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용의 출현 포스터

▲ 한산: 용의 출현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저 다루는 것만으로 가슴을 울리는 역사가 있다. 임진년과 정유년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전쟁도 그렇다. 소설가 김훈의 역작 <칼의 노래>와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 <명량>은 소설과 드라마, 영화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으로 남았다. 중국에 <삼국지연의>가 있다면 한국에는 단연 이순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의 전쟁은 극적이다. 개전 20일 만에 도성인 한양이 함락되고 왕인 선조가 파천을 떠나는 등 뿌리까지 흔들린 조선을 끝끝내 지켜낸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해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40차례가 넘는 해전에 참전해 단 한 번의 패배도 허하지 않고 단 한 척의 전선도 잃지 않은 활약은 조선을 넘어 전 세계 전사에서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일생에 걸쳐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하고 전시에 모함을 당해 모진 고문까지 받아야 했던 장군의 비운은 그의 충의며 활약과 어우러져 영웅적 주인공의 필수조건으로 불리는 비극성까지 드러낸다. 이순신의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예술의 원천으로 인기를 얻는 이유다.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한민의 이순신 조명 프로젝트

한국 영화계의 사극전문가로 손꼽히는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2014년 작 <명량>으로 충무공의 가장 극적인 전쟁을 조명한 그는 8년 만에 <한산: 용의 출현>으로 그의 과업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란 것을 드러냈다. 전작 <최종병기 활>에 주연으로 나선 박해일을 다시 한 번 기용해 그의 여백 있는 얼굴 안에 장군의 결연함을 담고자 했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운을 결정하는 전투로 기억된다. 개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한양은 물론 평양까지 적의 손에 떨어진 상황에서 전황은 왜군에게 급격히 기울었다. 수륙병진의 계획 아래 평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은 서해안을 통한 보급을 전제로 진군을 준비했다. 의주로 몽진한 선조는 명의 허락만 떨어지면 강을 건널 태세까지 갖췄다. 조선의 국운이 일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한산대첩은 한 번의 싸움으로 서남해안의 제해권을 확보한 전투다. 왜군 전선 47척이 침몰됐고 12척이 나포됐으며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가 도주와 표류 끝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 만큼 대패했다. 조선함대는 단 한 척도 손상되지 않았고 전사자도 단 세 명에 불과했다.

특히 진을 갖춰 돌진해온 왜군 함대를 육상전에서만 활용돼 온 학익진으로 원거리 포위 섬멸한 전투는 전쟁사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한산대첩 이후 왜 수군은 견내량을 넘지 못했고 왜 육군도 보급을 받지 못하며 발이 묶인다.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극적이게 한 역사의 변주

김한민 감독은 한산대첩과 함께 이치 전투를 중요하게 그린다. 한산해전과 이치전투는 전라도를 온전히 보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는 결정적 전투로 임진왜란의 두 영웅인 이순신과 권율이 각각 활약한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흥미로운 건 두 전투가 같은 날 벌어졌다는 점인데, 영화엔 한산대첩의 왜군 대장 야스하루가 이치 전투의 왜군 대장 코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수차례 전령을 보내 협공을 요청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다카카게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장 중 단연 돋보이는 장수로, 히데요시의 가신이거나 소다이묘 수준인 여러 무장과 달리 일본 전국시대에 크게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전국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서쪽은 타카카게에게, 그리고 동쪽은 이에야스에게 맡겨두면 걱정할 것이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감독이 역사를 변주해 야스하루와 다카카게가 이순신 장군의 본진인 전라좌수영을 수륙협공하는 설정을 두었는데, 이는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한산대첩에서 조연에 그치는 거북선이 전면적으로 활약하는 모습도 그리는데, 이 역시 한산대첩을 더욱 극화하기 위한 변주다. 압도적인 포격으로 얻은 대승보다는 적선을 유인한 판옥선의 위기와 거북선의 구출, 고립된 거북선의 분전 등이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이치전투로 보이는 전투를 웅치전투로 언급한다거나, 가메이 고레노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은 황금부채를 야스하루가 받은 것으로 묘사하는 장면, 변장 어영담(안성기 분)이 옥포만호 이운룡(박훈 분)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설정, 거북선의 목을 빠졌다 들어갔다 하도록 한 개조, 같은 칠본창 일원으로 꼽히는 가토 요시아키(김성균 분)가 야스하루에게 수군을 빼앗기는 장면 등 역사를 달리 묘사하는 시도도 거침없이 이어간다.

일부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겠으나 사료가 명백한 만큼 이쯤은 영화적 허용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압도전 해전 연출

영화는 <명량>에서 그랬듯 양군의 첩보전과 항복한 왜군 장수의 활약도 빼놓지 않는다. 적의 정보를 철저히 파악하는 걸 중시한 장군의 신중한 면모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영화를 약간이나마 다채롭게 만드는 대목이다.

<명량>에서 보였던 압도적 해전 연출도 여전하다. 같은 해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 < 300: 제국의 부활 >이 세계 해전사에서 손꼽히는 살라미스 해전을 다뤘음에도 김한민 감독은 한국영화의 기술적 역량이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걸 충실히 증명해냈다. <한산>은 전작에 비해 포격과 충파 등을 더욱 정밀하게 그려 8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단 걸 보여줬다.

<명량>과 <한산>으로 이어지는 김한민의 필모그래피는 역사가 문화산업의 무궁무진한 재료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45전 무패에 빛나는 이순신의 전투는 물론, 권율을 비롯한 육군 장수들의 활약, 나아가 한반도의 모든 역사가 영화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7년 작 일본영화 <세키가하라>의 주인공 이시다 미츠나리와 <한산>에선 이름만 등장하는 다카카게가 참패하는 행주대첩도 영화화된다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는 작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나로서는 김한민 감독보다 그 과업에 더 적합한 이를 떠올리지 못하겠다.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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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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