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스캔들로 이미지가 추락했지만 홍상수 감독은 여전히 작가주의 감독으로 평단, 특히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다. 홍상수 감독은 베를린 영화에서 2020년 은곰상 감독상(<도망친 여자>), 2021년 은곰상 각본상(<인트로덕션>),2022년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소설가의 영화>)을 수상하며 3년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홍상수 감독이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에서 유독 인정을 받는다면 프랑스의 칸 영화제는 박찬욱 감독의 무대다. 지난 2003년 <올드보이>를 통해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칸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박찬욱 감독은 2009년에도 <박쥐>로 심사위원상의 주인공이 됐다. 2016년 <아가씨>가 무관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던 박찬욱 감독은 올해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처럼 박찬욱 감독이 칸 영화제와 인연이 매우 깊지만 천하의 박찬호 감독조차 이 형제에게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이 형제는 지난 30여 년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3회, 황금종려상 1회, 심사위원대상 1회(중복수상 포함)라는 독보적인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지난 2008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남우조연상, 각색상을 휩쓸며 북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 받은 코엔 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쓸었다. ⓒ 해리슨앤컴퍼니

 
칸 영화제 감독상만 3번 휩쓴 형제 감독

3살 터울의 형제 사이인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은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나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이블 데드>의 편집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코엔 형제는 1984년 범죄드라마 <블러드 심플>을 공동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코엔 형제는 데뷔작부터 연출은 물론 각본과 제작,편집까지 공동으로 맡을 정도로 뛰어난 호흡을 자랑했다.

초창기만 해도 두 형제는 분업이 비교적 잘 이뤄져 있었다. 동생 에단이 각본과 제작, 편집을 담당하고 형 조엘은 각본과 편집작업에 참여하면서도 연출에 더욱 집중했다. 코엔 형제는 1991년 <바톤 핑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받았고 주연을 맡은 존 터투로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엘 코엔은 1996년 <파고>를 통해 두 번째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2001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까지 연출과 제작으로 확실한 분업을 하던 코엔 형제는 2004년 톰 행크스 주연의 범죄 코미디 <레이디킬러>를 함께 만들며 다시 공동연출을 시작했다. 2006년 <사랑해, 파리>를 연출한 코엔 형제는 2007년 각본과 연출,제작,편집 작업을 함께 한 전설적인 범죄스릴러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선보였다. 

1980년대 초반 혼란스러운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5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1억7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애초에 높은 흥행을 노린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그리고 이듬 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려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코앤 형제는 2009년 <시리어스맨>과 2010년 <더 브레이브>,2013년 <인사이드 르윈>, 2016년 <헤일,시저!> 등을 함께 만들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다가 2018년 <카우보이의 노래> 이후 다시 각자 활동하고 있다. 조엘 코엔은 작년 OTT채널 애플TV+를 통해 공개된 <맥베스의 비극>을 연출했고 에단 코엔은 롤링스톤즈 멤버 제리 리 루이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영화 <제리 리 루이스: 트러블 인 마인드>를 만들었다.

21세기 악역 2위에 오른 사이코패스 킬러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킬러 안톤 쉬거는 조커에 이어 21세기 최고의 악역 2위에 올랐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킬러 안톤 쉬거는 조커에 이어 21세기 최고의 악역 2위에 올랐다. ⓒ 해리슨앤컴퍼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의 원제 'No Country for old Men'을 직역한 제목이다. 이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고령화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인문제를 연구한다고 이 영화를 감상했다간 사이코패스 킬러를 만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목에서 등장하는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를 가진 생각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실제 영화에서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에 가장 가까운 이는 바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했던 보안관 에드 톰 벨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안관이 된 에드는 돈가방을 갖고 도주한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분)를 쫓는 연쇄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를 추격한다. 하지만 에드와 쉬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쉬거는 에드가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생각의 범위에서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장유유서'에 따라 연장자인 토미 리 존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지만 사실 관객들이 느끼는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단연 안톤 쉬거였다. 실제로 쉬거는 2017년 영화매체 콜라이더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악역 순위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고 히스 레저 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이 순위에서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최민식 분)이 6위,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 분)이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내내 쉬거의 추격을 피해 멕시코와 미국을 넘나들며 도주를 이어가던 르웰린은 결국 자신과 큰 상관이 없는 멕시코 갱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르웰린의 장모가 멕시코 갱스터에게 무심코 그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 결정적인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이다. 똑똑한 머리와 뛰어난 관찰력,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대담함까지 지니며 쉬거에게 저항하던 르웰린이었지만 결국 쉬거와는 무관한 상대에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작비의 7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을 정도로 크게 흥행했지만 국내에서는 예술영화 취급을 받으면서 단 16개의 스크린에서만 상영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봉 당시 어지간한 상업영화의 하루 성적보다 못한 6만 관객에 그쳤지만 꾸준히 명작으로 인정 받으면서 10주년이 된 2018년 재개봉해 누적관객수를 9만으로 늘렸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천하의 우디 해럴슨이 이렇게 허무하게?
 
 모스의 아내 칼라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안톤 쉬거 앞에서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다.

모스의 아내 칼라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안톤 쉬거 앞에서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다. ⓒ 해리슨앤컴퍼니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는 선우(이병헌 분)가 자신의 인생을 망친 강사장(김영철 분)에게 복수에 성공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무기밀매상 태웅(김해곤 분)의 동생 태구(문정혁 분)에 의해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주요인물들의 삶과 죽음, 등장과 퇴장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달콤한 인생>의 태구 같은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리라 예측할 수 있었고 우디 헤럴슨이 연기한 카슨 웰슨은 그 역할을 하기 적합한 인물처럼 보였다.

그린베레 중령 출신으로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청부업자 카슨 웰스는 안톤 쉬거와 일을 한 적이 있는 인물로 쉬거를 제거하기에 가장 적임자였다. 하지만 멋지게 등장한 카슨은 곧 쉬거에게 붙잡히고 얼마 못가 쉬거의 총에 맞고 영화 속에서 퇴장한다. 과거 <올리버 스톤의 킬러>에서 줄리엣 루이스와 연쇄살인범 커플을 연기했던 우디 해럴슨의 등장에 은근한 기대(?)를 걸었던 관객들은 그만큼 허탈함의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르웰린의 아내 칼라 진 모스 역은 영국 출신의 배우 켈리 맥도널드가 맡았다. 남편과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후 칼라는 집으로 찾아온 쉬거와 만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전을 던지라는 쉬거에게 "내 생사는 동전이 아닌 (총을 가진)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운이나 우연에 맡기지 말라고 충고하는 코엔 형제의 일침이자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명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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