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폰기 클라쓰> 포스터

<롯폰기 클라쓰> 포스터 ⓒ 티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 클라쓰> <환혼> <미남당> <블랙의 신부> <사랑의 불시착>'.

4일(현지시간) 넷플릭스 세계 순위 4위를 기록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부터 각각 2019년과 2020년 국내 방영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까지. 이어 tvN <환혼>과 KBS <미남당>,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의 신부>까지 더하면 꽤나 기묘한 조합임이 틀림없다.

짐작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넷플릭스 시청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의 4일자 일본 넷플릭스 TV 쇼 순위다. 1위부터 6위까지, 방영 중인 한국 드라마부터 무려 3년 전 한국 드라마가 점령했다. 7위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미드' <기묘한 이야기>다. 일본 드라마는 9위 단 한 편 뿐이고, 8위는 201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9위는 2022년 신작 애니다.

올해 초 한국 TV 프로그램 10편이 넷플릭스 일간 순위를 모조리 휩쓸어 뉴스가 됐다. 20대 시청자가 40%에 달한다는 일본 넷플릭스 순위를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하다시피 하는 건 이제 별다른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 내 한류 재점화를 견인한 뒤 대세가 됐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빈번했던 일본 드라마나 일본 예능 표절 사건이 우리 방송가를 얼룩지게 만들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중 제일 눈에 띄는 드라마는 <이태원 클라쓰>다. 최근 일본 TV아사히가 <이태원 클라쓰>의 일본 리메이크인 <롯폰기 클라쓰>를 방영하면서 도리어 원작이 넷플릭스 순위 2위까지 찍는 역주행의 전기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롯본기 클라쓰>로 재탄생한 <이태원 클라쓰>
 
 <롯폰기 클라쓰>의 한 장면.

<롯폰기 클라쓰>의 한 장면. ⓒ 티빙

 
<이태원 클라쓰>는 <사랑의 불시착>과 함께 2000년 이후 일본 내 K-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해 왔다. 장기간 넷플릭스 순위를 점령한 만큼 일본 현지에서 팬덤을 구축했고, 여러 일본 상업 방송사가 리메이크 판권 구매에 뛰어들었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이태원 클라쓰>의 판권은 결국 7시즌까지 이어진 인기작 <닥터 X 외과의 다이몬> 시리즈와 <형사 7인> 및 <유류 수사> 시리즈 등 다수의 인기 수사물을 보유한 TV 아사히가 가져갔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7월 방영에 돌입한 이 일본 리메이크 과정에 국내 콘텐츠 회사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지난 3일 <롯폰기 클라쓰> 국내 방영에 돌입한 티빙은 "한국판 드라마를 제작한 SLL(전 JTBC스튜디오)과 웹툰 원작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TV아사히의 한일 공동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탄생했다"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작 자회사 크로스픽쳐스도 함께 참여하여 완성도를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의 일본 리메이크에 드라마 제작사와 원작인 웹툰 제작사가 참여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실제 <롯폰기 클라쓰>는 크레딧에 '한일 공동 프로젝트, 조광진 & 김성윤 &크로스픽처스 팀 협력'이란 자막을 포함시켰다. 김성윤 감독은 <이태원 클라쓰>을 연출했고, 조광진 작가는 앞서 제작된 동명 웹툰을 만든 웹툰 작가다.

평균 9~10회 차에서 마무리되는 '일드' 편수와 달리 <롯폰기 클라쓰>는 13회 방영을 예고 중이다. 전체 16회차로 마무리된 <이태원 클라쓰>의 이야기 구조를 염두에 둔 배려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뚜껑을 연 <롯폰기 클라쓰>에 대한 현지 반응은 방영 전 받은 주목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은 1회 9.6%로 출발, 7%까지 추락했다 최근 4회가 8%로 올라섰다. 일본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OTT나 실시간 시청에 밀려 전통적인 시청률 수치에 대한 권위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방영 전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롯폰기 클라쓰>의 실제 시청률은 실망수치라는 현지 반응이 우세하다.

원작의 박새로이(박서준)를 연기하는 타케우치 료마는 TBS 일요극장 <테세우스의 배>의 주연을 맡은 등 주목받는 젊은 남성 배우다. 여기에 조이서(김다미) 역은 아이돌그룹 케야키자카46 출신인 히라테 유리나가, 오수아(권나라) 역은 <코드 블루> 시리즈의 아라키 유코가 맡았다.

이렇듯 배우들의 중량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의 드라마 리메이크 역사에 있어 분명 흔치 않은 화제작은 왜 원작의 후광 효과와는 거리가 멀어졌을까. 

<'이태원' 못넘은 '롯폰기'..'클라쓰' 없고 조롱거리 전락> - 지난 7월 26일 <스포츠경향>
<일본판 이태원클라쓰 공개됐는데.. 한국 원작 역주행> - 지난 7월 30일 <국민일보>
<일본판 '이태원 클라쓰'…"원작 패러디물" 혹평> - 2일 <스포츠동아>


국내 방영 전 혹평부터 보도됐다. 일본 현지 반응이나 국내 일본 드라마 팬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등에서도 같은 반응이다. 실제 <롯폰기 클라쓰>는 리메이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이태원 클라쓰>의 복사판이란 혹평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드'를 국내 리메이크한 일부 작품에 쏟아졌던 혹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공개된 작품만 놓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태원 클라쓰>를 본 시청자들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차고 넘친다. 이미 지난 2년간 강력한 팬덤을 누리면서 일본 언론이 <이태원 클라쓰>를 숱하게 분석했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도 갖가지 감상평과 패러디가 넘쳐났다.

그런 만큼 '원작의 재해석'은 기본이요, 일본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비장의 무기'처럼 준비해 놔야 했을 터. 안타깝게도, <롯폿기 클라쓰>는 타케우치 료마가 <이태원 클라쓰> 속 박서준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한 것만큼이나 철저하게 원작의 포인트를 그대로 따라간다.

단순히 인물 구도나 전체 서사 구조 및 주요 사건을 가져오는 일반적인 리메이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쉽게 말해 <이태원 클라쓰>의 총체적인 '아우라'를 롯폰기로 '이식'한 수준이다. 재해석과 달리 일본 현지에서 '패러디물'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명배우 카가와 데루유키를 제외하고, 일본 배우들의 연기 및 설정 또한 원작 캐릭터의 일본어 연기 수준이다. 출발부터 캐릭터를 구축한 연출 의도 자체가 재해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드'와 '한드'의 전반적인 호흡 차이도 고려돼야 할 요소다.

쉽지 않은 한일 드라마 리메이크  
 
 <롯폰기 클라쓰>의 한 장면.

<롯폰기 클라쓰>의 한 장면. ⓒ 티빙

 
한국 드라마는 갈수록 편집이나 촬영 영역에서 할리우드, 즉 '미드' 스타일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비단 화제작이나 대작만이 아니라 '한드' 전반이 그러하다. 심리극이면서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부부의 세계>와 원작인 영국 드라마 BBC <닥터 포스터>의 전반적인 호흡이나 리듬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현격하다.

또 예컨대 같은 케이블 장르 드라마라도 OCN이 추구 중인 본격 장르물과 일본 WOWOW 채널의 장르물은 외형이나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형사물이나 탐정물을 포함해 다채로운 장르 드라마를 통해 장르 자체의 외연에서 앞서갔던 과거 '일드'는 이제 옛말이 됐다. 장르물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도 우리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는 얘기다.

아울러 제작비 규모가 현격한 '일드'는 빠른 편집보다 긴 호흡을 고집하거나 소위 '때깔' 자체를 크게 고집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무엇보다 정서와 감정을 강조하는 '한드'와 달리 '일드'의 연출은 훨씬 더 '점잖다'. <시그널>이나 <싸인> 같은 한국 장르물과 일본 리메이크 버전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다가올 법하다.

한일 양국은 서로 간 가장 많은 리메이크 작품을 주고 받는 국가다. 수십 편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양국에서 꾸준히 제작된 반면 큰 반향을 일으킨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요인으로 가까우면서도 먼 양국 각 정서나 갈수록 변화하는 제작 및 방영 환경의 차이 등이 꼽힌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반드시 요구되는 요소가 바로 제작진의 독창성일 것이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오늘의 웹툰>은 2016년 일본에서 방영된 동명만화 원작이자 국내에서도 꽤 많은 독자 및 시청자를 자랑했던 <중쇄를 찍자>를 리메이크 한 드라마다. 원작의 대형 출판사 만화잡지 편집부 배경을 대형 포털 웹툰 편집부로 옮긴 <오늘의 웹툰>이 어떤 재해석을 가했는지 확인하는 일도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티빙 측에 따르면, <롯폰기 클라쓰>는 한국 외에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태국, 북미 등에서 공개가 확정됐다. 중국을 제외하고 모두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지역이다. 심지어 중국 OTT 플랫폼인 '유쿠' 역시 지난 5월 <이태원 클라쓰>를 방영했다. <롯폰기 클라쓰>가 본국 일본에서의 시원치 않은 반응을 딛고 여타 국가에서 또 어떤 다른 평가를 이끌어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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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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