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 ㈜쇼박스

 
*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짧지 않은 140분 동안 줄곧 반성하는 마음으로 관람했다. 영화 <비상선언>은 내게 근래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온갖 참사들을 잊지 말라는 죽비소리로 다가왔다. 마음 졸이게 하는 장면들과 등장인물의 몸짓과 대사 하나하나가 참사 당시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압도적인 '빌런' 연기를 선보인 임시완(진석 역)의 행각을 통해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2003년 2월 어느 날 우울증을 앓던 한 남성의 방화로 사망자만 무려 192명에 달한 초대형 참사였다. 관계자들의 서툰 대처와 무책임한 태도로 오랫동안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기내에서 화상 통화를 통해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 장면에서는 누구든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관람 당일 해당 장면이 이어지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관람하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운 영화일 성싶다.
 
그런가 하면,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치명적인 감염병이라는 소재는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진다. 대본이 완성된 게 코로나 이전이라는 설명에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예언했나 착각할 정도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마스크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게다가 항공기의 착륙 허가 여부를 놓고 찬반으로 갈리어 시위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현재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등 양극단으로 쪼개진 여론 지형을 꼬집고 있는 것 같다. 소재에서부터 표현 기법과 줄거리에 이르기까지, 은유일지언정 이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에 보내는 감독의 '비상선언'이라는 해석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고스란히 담은 영화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 ㈜쇼박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흡사 참사와 관련된 실제 인물들을 그대로 재현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오지랖 넓은 형사팀장으로 열연한 송강호(인호 역)는 얼마 전 퇴임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모습과 겹친다. '몸을 갈아 넣어' 제 역할을 완수하는 공무원의 표상으로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공무원을 '공복'이라 칭하는 이유를 그들은 몸으로 설명해냈다.
 
기내 승무원 사무장 역의 김소진(희진 역)의 이타적 행위를 통해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 숨진 인솔 교사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가만히 있어라'던 그때, 그들은 아이들을 향해 탈출하라고 외쳤고, 구명조끼를 서둘러 건넸다. '죽어도 아이들과 함께 죽겠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객실로 내려간 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반면교사 삼으라는 듯한 설정도 있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영화 속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가 보여준 무능함을 빼다 박았다. 착륙을 불허한 미국과 일본 정부의 발표에 아무런 대응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언뜻 현 정권의 '외교 참사'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사람의 목숨조차 이윤으로 환산하는 백신 기업의 횡포를 보여주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사설 경호업체를 동원하여 경찰의 출입을 막고 조사를 방해하는 모습이 그렇다. 기업의 요청으로 경찰력이 동원되어 방호벽을 치는 게 다반사인 까닭에 되레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압박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백신을 제공받게 된다는 설정 또한 영화적 상상력에 가깝다. 갑과 을의 위치가 이미 바뀐 현실에서 정부가 압박한다고 고분고분할 기업은 많지 않다. 더욱이 영화 속 설정처럼 다국적 기업의 경우라면, 이윤을 보장하는 것 외엔 달리 손써 볼 방법이 없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이 나온 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
 
하물며 영화에는 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고위공직자가 사실상 국토부 장관(전도연 분) 한 명뿐이다. 죄다 사태의 해결보다 면피에만 급급한 국무회의 자리에서 그의 당당함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끝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그에게 관객들이 연민을 느끼는 건, 그러한 고위공직자를 현실에선 좀체 만나기 힘들어서일 게다.
 
그렇게 영화는 두 시간 넘도록 우리 사회의 속살을 빈틈없이 담아냈다. 조금 과하다 싶고 마무리 부분의 사족 같은 장면이 눈에 좀 거슬리지만,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소재들을 잘 엮고 버무려놓았다. 문외한의 어쭙잖은 지적일 테지만, 굳이 흠을 찾는다면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혹평 일색이지만, 이 영화가 고맙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무척 박한 듯하다. 최근 우리 영화의 제작 수준에 걸맞지 않게 신파극으로 퇴행했다는 지적부터, 흥행을 위해 온갖 요소를 끌어다 놓은 잡탕 영화라는 혹평까지 나온다. 초호화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였는데,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매체나 언론 등에 기고된 영화 평론가들의 관람평도 대동소이한 것 같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품평에 감히 토를 달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견해에 맞장구가 쳐지진 않는다. 이른바 '좋은 영화'에 대한 그들과 나의 기준이 크게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이 말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나와는 기준이 천양지차 같다.
 
솔직히 영화광도 아닌 내가 배우들의 연기력을 왈가왈부할 깜냥은 못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일곱 명 중 누가 가장 연기를 잘했고 못 했는지 서열을 매기진 못하겠다는 거다. 그저 임시완의 '빌런' 연기는 소름이 끼쳤고, 송강호의 자상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에선 대배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 쇼박스

 
이병헌(재혁 역)은 실제 아토피를 앓는 아이의 아버지처럼 느껴졌고, 김소진이 죽어가는 승객에게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내 두 손도 함께 들썩였다. 김남길(부기장 현수 역)이 대신 조종간을 잡은 이병헌에게 건넨 화해의 말엔 감정이 이입되어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대체 영화의 어떤 구석이 못마땅하다는 걸까. 설마 수많은 관객 중 나만 그들의 연기에 감동했던 걸까. 특히 '싸구려 신파극'이라는 혹평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뜻일 테다. 언제부턴가 신파극은 수준 낮은 삼류 영화와 동의어가 됐다.
 
솔직히 '싸구려 신파극'이라는 혹평에선 은연중에 다양한 문화 장르에 서열을 매기려 드는 엘리트 의식이 묻어난다. 머리를 쥐어짜며 봐야 하는 예술 영화라야 '좋은 영화'라는 투다. 클래식에 견줘 대중음악을 저급한 장르로 간주하고, 트로트를 '뽕짝'이라 부르며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으로 낙인찍는 행위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이고, 뭉클하고, 울컥했던 건, 장면마다 우리가 직접 겪었던 참사 때의 고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배로 바꾸면 어김없이 세월호였고, 바이러스를 백혈병으로 바꾸면 영화 속 백신 기업은 영락없이 특효약과 환자의 목숨값을 흥정했던 다국적 제약 업체였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늘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값이 영화를 보게 만든 첫 번째 동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연기력을 기준 삼아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평가하진 않는다. 당장 내겐 긴 상영 시간이 순간처럼 느껴진 영화가 '좋은 영화'다. 지금의 내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 영화라면 더 바랄 게 없는 최고의 영화다.
 
20년 가까이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세월호 참사조차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었다. 최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노란 고무링이 스스로 무색해질 정도였다. 안팎으로 혹평 일색이지만, 그것을 일깨워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반갑고 고마웠다. 수준 낮은 관람객이라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영화 <비상선언>은 적어도 내겐 그 어떤 영화보다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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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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