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게리 올드만은 부패형사 노먼 스틴스필드를 연기했던 <레옹>을 비롯해 <제5원소>, <에어 포스 원> 등에서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90년대 최고의 악역전문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국내에서는 <베테랑>에서 조태오를 연기했던 유아인이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반면에 같은 악역이라도 명분이 확실한 악역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어벤져스-인피니트 사가>의 '최종보스'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다. 타노스는 5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인류의 절반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타노스의 계획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닌 자원고갈로 인한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균형유지'가 목표다. 

실제로 최근 <베놈>과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빌런'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개봉한 이 작품 역시 세계적인 도둑이자 악당인 주인공이 입양된 세 자매를 만나 착해지는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지금은 어느덧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위협하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성장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 <슈퍼배드>다.
 
 <슈퍼배드>는 세 편의 시리즈를 합쳐 25억 달러가 넘는 눈부신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슈퍼배드>는 세 편의 시리즈를 합쳐 25억 달러가 넘는 눈부신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유니버설 픽쳐스

 
적은 제작비로 최대 수익 거두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크리스토퍼 멜라단드리는 1993년 디즈니가 제작한 <쿨러닝>의 기획에 참여했다가 2002년 20세기 폭스 산하의 스튜디오에서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를 기획했다. 20세기 폭스와의 계약이 끝난 멜라단드리는 2007년 캘리포니아주 산타 모니카에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대형배급사 유니버설 픽쳐스와 독점 배급 계약을 맺었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0년 약 3년의 제작기간 끝에 첫 작품 <슈퍼배드>를 선보였다. 6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슈퍼배드>는 세계적으로 5억43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흥행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11년 <바니 버디>와 2012년 <로렉스>를 통해 제작노하우를 쌓아가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7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슈퍼배드2>로 9억7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최근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들은 점점 스케일이 커지면서 평균 제작비가 1억 달러를 훌쩍 넘긴 지 오래다. 하지만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대표 프랜차이즈인 <슈퍼배드> 시리즈 3편을 만들면서 한 번도 편당 순수 제작비가 8000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익을 최대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가 가진 최고의 경쟁무기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슈퍼배드>의 인기캐릭터인 미니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니언즈>를 선보였다. <슈퍼배드>에 출연하는 개그캐릭터였던 <미니언즈>는 세계적으로 11억 5900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미니언즈>의 흥행에 힘을 얻은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마이펫의 이중생활>과 <씽>을 차례로 선보였다.

2017년 <슈퍼배드3>까지 10억 달러 흥행을 달성하며 황금기를 맞은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8년 <그린치>, 2019년 <마이펫의 이중생활2>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국내외 극장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미니언즈2>를 시작으로 <슈퍼 마리오>, <슈퍼배드4>, <슈렉 리부트> 등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대규모 조직원 부럽지 않은 재주 많은 미니언들
 
 입양한 세자매를 도둑질에 이용하려 했던 그루는 오히려 세자매를 만나 점점 마음씨가 착해진다.

입양한 세자매를 도둑질에 이용하려 했던 그루는 오히려 세자매를 만나 점점 마음씨가 착해진다. ⓒ 유니버설 픽쳐스

 
북미에서 2010년 7월에 개봉한 <슈퍼배드>는 사실 개봉시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슈퍼배드>가 개봉하기 4주 전, 픽사의 간판 시리즈이자 시리즈 중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토이스토리3>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신생회사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관객들의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슈퍼배드>는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전국 100만 관객을 갓 넘기는 데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슈퍼배드>는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각 나라와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훔친 최고의 악당이자 도둑 그루가 평생의 숙원이었던 달을 훔치기 위해 세 자매를 입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악당 대출은행장의 아들이자 그루를 능가하는 악당을 꿈꾸는 빅터 '벡터' 퍼킨스와 벌이는 달 훔치기 경쟁이 굉장히 흥미롭고 유쾌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라이벌 조직과 '전쟁'을 벌인다 해도 사용하는 무기가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인원이 많은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악당을 자처하는 그루가 공식적으로 데리고 있는 '인간' 조직원은 벡터에게 쿠키를 팔기 위해 입양한 마고와 에디트, 아그네스 세 자매 뿐이다.

하지만 그루는 단 한 번도 조직원이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루의 곁에는 무려 900여 마리에 달하는 미니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놀이나 장보기 같은 일부터 달까지 갈 수 있는 로켓 제작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유닛들이다. 후반부 우주선에서 추락하던 그루와 마고를 구한 것도 서로 몸을 길게 엮은 미니언들이었다. 그루 역시 똑같이 생긴 듯한 미니언들을 정확히 구분하고 다정하게 이름까지 불러 준다.

<인크레더블>을 만들었다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을 연출했던 브래드 버드 감독이나 <사이비>를 만들었다가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처럼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실사영화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슈퍼배드>를 공동 연출한 피에르 꼬팽 감독과 크리스 리노드 감독은 <슈퍼배드> 후에도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애니메이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추석 연휴 개봉한 영화, 소녀시대도 합류
 
 최고의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더빙에 참여한 <슈퍼배드>는 소녀시대가 빠진 3편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최고의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더빙에 참여한 <슈퍼배드>는 소녀시대가 빠진 3편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유니버설 픽쳐스

 
<슈퍼배드>는 국내에서 추석연휴를 앞둔 2010년 9월 16일에 개봉했다. 개봉시기는 좋았지만 <무적자>,<시라노;연애조작단>,<퀴즈왕>,<그랑프리> 등 같은 날 '추석 특수'를 노린 한국영화들이 대거 개봉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슈퍼배드>의 홍보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당시 최고의 걸그룹으로 명성을 떨치던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과 막내 서현을 더빙 성우로 캐스팅한 것이다.

태연은 세 자매 중 맏이 마고 역을 맡았고 서현은 장난꾸러기 둘째 에디트를 연기했다. 당시 태연과 서현은 애니메이션 더빙은커녕 시트콤 카메오로 출연이 연기경력의 전부였기 때문에 더빙연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태연과 서현은 기대 이상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2편까지 마고와 에디트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2편까지 100만 관객을 넘나들던 <슈퍼배드>가 소녀시대가 하차한 3편에서 33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마고와 에디트의 목소리를 담당했지만 정작 그루와 관객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캐릭터는 막내 아그네스였다. 귀여움과 순수함으로 그루는 물론 관객들까지 미소 짓게 했던 아그네스의 목소리 연기는 <닥터 슬럼프>의 아리와 <도라에몽>의 도라에몽으로 유명한 김서영 성우가 맡았다. 김서영 성우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막내 아그네스의 귀여움을 표현하며 초보 성우 태연과 서현을 기 죽였다.

원작에서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와 <에반 올마이티>로 유명한 스티븐 카렐이 맡았던 그루의 목소리는 더빙버전에서 25년 경력의 베테랑 성우 이장원이 연기했다. 이장원 성우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외화, 오디오 드라마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고 배우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 D.P > 1화에서 고객의 클레임만 듣고 안준호(정해인 분)를 부당하게 해고하는 피자집의 악덕사장으로 출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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