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가장 많이 시청 중인 액션 영화는 한국의 <카터>와 미국의 <그레이 맨>이다. 전 세계 OTT 플랫폼 순위 차트인 플릭스패토롤에 따르면, 9일 현재 <카터>는 2위, <그레이 맨>은 4위다. <카터>는 지난 5일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이고, <그레이맨>은 2주 전인 지난 7월 22일 공개됐다.

<카터>는 <나는 액션배우다>(2008)로 데뷔, 이후 <내가 살인범이다>(2012), <악녀>(2017)를 만든 '액션 전문' 정병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놈이다>(2015)이후 8년 만에 OTT 영화로 스크린으로 복귀한 주연이 타이틀롤을 연기했다.

<그레이 맨>은 '마블'을 대표하는 루소 형제가 연출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시작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를 연이어 흥행 시켰고, 액션 장면에 일가견을 인증받은 형제 감독들이다. 여기에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고슬링, 아나 데 아르마스, 크리스 에반스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실상 비교 자체가 우습다. <그레이 맨>의 제작비는 넷플릭스 역대 최고인 2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600억이다. 세계 극장가를 휩쓴 <탑건: 매버릭>의 순제작비가 1억5천2백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그레이맨>에 쏟아부은 넷플릭스의 기대가 얼마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카터>의 제작비는 300억 전후 규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레이맨>과 비교하면 대략 1/9 수준이다. <킹덤> 이후, 그리고 <오징어게임>을 전후해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한층 더 '애정'하게 된 요인을 <카터>의 제작비와 차트 순위가 재확인시켜준다.

<그레이 맨>의 경우, 막대한 규모 및 동명의 스파이 스릴러 소설을 바탕으로 루소 형제의 장기인 마블 '캡틴 아메리카'식 액션이 역시나 단순 명쾌한 이야기 속에 펼쳐진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대작 액션 영화다.

로튼 토마토가 <그레이 맨>과 나란히 4점 대 평점을 준 <카터>는 조금 다른 길을 간다. 진짜 재미는 여기부터다. '괴작'이란 평가를 부끄럽지 않아 할 것 같은 이런 수준의 '액션 부심'은 실로 처음이다.

한국에서 처음 만나는 미친 액션의 향연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연기도 볼 필요 없다. 진짜다. 주원이 연기한 카터의 육신만 따라잡으면 된다. 과장이 아니다. 이 카터가 누구인지, 본명이 누군지, 왜 괴한들에게 쫓기는지 전혀 중요치 않다.

일군의 외국인 무리가 버스에 탑승해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들이 모텔 침대에 엎드린 채 누워 있다 일어나는 한 남자, 카터에게 총을 겨눈 채 다가간다. TV 속 뉴스엔 '북한 바이러스 국가붕괴위기'란 뉴스가 흐르는 중. 괴한들이 다짜고짜 소총을 쏘며 "정병호가 어딨냐?"라고 영어로 물어보지만, 카터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텔 방엔 정체모를 핏자국들이 흥건하다.

짐작 그대로다. 기억이 사라졌다. 괴한들이 보여준 영상 속 카터는 정병호 박사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영등포 시장 모텔 호수까지 알려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카터는 이제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북한 출신 정병호 박사도 찾아야 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정체 모를 여성이다. 이 남자 카터의 이름을 카터라고 처음 관객들에게, 카터 본인에게 알려주는 수화기 속 여성.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여성의 지시로 카터의 손에서 괴한 중 한명에게 넘겨진 전화기가 순간 굉음과 함께 터진다. 폭탄이다! 전화기가 터졌는데도 쓰러진 카터의 귀로 재차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20초 후 또 다른 폭탄이 터진다. 카터의 입안에도 살상용 폭탄이 설치됐다. 살고 싶으면 지시를 따르라!

정확히 여기까지다. 관객이, 시청자가 2시간 14분 분량의 <카터>의 설정을 정확히따라잡을 수 있는 단 8분여의 시간은. 여기서 제시된 정보는 꽤나 유효하다. 카터는 기억을 잃었다. 대한민국은 북한 바이러스가 출몰한 상태다. 카터가 살려면 박사라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이 여성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이 방법 밖에는 없다.

단순 명료하다. 복잡할 게 없다. 실제 <카터>도 이때나 이후로나 단 한 번도 이 여성의 지시를 회의하거나 반문하는 일이 없다. 중반 이후 정체가 밝혀지는 이 여성의 지시를 카터가 따른다. 영화 속 유일하고 확고 불변한 전제다. 영화적으로 그게 매력적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야기를, 카터의 액션을 움직이고 동선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이 카터에게 살상용 폭탄을 설치했다는 이 여성의 지시니까.

이후로는 직진이다. 카터가 폭발을 피해 창문들을 뚫고 뛰어든 옆 건물은 바로 대형 목욕탕. 카터는 이제 알몸으로 달려드는 남자들과 영문 모를 대결을 펼친다. 

액션 장인 정병길 감독의 전작 <악녀>의 오프닝을 훌쩍 뛰어 넘는 이 목욕탕 액션 장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잔인하고 길고 사실적인 액션 장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영화 대부분이 이런 액션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영화를 지탱하는 매력이 딱 거기까지라는 데 있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300억 짜리 괴작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이 모든 장면을 '원 테이크'로 찍었다. 영화 전편이 단일한 장면인 영화란 얘기다. <카터>를 지배하는 형식적인 전제다. 형식적으론 맞는 말이다. 다만, 중간 중간 장면 사이의 이음매를 편집의 효과로 상쇄한 것은 영화 외적인 요소일 뿐이다. <카터>는 관객이 이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현란하고 빠른 촬영과 이를 구현한 화면으로 다른 의문들을 압도해 버린다.

영화를, 그 미학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편집을 제거해 버렸으니 남은 건 연기자와 카메라다.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액션 장면들이 미친 듯이 이어진다. 핸드헬드는 기본이요, 드론과 고프로 등 갖가지 촬영기법이 난무한다. CG 및 VFX(Visual Effects)로 구현됐으리라 짐작되는 화면들도 없진 않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를 부드럽게 포착한 360도 회전 장면도 기본 중에 기본이다.

1대100 액션 신을 시작으로 차량, 오토바이, 항공기, 열차, 헬리콥터, 산 위 출렁 다리 등등 한국영화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이어진다. 액션 자체로는 탁월하다. 주원은 액션 비전문 연기자가 할 수 있는 극한의 체험을 제공한다. 뼈아픈 문제점은 그 액션에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촬영과 전개 양 측면 모두에서 그렇다.

 카터가 관객이고 관객이 카터다. 스크린으로 본다면 현기증이 났을 것이란 리뷰가 속속 올라올 만큼 모든 액션신들은 현란함 그 자체다. 온갖 카메라를 동원한 만큼 화면의 질감을 동일하게 구현하기 위해서였을까. 그 현란함은 보통의 영화들과는 다른 프레임 속도를 바탕으로 한다.

자칫 잘못하면 액션의 구성을 놓치기 십상이다. 기존 영화에서 컷과 컷으로 나누는 그 설명의 기능이 <카터>엔 존재하지 않는다. 촬영기법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액션의 나열이 이어진다. 화면 속 인물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의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

현실의 물리적 법칙도 종종 무시된다. '카터는 사실 기계인간'이란 반전이 나와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확히 게임 화면을 닮아 있는 이 작품이 왜 실사영화여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까지 불러일으킨다. 원 테이크와 리얼함의 부조화 아닌 부조화다. '괴작'이란 표현을 쓴 건 그래서다.

<존 윅>을 위시해 액션이라면 환장하는 액션영화 '덕후'들이라면 환호할 법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나 인물, 설정의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칸에 초청을 받았던 <악녀>를 통해 사실적이고 아드레날린 넘치는 긴 호흡의 액션 장면을 감탄스럽게 찍어 왔던 정병길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욕망을 극단으로 밀어 붙인 <카터>의 호불호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갈릴 것이다. 온 몸을 아끼지 않았을 주원의 연기에 대한 판단은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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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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