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사는 정리해고를 시작했고 45세 정년을 뜻하는 '사오정'과 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이라는 '오륙도' 등 신조어가 떠돌았다. 그러자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월급을 삭감하고 신규 채용을 늘리자는 취지였다. 과연 임금피크제는 잘 시행되고 있을까. 

지난 7월 26일 MBC < PD수첩 >에서는 '월급을 깎는 완벽한 방법? 임금피크제'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을 통해 임금피크제 악용 사례와 제도 보완의 방안을 모색했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7월 27일 '월급을 깎는 완벽한 방법? 임금피크제' 편을 연출한 황순규 PD와 만났다.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다음은 황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 PD수첩 > 연출 오랜만인데,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말씀하신 대로 한 4년 만에 < PD수첩 >에 왔어요. 예전보다 잘 짜인 제작 시스템에 많은 걸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훨씬 취재하기 좋은 환경이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태프들하고 같이 일을 해봤는데요. 능력 있는 제작팀들이 많이 도와줘서 프로그램을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 임금피크제는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어요?
"사실 '임금 피크제'는 저도 단어만 들어봤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5월 말에 대법원판결이 위법으로 나면서 이슈가 되었죠. 각 노동계는 사측 상대로 소송에 들어가는 분위기였고, 경영계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제도라며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임금피크제가 어떤 제도이길래 노동계는 저렇게 환영하고 경영계는 반발하는 건지 궁금해서 사전 취재를 해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사건 사고나 명확한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 떨어지는 주인공이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기에 처음 기획안 쓸 때도 프로그램이 너무 논문 같지는 않을까 < 100분 토론 >에서 해야 하는 주제는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사전 취재했던 사례를 잘 보여주고, 아직 TV에 노출되지 않았던 대법원판결 사례자를 만나 판결의 의미 등을 잘 설명해준다면 논문 같은 내용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습니다."

- 원래의 취지와 현장에서의 임금피크제는 많이 달랐나요?
"차이가 많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도가 처음 생겨난 이유는 좋은 의도에서 생겨났던 것 같아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노동자는 고용 안정을 보장받는 대신에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임금을 조금씩 조정하자' 그리고 '남는 재원을 다시 신규 채용에 투자하여 청년실업도 해소를 하자'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관리 감독이나 어떠한 규제도 없다 보니 각 사업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임금피크제는 합법의 탈을 쓰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있었으며, 더 나가서는 위장 해고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죠. 노동자를 위해 생겨난 제도가 노동자에게 엄청남 피해를 주고 있는 제도로 변질된 모습이었죠."

- 방송 보니 임금 50~70%를 삭감하는 회사도 등장했습니다.
"저도 이 사례를 접하고 너무 놀랐어요. 70%를 삭감한다는 건 임금의 30%만 받고 일하는 것과 같잖아요. 이건 임금피크제 본래의 취지와도 맞지 않고, 생존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같이 키워온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상실감도 상당히 컸을 것입니다. 그 사업장은 사직서 쓰고 나가라는 소리를 '임금피크제'라는 제도로 이야기하고 있었죠."

- 임금을 깎으려면 업무량이나 근무 시간도 줄여야 하지 않나요?
"제대로 된 사업장이면 그렇게 하죠. 이번 대법원판결에서도 정당한 임금피크제 기준 4가지를 제시했어요. 임금피크제 도입은 합당하게 이루어졌는지, 노동자들의 불이익은 어느 정도인지. 그만큼 업무량이나 업무강도도 줄어들었는지, 감액된 재원이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입니다. 이런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는 위법이며 '나이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MBC < PD수첩 > 황순규 PD

MBC < PD수첩 > 황순규 PD ⓒ 이영광

 
- 법으로 제재가 안 되나요?
"법으로는 강제하고 있지 못합니다. 너무 다양한 사업장의 이유가 있을 테니 노사 합의에 의해서 진행될 수 있게 법은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고용노동부 쪽에 '2016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반강제로 정부에서 권유하지 않았냐. 이상한 형태로 변질된 임금피크제 현장을 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지만, '노사의 문제이고 정부가 관여하기엔 한계가 있다. 억울함이 있는 노동자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거나 소송 진행하는 방법 두 가지를 안내해 주고 있다'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 대교 사례는 4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았다고 나와요.
"대교는 임금피크제 도입 방식을 두 가지로 만들어 놨었죠. 하나는 나이가 도달하면 걸리는 연령 임금피크제가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승진을 못 하면 걸리는 직급 정년 임금피크제.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30~40대 나이에도 승진을 못 하면 자동으로 걸리게 만들어 놨어요. 내 월급이 그때부터 삭감되어 퇴직 때까지 50%의 월급만 받고 일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럼 누가 견디면서 일하겠습니까. 결국은 회사를 떠나게 되는 거죠."

- 말만 임금피크제이고 엄밀히 말하면 해고네요?
"맞습니다. 정확히 보셨어요. 진급의 결정권은 인사권자가 가지고 있고, 진급이 안 되면 결국 직급 정년 임금피크제에 적용되어 임금은 점점 삭감되기 때문에 그 직원은 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 사업장에서 사용된 임금피크제는 '위장해고'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줄어든 임금을 아르바이트로 채우는 상황이네요.
"임금피크제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임에도 임금피크제에 적용되는 노동자들은 더욱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개된 사례자를 보면 주말에는 식당 및 백화점 발레 파킹, 평일 저녁에는 대리운전이나 배달업을 하며 줄어든 임금을 채우고 있었죠. 사실 임금피크제로 합리적인 임금을 조정하고 그만큼 업무를 줄여주면 퇴직 이후에 나가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던지 아니면 연금을 받을 시기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저축도 하면서 정년 이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는 거예요. 임금피크제 기간 동안 더 힘들어지고 퇴직하고도 빚의 무게 때문에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 거죠."

- 임금피크제가 퇴직 후에도 영향을 주나 보네요.
"보통 정년퇴직 전 3개월 동안의 임금 평균을 산정해서 퇴직금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금피크제에 의해서 삭감된 임금은 마지막 퇴직 전에 최하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퇴직금 자체도 낮아질 수밖에 없고, 퇴직하고 나서 바로 일을 못 구한 많은 분이 실업급여도 신청하잖아요. 실업급여 또한 그 사람이 마지막에 받았던 월급을 기준으로 결정이 됩니다. 월급에서 회사와 내가 함께 부담했던 국민연금 또한 납입금액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에 적게 받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임금피크제 기간 한 3년 4년의 문제가 아니라 이 3~4년 동안 삭감된 금액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여러 가지 영향이 있는 거죠.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임금피크제는 고령의 노동자들을 좀 더 안정되게 보장해주기 위해서 만든 제도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피해는 퇴직 이후까지 노동자들이 보고 있고, 기업은 임금을 삭감해서 이익을 내는 상황이었던 거죠."

-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 후 신규 채용이 안 늘었던데. 그럼 월급만 깎은 건가요?
"방송에서 소개된 연구 자료가 상당히 의미 있는 자료였습니다. 지난해 1886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고용효과 분석> 연구를 실시했고, 분석 결과 신규 채용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사업의 확장 등 회사의 필요에 의해서 신규 채용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임금피크제에 의해 삭감된 재원으로 늘어났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사실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 신규노동자를 뽑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 그럼 임금피크제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상한 제도로 변질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노사가 잘 협의해서 좋은 제도로 자리 잡은 회사도 있었거든요. 나이가 많아졌으니까 근무 시간도 좀 줄여줘서 퇴직하기 직전에 '선배님 퇴직 준비도 하시고, 업무 강도를 좀 줄여 드릴 테니 임금 삭감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라며 노사가 협의하면 서로에게 좋은 거죠. 저희는 이 제도를 악용해서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합법적인 제도로 활용하고 있는 아주 악질의 기업들이 문제라고 보았어요. 또 당하고 있는 노동자도 임금피크제는 합법적인 제도이니까 내가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으세요?
"고령 노동자가 정년 때까지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게 해주고 그 제도를 통해서 신규 채용도 늘릴 수 있어 청년 실업에 도움이 된다라는 좋은 취지로 (임금피크제가) 시작됐어요. 하지만 관리 감독과 견제가 없다 보니 기업의 이익만 내는 임금 삭감 수단으로 이용된 거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당하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대법원 결정에서 보듯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차별을 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임금피크제 합리성을 강조하며 정부는 세대 갈등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어요. 청년 실업이 심각한 이유가 늙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대는 순간 세대 갈등은 더 증폭되고 임금피크제는 이상한 제도로 변할 수 있죠. 이번 대법원판결로 이슈가 되었지만, 방송을 계기로 노사정이 몇 년 전부터 얼마만큼의 삭감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진지하게 다시 한번 고민해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정부도 거기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 더 이상 노동자가 피해 보지 않는 제도로 자리 잡기를 원합니다."

- 취재했지만 방송에 못 나간 내용이 있을까요?
"일본을 취재하긴 했어요. 사실 임금피크제라는 제도가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들어왔었거든요. 결국 임금피크제는 임금체계가 호봉제, 연공제를 실시하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제도이긴 합니다만 일본과 우리나라 노동자가 느끼는 만족도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연금 지급 시기인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를 의무화했으며, 기업은 60세까지는 기존의 임금이 거의 유지되며, 이후 5년간은 계약직 형태로 65세까지 임금의 60%까지 받으며 계속 일 할 수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제도 시작 전 준비기간도 길었고 노사정이 많은 대화를 통해 노동자가 대부분 만족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러 구성을 고려해서 이번에는 아쉽게도 일본 사례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방송 후 성과가 있다면서요?
"방송 후 다음 날 고용노동부로부터 연락받았어요. 고용노동부도 방송을 잘 보았고 생각보다 심각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하며,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까지 같은 임금 삭감률을 적용하고 있는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지방 공공의료원부터 전수 조사를 시작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송 후 이런 작은 변화가 담당 PD로서는 보람된 일이에요. 고용노동부의 개선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다른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계속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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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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