채 등장한 빌리 아일리시는 단단한 보컬과 카리스마로 큰 공연장을 장악했다. 첫곡 'bury a friend'나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처럼 안티 팝(Anti Pop)을 지향하는 노래에서는 악동처럼 무대를 활보했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림보를 하듯 허리를 구부리고, 무대 위에 엎드리는가 하면, 여러 구역의 관객들과 눈을 맞췄다. 관객과 함께 숨을 들이켜고 내쉬면서 시작된 'When The Party's Over'의 여운도 셌다. 특히 피니어스와 빌리 아일리시가 어쿠스틱으로 꾸민 'Your Power'와 'The 30th'는 빌리 아일리시의 음색이 지닌 서정성을 충분히 선사했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울려 퍼진 마지막 곡 'Happier Than Ever'의 격정적인 후반부에는 헤드뱅잉을 하며 록스타의 잠재성마저 과시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스물한 살 빌리 아일리시가 벌써 완숙한 팝스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던 90여 분이었다. 빌리 아일리시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친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은 90여 분 동안 묵묵히 키보드와 기타, 베이스, 코러스로 동생을 후방 지원했다. (그는 빌리 아일리시 모든 음악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다.) 싸이키델릭한 비디오의 영상미 역시 공연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고척돔의 고질적인 사운드 문제 정도를 제외하면, 결점이 없는 팝스타의 공연이었다.

편협한 편견을 고백하자면, 빌리 아일리시가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의 음악과 스타일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로라, 로드 세인트 빈센트, FKA Twigs 등, 빌리 아일리시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들이 더 많은 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반성한다. 이번 공연에서 목격한 빌리 아일리시는 한 세대의 얼굴이 되기에 충분한 아티스트였다. 마이너한 것을 메이저하게 만드는 팝스타였다. 모든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자신의 것을 한다'는 톰 요크(라디오헤드)의 극찬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에 모든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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