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이 코앞이다. '친절한 톰 아저씨'를 유독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이 <탑건: 매버릭>의 전 세계 흥행 기록 작성에 일조 중이다. <탑건: 매버릭>은 8월 5일(현지시간)까지 전 세계(월드와이드) 수익 13억 2천7백만 달러를 돌파했다.

2022년 월드와이드 수익 1위는 기본이요, 역대 16위다(이하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5일 기준). 15위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13억 3천2백만 달러). 약 500만 달러 수익만 추가하면 이 순위가 뒤집어진다(북미 기준으로 보면, 8월 첫 주 주말 역대 흥행 7위인 <타이타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월 22일 국내 개봉한 <탑건: 매버릭>은 8월 5일까지 730만 관객을 모았다. 700만 돌파까지 41일 걸렸다. 여름 텐트폴 시장을 맞은 한국영화 '빅4'와의 경쟁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아이맥스 상영관을 중심으로 N차 관람 열풍도 여전하다. 이들을 '탑친자'(탑건에 미친자)로 불린다. 5일과 6일 역시 각각 일일 관객 4만6천 명과 7만4천 명을 추가하며 3위를 지켜냈다.

영국(9천2백만 달러), 일본(7천6백만 달러), 호주(6천만 달러), 그리고 한국(5천7백만 달러). 이처럼 우리 관객은 북미(6억 5천만 달러)를 제외하고 <탑건: 매버릭>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안겨줬다. 지난주 7월 마지막 주말만 약 25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이 추가됐다. 

이에 힘입어 <탑건: 매버릭>은 2011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 세운 톰 크루즈의 국내 흥행 기록(750만)을 갈아 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탑건: 매버릭>의 전 세계에 흥행 기록 작성에 일조한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러자 올해로 환갑을 맞은 톰 크루즈의 '화양연화'가 새겨진 36년 전 전편 <탑건>까지 재소환됐다.

36년 전 <탑건> 재소환한 한국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이미지.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인 키노라이츠에 따르면, <탑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7월 통합 콘텐츠 랭킹 2위(7/2~7/29)를 차지했다. <안나>, < 범죄도시 2>, < 마녀2 >, <그레이맨> 등 쟁쟁한 신작들을 제친 놀라운 결과다.

넷플릭스도 물들어 올 때 '톰 크루즈' 노를 젓는 중이다. <탑건>을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전작을 새롭게 '입점'했다. 이에 힘입어 <탑건>은 최근 넷플릭스 '오늘의 영화' 상위권을 점령 중이다. 2018년 8월 재개봉 당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탑건: 매버릭>의 흥행에서 촉발된 <탑건>의 인기는 톰 크루즈라는 세기의 배우를 통해 부모와 자녀 세대가 '탑친자'로 하나 되는 재밌는 현상으로 승화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보고 자란 부모 세대가 실사 영화 <알라딘>을 자녀와 함께 관람하며 1200만 흥행 기록을 작성했던 것과도 약간 다르다.

<알라딘>이 개봉했던 2019년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이었다. <알라딘> 이전 <라이언킹>을 필두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수년에 걸쳐 진행돼 왔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화화가 하나의 단일한 장르처럼 여겨질 법하단 얘기다.

<탑건: 매버릭> 흥행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의 세계관은 온전히 올해로 '환갑'을 맞은 톰 크루즈라는 세기의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 제작 결정까지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내년이면 팔순을 맞는 <탑건> 시리즈의 유명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제작 결정도 톰 크루즈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다.

<탑건> 속편은 수년 째 속편 계획이 추진됐지만 저작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톰 크루즈의 고사를 미뤄졌다. <탑건: 매버릭>의 각본은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썼다. <작전명 발키리>부터 <잭 리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까지 연출과 각본, 제작을 넘나드는 톰 크루즈의 파트너로 유명하다.

크리스토퍼의 맥쿼리 감독의 각본은 전 세계 관객들이 확인했다시피 아버지 세대 매버릭과 아들 세대 루스터와의 반목, 화해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았다. 시나리오를 읽은 톰 크루즈는 30분 만에 OK 사인을 했고, 그 이후로 이 36년 만의 속편 프로젝트도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기획·제작만 총 23편에 이름을 올린 톰 크루즈의 감식안이 빛나는 순간이라고 할까.

톰 크루즈의 이름 값 만이 아니다. CG와 VFX를 최소화하기 위해 톰 크루즈 및 출연진들이 전투기에 실제 동반 탑승했다는 철저한 아날로그 항공 액션, 이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전문가 주의라 부를 수 있는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찬양, 전작의 '자기표절'이라 불러도 무방할 친숙하고 검증된 이야기 구조와 그에 더해진 아버지 서사까지.

<탑건: 매버릭>의 성공 요인을 구태여 재론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하나만 더하자면, '탑친자'들이 열광하는 요인 중 하나로 아이맥스 관람 욕구의 행복한 충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마블국민'이라 불린 우리 관객들에게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에선 느낄 수 없었던 '스펙터클'로서 순수한 영화적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억눌려왔던 '영화관 체험'을 120% 만족시켜준 것이다.

본인의 반대로 완성 후 26개월이나 극장 개봉을 미뤄왔던 톰 크루즈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또 한 번 적중한 셈. <탑건: 매버릭>이 그 자체로 새롭고 신선한 영화는 아니다. 도리어 환갑을 맞고서까지 본인의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한 톰 크루즈의 후반부 필모그래피 속 화두들이 집약된 영화다. 이 36년 만의 속편에 감동했다는 관객들은 물론 톰 크루즈의 팬들이 느낄 만한 진짜 가치는 거기에 있다.

아버지, 그리고 아웃사이더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이미지.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먼저 아버지 서사. 현실과 비교와는 또 별개로, 영화 속 탐 크루즈는 모범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와 거리가 멀었다. 처음으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그는 어린 아들의 행방불명 이후 이혼과 마약중독을 겪는 상처받은 아버지였다. 역시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우주전쟁>(2005)에서 외계인 침략에서 어린자녀들을 지켜내려 동분서주한다. 그럼에도 가족은 이혼으로 인해 붕괴된 상태였다.

맞다. 영화 속 톰 크루즈는 미국을 구하고, 지구를 구하느라 바빴다. 영원한 싱글 이미지로 각인돼 왔다. 언제 어디서든 이성애 로맨스가 가능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보통의 가정을 꾸리는 캐릭터는 전무했다. 50대 들어와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가 전설적인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일당의 마약을 운반하게 된 파일럿으로 출연한 <아메리칸 메이드>(2017) 속 실존 인물을 연기한 톰 크루즈는 조직적 마약 운반 사업의 핑계로 가족 부양이란 핑계를 댄다. <잭 더 리퍼: 네버 고백>(2016)에서는 본인 딸인지 모를 소녀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탑건: 매버릭> 속 매버릭이 당도했다.

매버릭은 과거 자신의 실수로 동료 구스가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인데, 그 구스의 아들 루스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케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다른 친구인 아이스맨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톰 크루즈가 단 한 번도 연기하지 않은 부성애를 강조하는 이례적인 장면이다.

마음은 충만하나 자식 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버지 세대. 이를 대변하는매버릭은 어쩌면 톰 크루즈가 연기 인생 평생에 걸쳐 부분적으로 완성해 온 아버지 서사를 집대성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1999)나 아버지와 가족을 부정하던 초기작 <레인맨>(1989)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그리고 조직과 불화하는 아웃사이더와 프로페셔널리즘. 톰 크루즈판 007 시리즈인 <미션임파서블> 시리즈 속 IMF 요원 이단 헌트는 1편에서 범인이란 누명을 벗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다. 그것이 누명이든 견해 차이이든, 상대 조직의 방해이든 이단 헌트는 끊임없이 조직이 반대하는 불가능한 미션을 해결하는 능력자다. 필모그래피 후반 유일하게 속편을 찍은 <잭 리처> 속 전설적인 육군 대위 역시 미군이 연루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반골'이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가벼운 액션 코미디인 <나잇 & 데이>(2010)에서도 그는 조직에 쫓기는 스파이였고, <작전명 발키리>(2009)는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독일 장교였다. <탑건: 매버릭> 속 매버릭 역시 전투기 무인화 시스템에 반하는 영원한 현역이자 승진을 거부하는 동년배나 후배 상관들의 골칫거리다.

영원한 현역
 
 영화 <탑건> 스틸 이미지.

영화 <탑건>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톰 크루즈의 영웅 이미지는 자연스레 능력자 캐릭터와 겹칠 수밖에 없다. 역시나 '가장 미국적인 배우'인 톰 행크스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007시리즈와 다른 길을 개척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이단 헌트 개인의 활약과 함께 갈수록 그 '능력자' IMF 요원들의 팀워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사의 방향을 전환해 왔다.

그러한 기본 구조의 변화는 극의 중심인 톰 크루즈가 나이를 먹어가며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다만, 그러한 외형적인 요인이 이단 헌트의 이미지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007 시리즈 자체도 시대상에 맞게 변모했듯이, 이단 헌트는 어떤 초월적이고 고독한 영웅이라기보다 국가와 조직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고 동료들을 이끄는 프로페셔널로서의 면모가 훨씬 강해졌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야말로 제작자 톰 크루즈의 의도와 의지가 가장 크게 반영된 영화들이다.

해군 파일럿들 간의 갈등과 성장이란 전편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채 훨씬 더 풍성한 화두를 던지는 <탑건: 매버릭> 속 매버릭이 장년 세대에게 감동을 주는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투기 파일럿이란 위험천만한 직업을 택한 후배들을 위해 냉철한 교육과 진심어린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 매버릭.

톰 크루즈는 36년 전 야심만만하던 청년이던 매버릭을 장년 세대가 닮고 싶은, 후배 세대가 존경하고 싶은 영원한 현역이자 투철한 직업 정신의 소유자로 성장시켰다. 종교 문제 외에 별다른 스캔들 없이 무려 40년 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인이자 전 세계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무한한 영향력을 미치는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무비 스타' 톰 크루즈. 

그는 최근 <탑건: 매버릭> '600만 돌파' 기념 축하 영상을 통해 내년 개봉 예정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7편 홍보를 잊지 않는 동시에 11번째 방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가장 많이 찾은 할리우드 배우가 내놓을 만한 홍보 공약 다웠다. 역시, 톰 크루즈는 톰 크루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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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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