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영화를 더 즐겨보는 편이다. 남들이 많이 봤던 드라마들을 보지 못해 대화에 끼지 못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아래 <우영우>) 역시 그런 드라마가 될 뻔했다. 어느 날 드라마·영화를 요약해주는 유튜버가 올린 30분짜리 <우영우> 리뷰 영상을 보고 나서 바로 직감이 왔다. 이 드라마는 봐야 한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우영우>에 '과몰입'하며 지냈다. 사람들과 이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논쟁하면서 말이다. 많은 이들에게도 <우영우>가 공감하고 논쟁하기에 좋은 콘텐츠였던 듯하다. 신생 채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국 기준 0.948%(1화)였던 시청률은 15.78%(9회)까지 상승했고, 종영을 앞둔 지금까지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우영우 신드롬'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이 현상에 대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무해함'과 '유해함'의 이분법에 질문을 던지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기본적으로 극중의 공간이 '로펌'이라는 것부터가 시사점이 크다.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출신들이 오고 가는 공간, 완전히 능력주의적인 이곳에서 우영우(박은빈 분)는 자신만의 공간을 지켜내면서도 동료와 상사 변호사와 관계를 맺어 나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우영우가 현실의 장벽들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 부숴버리는 '서번트 형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벽에 부딪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자기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방영 초반에 사람들의 반응을 좀 유심히 살펴봤다. 이때 <우영우>는 "무해"하고 "힐링"이 되는 드라마로 인식됐던 것 같다. 분명 이 드라마의 질감과 분위기는 '로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투쟁하고 고군분투하는 장애인 변호사 이야기'보다는 '고래와 김밥을 좋아하는 귀여운 변호사 이야기'에 가까운 것 같아서 무해함이 느껴진다는 맥락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우영우가 무해한 존재라면 반대로 3화에서 나온 자폐인 캐릭터 김상훈(문상훈 분)은 유해한 캐릭터가 되는걸까?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지,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지 아닌지로 해로움의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장애란 우영우가 항상 이야기하는 '스펙트럼'이 아니라 납작한 이분법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드라마는 우영우의 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무해함'과 '유해함'의 기준으로 장애를 바라보려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그러나 좌고우면하지 않고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우영우>가 기본적으로 옴니버스형 드라마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여러 유형의 (실제 사건들이 모티브가 된) 사건들을 각 회차마다 풀어나간다. 그런데 각 사건이 단순히 법적, 윤리적인 쟁점만을 던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영우가 맺어 나가는 관계들에 대한 답이자 질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가 있으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얘기는 극 초반 우영우-동그라미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결국 10화에서 나오는 비장애인-지적장애인 간의 사랑 문제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우영우-이준호 관계에 대해서도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풀리는 실마리보다는 엉키는 실마리에 가까운 그것. 이 드라마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이야기들이 점점 풀려가는 실마리보다는 엉켜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실뭉치에 가깝다는 것을 사건 자체와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의 삶과, 그리고 그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우영우와 한바다 식구들과, 그로 인해 재정립되는 우영우와 이준호의 관계 속에서 복잡다단하게 풀어낸다.

그러니까, '이건 어려운 문제야'라고 시청자들한테 던져놓기보다는 '이 어려운 문제를 영우와 준호, 그리고 한바다 동료들이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같이 지켜보지 않을래?'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드라마가 유의미한 이야깃거리를 잘 다듬어서 내놓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풀리기 어려운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 이 드라마의 진정한 미덕은 거기에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와도 같은 드라마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의 우영우>의 한 장면 ⓒ 김민준

 
그런데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 역시 존재한다. 소수자성을 '연기'한다는 건 언제나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위험부담은 소수자 당사자를 갖다 쓴다고 해서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의 문제를 인지하고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가 창작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영우> 역시 '극소수의 천재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절대다수 자폐인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당사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나와서 <우영우>가 본인들의 현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말해주는 유튜브 콘텐츠들도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사자성'이라는 것은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우영우>를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장애 당사자도 존재하고 '그런데도 이 정도면 진일보했다'고 느끼는 장애 당사자도 존재하는 법이다. 

결국, 소수자를 재현하는 콘텐츠는 언제나, 항상 딜레마에 놓인다. '그나마 이 정도 했으니 의미가 있다'는 평가와 '그래도 제대로 좀 하지 그랬냐'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우영우>가 이런 아이러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로 나눠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이 남아 있는 한, 이 딜레마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있어 굴레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으로 작용할 것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이야기를 할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드라마가 던진 풀리지 않는 실마리를 건네 들고 그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시청자인 우리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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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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