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 (주)미디어캐슬


그칠 줄 모르는 폭우로 수도권 곳곳이 침수됐다.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성남과 용인 등이 역대급 물폭탄을 맞았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은 물론 도로가 잠기고 집과 일터, 차량이 못쓰게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는 완전히 멎지 않고 몇 날 며칠을 계속됐다. 여러 종교시설에선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비는 이들이 여럿이다.

폭우 소식을 듣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날씨의 아이>가 떠올랐다. 그칠 줄 모르는 비와 물에 잠겨든 대도시 동경, 그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떠오른 신카이 마코토는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으로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 감독이다. 2019년 작 <날씨의 아이>는 전작에 비해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색채가 잘 녹아 있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캐릭터 구성과 갈등, 전개 등에 있어 자가복제를 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단 게 아쉽지만 어떤 영화는 작품성을 넘어선 매력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법이다.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 속에서 어쩌면 <날씨의 아이>가 그런 영화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비가 멈추지 않는 어느 여름의 동경

<날씨의 아이> 속 일본 동경은 여름이 한창이다. 다만 보통의 여름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도시에 살던 고등학생 호다카는 집을 떠나 동경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난 호다카에게 동경은 냉혹한 도시다. 여기저기를 떠돌지만 마음 편히 쉴 곳도 배불리 먹을 곳도 없다. 그런 호다카에게 처음 손을 내민 이가 있다. 히나다.

히나는 매일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에서 가장 싼 메뉴를 먹던 호다카에게 몰래 버거 하나를 내민다. 그 친절이 호다카의 동경을 조금은 밝게 한다.

영화는 호다카와 히나의 이야기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동경이, 일본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동경과 일본의 이야기다. 기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 어쩌면 마땅한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는 냉혹한 도시, 무정한 나라의 이야기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답게 영화엔 환상적 계기가 등장한다. 히나에겐 남들에게 없는 능력이 하나 있다. 그녀가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하면 거짓말 같이 빗줄기가 멈추고 하늘이 맑게 갠다. 오랜 비로 굳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환한 표정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말한다. "신기해, 날씨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게나 움직이다니"하고.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도시에서 가장 약한 자가 비를 멈춘다

히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아예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 비가 멎기를 기도해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서비스를 시작한다. 흐리기만 했던 세상이 빛을 찾는다. 세상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한다.

영화는 호다카와 히나에게 예고된 위기를 불러온다. 호다카는 우연히 습득한 권총 탓에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그가 미성년자인 탓에 그를 고용했던 잡지 대표는 호다카를 해고한다. 그는 다시 커다란 도시에서 혼자가 된다.

히나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그녀는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몸이 투명해진다. 투명해지는 것을 넘어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녀는 다른 어느 세계로 옮겨가고 마침내는 이 세계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호다카는 히나를 구하려 하지만 제게 닥친 위험을 감당하는 데도 벅차다.

신카이 마코토가 영화에 담고자 했던 주제의식은 명확하다. 히나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세계의 구원, 말하자면 소수 약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세계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히나의 희생을 전제로 한 기도로 동경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느냐는 물음이 관객 각자에게 돌아온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선택을 두고서 영화는 점차 위기감을 조성한다.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영화 속 동경과 오늘의 서울

약자를 버려두는 동경의 냉혹한 현실도 내보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돌봄 받지 못한 아동이 처한 위기가 영화 내내 전면에 드러난다. 특히 여성 아이가 성상품화의 위기에 노출되는 모습은 현실 못지않게 자연스럽다.

영화 속 동경과 오늘의 서울은 얼마나 다른 지 생각해본다. 멈추지 않는 비와 잠겨가는 도시 만큼이나 돌봄 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그들이 처한 위기가 섬뜩하게 닮아 있는 듯 보인다. 도시에서 가장 약한 자들의 희생으로 어느 시민들은 웃고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씨의 아이>가 그려낸 서늘한 풍경이 오늘 서울 안에도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어느 반지하 건물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과 그가 지탱하던 풍족하지 못한 가정과 그가 활동하던 어느 노조의 이야기가 담긴 글을 읽으면서 <날씨의 아이> 속 물에 잠겨버린 어느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건 그저 내가 너무 감상적이어서는 아니었을 거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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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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