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기고 싶고,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그 누구에게도 야구로서는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이승엽)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 그건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는 프로 선수 출신이니까."(송승준)
"이제는 100% 다시 야구선수가 됐다. 아주 살아있음을 느낀다."(박용택)

 
15일 방송된 JTBC <최강야구>에서는 최강몬스터즈와 충암고의 마지막 3차전이 공개됐다. 어쩌면 이 방송이 보여주고자 하는 지향점을 가장 잘 함축해서 보여준 회차였다. '윈 오어 낫띵(Win or nothing)'을 외치며 은퇴했어도 여전히 승부사의 피가 끓는 레전드들은, 여전히 야구 그 자체에 진심이었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몬스터즈는 충암고와의 2차전에서 8회 충격의 콜드게임 패배(4-14)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앞서 동의대와의 경기에서 첫 패배를 했지만 당시는 연장 접전에 이은 끝내기 패배였다. 아마추어팀, 그것도 고등학교 팀에게 사상 초유의 콜드게임 패는 프로 레전드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기 충분했다.
 
더 큰 문제는 불과 하루 뒤에 바로 3차전이 열리며 투수력 소모가 큰 몬스터즈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 투수가 5명에 불과한 몬스터즈는 3차전 선발로 내정한 유희관을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이미 2차전에 등판한 상태였다. 몬스터즈 단장을 겸하고 있는 장시원 PD는 만약을 대비하여 키움 히어로즈 출신의 좌완투수 오주원(현 히어로즈 전력분석원)을 '일일 알바' 형식으로 긴급 보강했다.
 
이승엽 감독은 3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프로로서 창피한 경기를 하지 말자"고 당부하며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2차전에서 극심한 입스 증세를 보인 이홍구와 대학리그 일정으로 결장한 윤준호 대신, 포수 출신이었던 외야수 이택근이 무려 18년 만에 안방마님으로 복귀하며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됐다. 그동안 지명타자로만 출장하던 캡틴 박용택은 이택근이 맡던 중견수로 이동했다.

하지만 설욕을 다짐했던 몬스터즈는 믿었던 에이스인 유희관이 초반부터 상승세를 탄 충암고 타자들에게 연이어 안타를 허용하며 선제실점을 내줬다. 설상가상 박용택의 리드로 벤치의 지시까지 무시하며 무리하게 전진시킨 외야수비 시프트가 오히려 연속 장타의 빌미를 허용했다.

급기야 유희관은 "초등학교 수비를 한다"며 간신히 이닝을 마치고 돌아온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면서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박용택은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유희관을 다독이며 앞으로 정상적인 수비를 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몬스터즈의 위기는 계속됐다. 5회 2사 만루에서 유희관은 박채울에게 내야 땅볼을 유도했으나 2루수 정근우가 빠른 타구에 바운드를 포착하지 못하고 실책을 저지르며 그 틈에 또 한 명의 주자가 홈을 밟아 점수차는 4-0까지 벌어졌다.

반면 몬스터즈 타선은 충암고 선발 이태연을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5회 1사 1, 3루의 찬스에서 중심타선인 박용택과 정의윤이 잇달아 삼진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몬스터즈 덕아웃은 침묵에 휩싸였고 분위기가 점점 어두워졌다

이승엽 감독은 유희관을 내리고 6회부터 오주원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때 팀 동료였던 이택근과는 히어로즈 현역 초창기 시절 이후 18년 만에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오주원은 초반 긴장한 기색을 보였으나 첫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갔다.
 
심기일전한 몬스터즈는 6회말부터 대반격에 나섰다. 충암고의 두 번째 투수 박건우를 상대로 선두타자 정성훈이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이택근과 서동욱의 연속 안타에 이어, 이홍구의 외야플레이 타구가 고척돔 천장에 가려지며 놓치는 실책으로 1사 만루의 천금같은 기회를 얻었다. 이어 류현인이 적시타로 첫 타점을 올리며 박건우를 강판시키고 기나긴 0의 행진을 끊어냈다.

충암고는 여전히 1사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세 번째 투수로 박찬호를 마운드에 올렸다. 박찬호의 폭투를 틈타 3루주자 서동욱이 홈을 밟으며 2-4로 추격했다. 정근우의 볼넷에 이어 최수현이 내야플레이로 물러나며 2사 만루가 됐다. 경기 내내 부진했던 캡틴 박용택이 적시타를 뽑아내며 2, 3루주자가 모두 홈을 밟아 마침내 4-4 동점에 성공했다.
 
여전히 인플레이가 진행 중인 가운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타자 주자 박용택이 2루까지 진루하다가 런다운에 걸렸다. 그 사이 3루에 진루해있던 주자 정근우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홈까지 과감하게 쇄도했다. 당황한 충암고는 홈으로 송구하려다가 공을 바닥으로 패대기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그 사이 정근우는 홈을 밟는 데 성공했다.
 
이어 박용택이 1-2루 사이에 런다운에 걸려 결국 아웃되었지만 정근우의 득점은 인정되며 몬스터즈가 마침내 5-4로 역전에 성공하면서 이닝을 마쳤다. 실책성 플레이를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꿔낸 몬스터즈의 집중력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드디어 기세를 탄 몬스터즈는 7회말에도 1사 1, 2루에서 서동욱의 적시로 한 점을 추가했고, 류현인의 2타점 적시 3루타까지 터지며 점수차를 벌렸다. 이어 다시 타석에 선 정근우는 충암고 변견우를 상대로 쐐기 투런포까지 작렬하며 몬스터즈 최다 홈런(3개) 단독 선두의 주인공이 됐다.

오주원은 충암고에 비록 1점을 내줬지만 8회 2사까지 호투했다. 이승엽 감독은 오주원을 내리며 마무리투수로 놀랍게도 이대은을 선택했다. 2차전에서 어이없는 폭투 및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콜드게임 패배의 주범이 됐던 이대은이 5점차의 넉넉한 리드에서 자신감을 되찾기를 바란 이승엽 감독의 포석이었다.
 
이대은은 비록 안타 2개를 내주기는 했지만 삼진 2개 포함 1.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틀어막으며 전날의 부진을 만회하고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했다. 경기는 10-5 몬스터즈의 역전승으로 끝나며, 통산 전적 6승 2패(승률 7할 5푼)를 기록했다. 경기 자체 MVP에는 4타수 4안타로 맹활약한 류현인이 선정됐다.
 
선수단은 한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서 클로징 타임을 가쳤다. 장 PD는 "저 나름대로 어려운 미션을 디자인하고 기획하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극복해나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는 속내를 고백했다.
 
몬스터즈 선수단과 제작진은 승리를 자축하는 단합식을 가졌다. 제작진은 회식 도중에 사전 예고 없이 이날 경기까지 몬스터즈 선수들 개개인의 통산 성적표가 기록된 현수막을 깜짝 공개하며 선수단을 당황하게 했다. 타율 1위는 .393(28타수 11안타)의 류현인이었고, 최다 안타는 이택근과 동률을 기록했다. 홈런(3개)과 타점(9개) 리더는 정근우였다. 투수진에서는 3승, 자책점 1.86(7경기 29이닝 10실점 6자책)의 유희관이 에이스로 활약했다.
 
반면 타율 꼴찌는 주장 박용택(2할6푼5리)이었다. 송승준(7경기 17.2이닝, 2승, 자책점 4.08)은 자신의 자책점 집계가 잘못되었다며 광분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최악의 피칭은 자책점 13.50을 기록한 심수창이었다. 유희관은 심수창의 기록을 보며 "체지방 수치냐"며 디스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명승부를 거듭했던 이번 충암고와의 3연전 에피소드에서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경기 결과보다도 프로 레전드 선수들이 패배와 위기를 대처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극심한 입스로 자신감을 잃고 송구 트라우마에 빠진 이홍구, 최악의 제구력 난조를 드러낸 이대은, 찬스마다 찬물을 끼얹은 박용택 등은 경기 내내 극심한 부진으로 비판을 받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몬스터즈는 오히려 위기 속에서 '원팀'으로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승엽 감독은 아무리 부진해도 내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믿음의 야구를 펼친다. 선수들을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고 잔부상과 원인모를 슬럼프에 고전하면서도 어떻게든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었다.
 
평소의 유쾌한 이미지는 간 곳 없이 부진한 경기력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유희관이나 박용택의 진지한 모습은, 마치 실제 프로야구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택근은 갑자기 포수를 맡아야 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코칭스태프의 요청을 수락한다.

송승준은 이홍구에게, 해설위원인 김선우는 이대은에게 먼저 다가가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위하여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팀원의 아프고 부족한 부분들을 이해해주고 대신 메워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팀워크다.
 
특히 송승준의 이야기는 야구를 떠나 인생 선배로서 전하는 진심어린 조언으로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여전히 입스 때문에 고민하는 이홍구에게 송승준은 "야구도 그렇고 모든 인생 사는 게 그렇다. 한꺼번에 뭐가 좋아지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하나의 소득이라도 조금씩 쌓여가면서 결국은 만족감에 이르는 것이다. 인생에서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조언을 전했다. 

 이대은은 "<최강야구>에 진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다. 근데 형들 하는거 보고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고백하며 "여기서 몇 게임 해보니까 제가 알던 제 몸이 아니었다. 그렇게 던져본거(폭투) 야구하면서 처음이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팀에 너무 안 좋은 영향만 끼치고 있다"고 자책했다.

같은 투수 출신으로 이대은의 심경에 누구보다 공감한 선배 김선우는 "이 방송이 끝나기 전에 너의 감을 찾았으면 좋겠다. 결국 프로는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라고 당부했고, 이대은은 "무조건 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원삼은 "야구를 그만두고 난 이후에도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게(방송이) 뭐라고'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게 아니다. 여전히 잘하고 싶고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며 아직도 변함없는 야구선수들의 속마음을 대변했다. 심수창은 충암고와의 3차전이 끝난 이후 선수단과 제작진이 모두 퇴근한 후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홀로 남아 묵묵히 연습을 진행하며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최강야구>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단지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경기 장면과 기록 싸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의 안타와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그들이 얼마나 매순간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는지, '하나의 팀'이 되기 위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이 직접 보여주는 '진정성'이야말로 <최강야구>가 스포츠 예능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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