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가요계를 대표하는 솔로 여성 가수 이효리가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김완선과 엄정화를 잇는 가요계 최고 디바 이효리의 결혼 소식에 연예계는 들썩거렸고 과연 대중들은 이효리와 결혼할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이효리와 결혼을 하게 된 연인은 바로 밴드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으로 밝혀졌다.

이상순은 현재 MBC <놀면 뭐하니?>와 JTBC <효리네 민박>을 비롯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2011년 두 사람의 열애가 처음 공개될 때만 해도 이상순은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은 기타리스트였다. 그런 이상순이 슈퍼스타 이효리와 결혼한다고 하니 대중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현재 이효리-이상순 부부는 햇수로 10년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성격과 취향, 환경, 조건 등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녀관계라는 것은 워낙 오묘하고 예측하기 힘들어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10년에 개봉해 관객들로부터 잔잔한 사랑을 받았던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동철(박중훈 분)과 세진(정유미 분) 커플처럼 말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 전국 69만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 전국 69만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들 한 번씩 거쳐 갔던 3류 깡패 연기

영화에서는 좋은 조건을 가졌거나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 주인공을 맡는 경우도 많지만 누가 봐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소위 '루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 사실 마냥 잘난 사람보다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기 좋은 경우가 많다.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만나기 쉬운 직업군이 아닌 '3류 건달'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 최고의 배우로 군림했던 한석규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 <초록물고기>에서 군 전역 후 태곤(문성근 분)의 조직에서 일하게 된 3류 깡패 막동을 연기했다. 조직의 막내로 들어간 막동은 보스 태곤에 대한 충성심으로 라이벌 조직의 보스 김양길(명계남 분)을 제거하지만 임무를 완수한 막동 역시 자신이 믿고 따르던 태곤에 의해 제거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2014년 영화 <명량>으로 1760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한국영화 최다 관객 신기록을 세웠던 최민식도 2001년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에서 '3류 건달' 연기를 한 적이 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이 위장 결혼한 파이란(장백지 분)의 사랑을 받은 3류 건달 강재는 세상을 떠난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가서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라고 써진 파이란의 편지를 읽고 오열한다.

백수 및 건달 연기에 특화된 배우 임창정 역시 윤제균 감독의 2007년작 < 1번가의 기적 >에서 재개발을 목적으로 주민들에게 도장을 받으러 온 용역깡패 필제를 연기했다. 필제는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자를 사칭해 마을에 수도와 인터넷선을 설치하며 마을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는다. 급기야 마지막에는 동양챔피언을 꿈꾸는 여성 복서 명란(하지원 분)의 매니저로 나서며 완전한 선역 전환(?)을 선언했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명대사를 남겼고 상영시간 181분짜리 감독판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 드라마 <내부자들>에도 3류 깡패가 등장한다. 한때 '안회장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나가는 정치 깡패였지만 너무 큰 욕심을 부리다 오른손이 잘리고 나이트클럽의 화장실 웨이터로 전락한 안상구가 그 주인공이다. 안상구는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이병헌의 명연기와 만나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베테랑 배우 재기와 함께 취준생 아픔도 위로
 
 <내 깡패같은 애인>의 한 장면. 취준생 세진(왼쪽)과 3류깡패 동철은 집 근처 분식집에서 2500원 짜리 라면을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내 깡패같은 애인>의 한 장면. 취준생 세진(왼쪽)과 3류깡패 동철은 집 근처 분식집에서 2500원 짜리 라면을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박중훈은 영화계에서 '재기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초반 연기가 정체됐다는 평을 받았을 때 <투캅스>라는 '인생작'을 선보였고 1990년대 중반 이후 한석규의 약진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땐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건재를 과시했다. 박중훈은 2000년대 들어 연극배우 출신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줬지만 2006년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를 통해 또 한 번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2010년에도 마찬가지. 박중훈은 2009년 윤제균 감독의 재난영화 <해운대>에서 쓰나미의 위험을 처음 발견하는 김휘 역을 맡았지만 영화의 엄청난 흥행에도 박중훈의 연기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박중훈은 1년 후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3류 건달 오동철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해운대>의 오명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다. 제작비가 10억이 채 되지 않았던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전국 69만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돌파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대학 4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음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은커녕 제대로 면접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청년세대의 취업난을 정면으로 다뤘다. 면접 현장에서 취업이 절실한 세진에게 춤과 노래를 시키는 파렴치한 면접관이 등장할 정도. 그렇게 힘들게 취업에 성공해 최연소 대리로 승진한 세진은 신입사원들에게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격려한다.

조직에 방해가 되는 전직 경찰 박반장(정인기 분)을 제거하기 위해 투입된 동철은 오히려 박반장의 칼에 맞는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동철은 계단에서 첫눈을 보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반지하 방을 나온 세진도 동철을 생각하며 첫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를 잊고 살던 동철과 세진은 세차장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재회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이 장편 데뷔작이었던 김광식 감독은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받으며 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김광식 감독은 2014년 두 번째 작품 <찌라시: 위험한 소문>으로 120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손익분기점(140만)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다. 그 후 4년 간 절치부심한 김광식 감독은 2018년 <내 깡패 같은 애인>의 20배가 넘는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사극 <안시성>을 연출하며 540만 관객을 동원했다.

본명으로 출연했던 <보이스> 방제수의 루키 시절
 
 <내 깡패같은 애인>의 한 장면. 막내 깡패 재영은 선배 동철의 만류 덕분에 일찍 손을 씻을 수 있었다.

<내 깡패같은 애인>의 한 장면. 막내 깡패 재영은 선배 동철의 만류 덕분에 일찍 손을 씻을 수 있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도 입사 시기는 같아도 승진시기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조직 폭력배들도 나이가 같아도 조직 내 서열이 다른 경우가 생긴다. 사적으로는 친구인 동철과 종서(박원상 분) 역시 조직 내에서는 서열이 다르다. 문제는 동철이 서열이 높은 종서의 지시를 잘 듣지 않는 것을 떠나 사실상 조직 내 서열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이다. 종서는 동철의 실수로 조직 내 업소가 경찰의 단속에 걸린 비상상황에도 종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정의감 넘치고 강단 있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 정인기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경찰 출신의 깡패 박반장을 연기했다. 형사반장 출신으로 동철과 동철의 조직을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여전히 경찰 내 박반장의 인맥이 많기 때문에 조직에서도 박반장을 함부로 손 보지 못한다. 결국 동철이 앞장서 박반장을 제거하려 했지만 여전히 형사 시절의 실력이 남아있던 박반장은 역으로 동철을 칼로 찌른다.

<명량>에서 이순신 아들 이회, <보이스2>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방제수를 연기했던 배우 권율은 신인 시절 오동철 조직의 막내 재영으로 출연했다(<내 깡패 같은 애인>에 출연할 때만 해도 본명인 권세인을 사용했다). 동철이 그랬던 것처럼 출소 후 조직의 '에이스' 자리를 약속받고 동철 대신 감옥에 들어가는 역할을 맡았지만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동철은 재영을 돌려보낸다. 그 후 조직 생활을 청산한 동철과 재영은 세차장에서 함께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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