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에는 극 중 반복되는 빛 번짐 현상의 경우 영사상의 문제가 아닌, 연출로 의도된 하이레이션 효과인 점 안내드립니다."

극장을 나서고야 의문이 풀렸다. <비상선언> 초반, 잠시 잠깐 영사 사고를 의심해야 했던 빛 번짐 현상의 정체 말이다. 동대문의 한 멀티플렉스 측이 고지한 위 공지 속 하이레이션(Halation, 헐레이션 혹은 할레이션)은 직사광선이나 발광체를 직접 촬영한 반사광 등으로 인해 후광이나 영화의 희미함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공항을 비롯해 자연광이 도드라지는 <비상선언> 초반 장면은 이러한 빛 번짐 형상이 종종 발견된다. 부자연스러운 듯 자연스럽다. 즉, 조명 연출로 인한 인위적인 화면 대신 극도로 현실감 넘치는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사실감과 현실 반영을 위한 부단한 경주는 <비상선언>을 온전히 읽어낼 수 있는 친절한 단서와도 같다(영화의 촬영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아수라>, <헌트> 등의 이모개 촬영감독과 <최종병기 활> 등의 박종철 촬영감독이 맡았다). 항공재난영화 <비상선언>의 그 경주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극장 안 관객들에게 간접 체험케 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다.

<우아한 세계>‧<관상>‧<더 킹> 한재림 감독의 이름값, 송강호‧이병헌‧전도연, 그리고 임시완‧김남길‧김소진‧박해준에 이르는 '캐스팅만 천만' 배우진, 여기에 '항공 재난영화'라는 한국영화 사상 흔치않은 장르와 이를 뒷받침한 300억 넘는 제작비까지. 화제작의 면모를 두루 갖춘 <비상선언>은 지난해 제74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 월드프리미어로 공개되며 일정의 완성도를 검증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화제성을 입증하듯, <비상선언>은 개봉일인 3일 33만을 동원해 경쟁작 <한산 : 용의 출현>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날 <한산>이 300만(누적 323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치열한 예매율 경쟁에 돌입한 두 작품은 8월 첫째 주 주말 치열한 선두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별개로, <비상선언>은 언론 시사 및 일반 공개 직후 '신파'를 거론하거나 몰입도 높은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가 기대와는 다르다는 평이 적잖다. 기대 속에 비상한 이 화제작은 대한민국 관객들의 유독한 '이순신 사랑'을 뛰어 넘을 만한 작품일까.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 ㈜쇼박스

 
압도적인 몰입감과 현실감

"걸레 같은 년이."

영화 오프닝, 임시완이 연기하는 진석이란 캐릭터가 스튜디어스에게 이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관객들의 불쾌감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공항을 배회하다 "승객이 가장 많은 비행기"를 문의하고 "승객 숫자가 얼마냐"고 묻는 이 말끔한 남자에게 스튜디어스는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정중하게 대답을 거절한다. 여기에 되돌아온 승객의 답이 저 모양이라니. 이 수상한 남자를 <미생>의 '장그래' 임시완이 연기한다. 탁월한 캐스팅이다. 

그로부턴 직진이다. 그의 대척점엔 아버지와 남편들이 자리한다. 같은 승객인 재혁(이병헌)은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무릅썼다. 재혁의 딸은 진석의 우연찮게 수상쩍은 행동을 봤고, 그걸 알아 챈 진석은 이들과 같은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탑승한다. 그리고, 지상에서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을 접한 형사 팀장 인호(송강호)는 혹시나 아내가 탄 비행기에 용의자가 탄 건 아닌지 노심초사다.

항공재난영화 임을 선포하듯 공항 장면에서 시작하는 <비상선언>은 이후 한국영화 사상 남다른 속도감과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훗날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것이 밝혀지는 부기장 현수(김남길), 비행기 사무장 희진(김소진) 등 다른 인물 소개도 일사천리다. 인호가 쫓는 테러범의 정체도 금세 공개한다.

시종일관 장면 장면을 쉴 새 없이 전개시킨다. 비행기 안과 지상을 부지런히 오간다. 꼼꼼하게 그리고 정석에 가깝게 인물들의 성격과 감정을 쌓아올린다. 빛 번짐까지 감수한 채 흔들리는 카메라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를 위해 재난영화 특유의 서스펜스 분위기를 넘어 사이사이 공포 장르식 장면 연출도 차용했다. 

이러한 잘 짜인 형식과 설정 모두 비행기 테러라는 재난 상황에 맞닥뜨린 승객의 공포와 절망을 극대화하고, 이를 속수무책 지켜보거나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인물들에게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항공기가 360도 회전하는 위기 장면은 항공기 사고 간접 체험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비상선언>은 끝까지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기술력의 현재를 전시하고 감독의 남다른 장르세공술을 자랑했어도 충분했다. 한데 갈수록 영웅적인 개인이 테러범을 때려잡고 승객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기존 항공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상선언>은 전반부까지 왜 이토록 가혹하게 재난 상황을 체험케 했는가.  

당신이 비행기에 탄 승객이라면

비행기 안에 퍼진 바이러스 백신을 확보하고자 위험천만한 교통사고까지 무릅쓴 채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인호. 그가 의아해하는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에게 말한다.

"공무원이잖아요."

실상 행위의 동기가 아내를 구하기 위한 절박함만이었더라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형사라는 직업 자체가 공공의 안전을 위해 복무하는 일이지 않은가. 더욱이 <비상선언>은 이야기 전개 자체가 경찰이, 정부 관료가, 항공사 직원들이, 특히 재혁과 인호가 주어진 자기 직분과 책임을 신속하게 완수할 때만이 성립된다.

그것이 150명 승객의 생명이라면 이들의 책임은 더 막중해진다. <비상선언>은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상에서 동분서주하는 국토부장관을 여타 항공재난영화보다 한발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국민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영화의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숙희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 ㈜쇼박스

 
비단 공항 관제탑이나 항공사 지휘 센터, 대테러센터 콘트롤타워 만이 아니다. 중후반부터, <비상선언>은 장르적 쾌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지상의 반응을, 그러니까 언론 보도를 통한 국민들 반응을 시시각각 집요하게 나열한다. 그 안엔 승객들의 귀환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포함돼 있다.

감염자들을 구할 항바이러스제의 확보 및 미국과 일본을 거치는 항공기 착륙 시도와 회항 과정의 고난이 거듭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전반부를 압도한 몰입감과 현실감은 후반부 내내 감독이 던지는 질문을 따라잡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자 배려인 셈이다. 

그 질문을 풀이하자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이들 150명 승객들의 귀환을 반길 수 있겠습니까.' 더 구체적으로는, '절망 끝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우리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당신은 끝까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럴 때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비상선언>의 재난 체험은 '당신이 150명 승객이라면?'이란 전반부 간접 체험을 경유해 '국가가 다른 국민들을 버리고자 할 때, 당신은 동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라는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위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후반부가 껄끄럽게 느껴지거나 불편하게 다가왔다면 바로 이러한 집요한 묘사와 그 속에 담긴 질문들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비상선언>이 던지는 이러한 문제의식은 <변호인> 속 "국가란 국민입니다"의 현재적 판본이요, <괴물>의 '한재림 버전'이라 할 만하다. 장르영화를 통해 한국사회란 공동체의 이면을 파헤치는 동시에 보편적인 국가의 책임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하나 더 남았다. 맞다. 세월호 참사다.

그리고 300억 상업영화의 윤리의식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영화 <비상선언> 스틸 이미지. ⓒ ㈜쇼박스

 
<한산>의 '왜놈 때려잡기'와 같은 영화적인 쾌감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항공기 회항 등 핍진성을 일정부분 놓쳤다거나 후반부 갈등과 해결이 반복되는데 대한 지적은 납득 가능하다. 안락한 해피엔딩을 포기한 데 대한 이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다만 신파에 기댔는지는 의문이다. 영화적으로 '신파'(新派)는 감정의 동요를 극대화하는 장면들이 과잉을 이루거나 그 넘쳐흐름이 구조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매끄럽지 못할 때 쓰이는 부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원뜻과는 별개다. 개화기 이후 근대 극 양식의 서사 구조의 전개나 한국식 리얼리즘의 천착 등과 같은 역사적 맥락이나 어원 자체와는 별개로 부정적 용어로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상선언>의 후반부가 눈물과 억지 감동을 짜내기 위해 신파의 요소를 끌어왔을까. 신파를 의도했다면 얼마든지 더 쉬운 선택이 가능했다. 예컨대, 인호의 아내를 주요 배역으로 설정, 감정과 갈등 양상을 점차 고조시킨 후 후반부 아내와의 영상 통화를 통해 눈물바다를 끌어내는 방식처럼 말이다.

<비상선언>은 그런 안일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일부 승객 조단역들에게 나름의 얼굴과 목소리를 부여하고자 노력한다. 승객 중 한 명인 여자 고등학생이 입은 교복과 그 색깔마저도 눈 밝은 관객은 쉬이 지나칠 수 없을지 모를 일이다. <비상선언>이 가리키는 현실의 시간은 명백히 '세월호 참사 이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영화를 마주할 때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상선언>은 이 트라우마를 은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인호 아내를 필두로 승객들과 가족들 간 나누는 꽤나 긴 영상통화 장면의 존재가 그것이다. 

신파를 위한 강조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납득할 만한 설정들도 충분히 부여된다. 설정 자체가 2022년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후반부 내내 이어져온 묵직한 질문의 여파와 잔상도 여전하다. 

감독의 의도대로, 이 장면은 저마다 양상이나 세기가 다를 세월호 트라우마를 환기시킨다. 우리의 기억이 기어코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영상을 소환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추구해 온 주제 의식, 즉 2시간 20분 동안의 재난 체험을 스크린 안팎 타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결부된다. 

이러한 감정은 영화 밖 기억의 소환을 넘어 영화가 후반부 내내 제기한 화두와 공명한다. <비상선언>은 그리하여 실제여도 상상이어도 무관할 지 모를 엔딩 이후 극장문을 나선 이후까지 그 질문들을 곱씹게 만드는 어떤 결기를 선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이 300억짜리 상업영화가 택한 윤리의식이다.

여기에 2년이 넘도록 겪은, 개봉까지 미루게 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졌다. 전 인류가 겪은 팬데믹 공포가 하필 일정 소재마저 겹치는 이 재난영화의 몰입도를 반감시킬지 상승시킬지는 미지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비상선언>이 대한민국 웰메이드 장르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와 극한의 체험을 통해 전 국민적 트라우마에 대한 흔치 않은, 나아가 진심어린 말걸기를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나름의 애도와 예의 대신 불편하고 불필요한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라 판단할 이들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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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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