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선조라는 임금만 놓고 보면 패전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백성들의 원성을 무릅쓰고 수도 한성을 탈출해 개성-평양-영변을 거쳐 의주로 달아나더니 압록강까지 건널 생각을 했던 그의 모습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 임금 때문에 망할 뻔했던 조선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런 나라를 구출한 사람들이 일반 민중이고 의병이고 승군이고 관군 병사들이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그중 일부인 조선 수군과 이순신 장군이 일궈낸 결정적 기여를 조명하고 있다.
 
영화 속의 이순신(박해일 분)은 여진족과 싸우다가, 마치 독수리떼처럼 하늘을 새까맣게 수놓은 엄청난 화살 세례를 받고 쓰러진다. 꿈이었다. 꿈 속의 이 장면처럼 이순신은 본래 여진족을 방어하던 육군 장교였다. 임진왜란 1년 전에는 정읍현감이었다. 그가 얼마 안 있어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일본의 대륙 진출을 막게 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군주와 왕실이 표준이 되던 시대였다. 한양 경복궁 근정전 어좌에서 임금이 내려다볼 때 전라'좌도'였으므로, 지도상으로는 전라'동도'였다. 전쟁 직전에 이순신이 남해안 중간인 전라도 동부 수역으로 배치된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매우 절묘한 한 수였다.
 
그런 절묘함은 그가 20대 초반에 결혼한 뒤에도 있었다. 문신 사대부 가문이라 적성에 맞지 않는 문과 공부를 해야 했던 그가 스물한 살인 1566년부터 마음 놓고 무예를 연마한 것은 가문을 벗어나 '가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릴사위가 보편적이었던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자기 집으로 장가온 이순신의 재능을 알아본 장인이 그쪽으로 길을 터준 결과였다.
 
딸밖에 없는 재력가인 장인이 적성을 간파해 길을 열어주고, 전쟁 직전에 유성룡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추천해주는 일이 없었다면, 임진왜란 해전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거나 아니면 이순신이 아닌 제3의 인물에 의해 장식됐을 수도 있다. 한산대첩은 방진과 유성룡이 사람을 제대로 봤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한산도대첩으로도 불리며 진주대첩·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은 조선 수군이 남해 대부분 지역에서 제해권을 확보하는 발판이 됐다. 조선 수군과 이순신을 그냥 놔두고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정복 야망을 실현할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무더운 2022년 한여름. 영화 <한산>은 한산대첩이 갖는 그 같은 의의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도 흔들림 없는 침착성을 유지하며 수군을 지휘하는 이순신의 모습과 더불어, 한산 해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전투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망을 불투명하게 만든 역사의 한 순간을 생생히 전달해주었다.
 
조선 수군이 불리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전세를 바꿔놓는 거북선의 모습은,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전쟁 발발 직전에 이순신이 거북선을 준비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바다에 띄운 것은 발발 보름 전인 음력 3월 27일(양력 5월 8일)이었다.

영화 '한산' 속 날짜의 오류
 
 영화 <한산> 스틸 이미지.

영화 <한산>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점들을 포함해 영화 <한산>은 그 역사적 사건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동시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전달해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평할 수 있다. 일례로, 화면 자막을 통해 날짜의 흐름을 알려주는 영화치고는, 날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막을 만든 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자막은 일본군이 4월 13일에 침략했다고 알려준다. 음력으로 선조 25년 4월 13일자(양력 1592년 5월 23일자) <선조실록>은 "13일 임인일에 왜구가 왔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선조 25년 4월 13일'은 음력 날짜다. <한산>은 이 전체를 양력으로 바꾸지 않고, '4월 13일' 부분은 음력 그대로 노출했다. 임진왜란 발발 날짜를 양력으로 환원하면 1592년 5월 23일이다. 화면 자막에 날짜를 많이 표기하면서도 실록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실수다.
 
<한산>은 이 대첩에 대한 이순신 본인의 관점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사극 영화나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범해온 우를 이 작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에서도 내내 강조됐듯이, 한산대첩은 견내량이라는 좁은 물길에 진을 치고 있던 대규모 일본 함대를 비교적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격파한 사건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견내량보다는 한산을 더 중시해 한산대첩이라 부르지만, 전투 직후의 이순신은 그렇지 않았다.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전투 보고서 제목은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이다. '한산'파왜병장이라 하지 않고 '견내량'파왜병장이라고 했다.
 
 본문에 인용된 '견내량파왜병장' 보고서.

본문에 인용된 '견내량파왜병장' 보고서. ⓒ 한국고전종합DB

 
제목을 '견내량 왜병 격파 보고서'라고 한 것은 한산 앞바다에서 대승을 거둔 사실보다는 견내량에 있던 적을 끌어낸 사실이 전투 직후의 이순신에게 더 인상적이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산 못지않게 견내량에도 주목해야 이순신의 생각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견내량파왜병장'에서 이순신은 "견내량의 지형이 협착하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선처럼 큰 배는 서로 부딪혀 싸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왜적들은 만약 형세가 궁해지면 바다 기슭을 타고 뭍으로 올라가겠기에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어 완전히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적군이 견내량에서 패배하면 이들이 뭍으로 도망가기 쉬웠다. 그런 적들을 한산 앞바다로 끌어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망가버리면 붙잡기 힘든 곳에 있던 적군을 대파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면, 아무래도 한산보다는 견내량을 부각시키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부하 군인들의 전공을 중앙에 충분히 알리려면 그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한산>은 이순신이 지적한 견내량의 지형적 특성을 영화 장면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산이 아닌 견내량에서 대승을 거뒀음을 임금에게 강조한 이순신의 내면 심리는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고 평할 수 있다.
 
이순신 대 와키자카의 구도
 
 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한산>은 이 대첩의 일본측 사령관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를 이순신의 라이벌 혹은 상대역으로 설정한다. 이렇게 이순신 대 와키자카의 구도를 부각시키려다 보니 생기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와키자카의 지도자 자질을 실제보다 높게 묘사하게 된 점이 그것이다.
 
영화 속의 와키자카는 이순신 부대를 견내량으로 끌어들인다는 구상을 세운다. 그래서 이순신의 유인 작전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이순신은 한산으로 끌여내려 하고 와키자카는 견내량으로 끌어들이려는 수 싸움이 영화의 긴장도를 높인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정도의 수 싸움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꽤 싱거운 편이었다. <견내량파왜병장>에서 이순신은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선봉의 왜적들을 쫓아가 공격할 기세를 보이자, 여러 척의 왜적들도 일제히 돛을 올리고 쫓아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영화에 묘사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수 싸움은 실제로는 없었다고 봐야 옳을 듯하다.
 
<한산>은 와키자카를 비롯한 일본 장군들이 이순신과의 한판 승부에 대해 비장한 각오를 갖고 임한 듯이 묘사했다. 조선 수군과 이순신만 격파하면 명나라로 직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표출된다.
 
하지만 한산대첩까지만 해도 일본군은 해전에 그리 높은 비중을 두지 않았다. 점점 부각되는 이순신의 존재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해전이 전쟁의 향방을 가르리라는 인식은 적었다고 봐야 정확하다. 상황을 그렇게 가볍게 보고 있었다는 점은 일본군이 대패한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한다.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이순신 평전>은 한산대첩 직전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당시 일본의 중앙 수군에 속한 장수들은 대부분 육전을 치르고 있었기에,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나 목표가 없었다"라면서 "이 점은 일본군의 전쟁 추진 과정에서 큰 한계점으로 작용했지만, 조선 수군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라고 평한다.
 
일본 수군 사령관이 실제는 수 싸움에 능하지 못했으며 일본군 자체적으로도 거시적 안목이 없었다는 점은, 한산대첩 자체는 대단한 사건이지만 일본군 사령관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영화가 강조한 이순신 대 와키자카의 일대일 구도가 한산대첩의 진면목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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