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은교>로 크고 작은 9개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김고은이 더 크게 인정 받았던 이유는 <은교>가 김고은에게 장편 영화 데뷔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고은은 많은 대중예술인들을 배출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은교>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김고은의 필모그라피는 런닝 타임 15분짜리 단편 영화 <현대 심리학의 이해>가 유일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도 마찬가지.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뉴욕의 비영리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게 연기경력의 전부였던 노튼은 1996년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애런 역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영화 데뷔작 <프라이멀 피어>에서 놀라운 반전 연기를 선보인 노튼은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다이 하드>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타 스텔론과 함께 '20세기 액션스타 3대장'으로 꼽히는 브루스 윌리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다. 1988년부터 2013년까지 25년 동안 5편이 제작된 <다이 하드>에서는 1편에서 영화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가 있었다. 바로 <다이 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맞서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는 악역 한스 그루버를 연기했던 배우 고 앨런 릭먼이 그 주인공이다.
 
 <다이 하드>는 5편의 시리즈 합쳐 총 14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다이 하드>는 5편의 시리즈 합쳐 총 14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악역전문? 모든 장르가 가능했던 배우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난 릭먼은 1970년대 후반 연극배우로 데뷔해 10년 가까이 연극과 TV 무대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1988년 릭먼은 <다이 하드>에서 한스 그루버 역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다이 하드>는 <블루문 특급>으로 주가가 상승하던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에게 500만 달러의 많은 출연료를 주면서 나머지 캐스팅에 많은 제작비를 쓸 수 없었다. 릭먼은 이 덕분에 제법 큰 배역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있었다.

릭먼은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에게도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열연을 펼쳤고 2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다이하드>는 세계적으로 1억 4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다이 하드>를 통해 인지도가 급상승한 릭먼은 1991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로빈 훗>에서 또 한 번 냉혹하고 카리스마 있는 '최종보스' 노팅엄 영주 역을 맡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92년 팀 로빈스 감독의 <밥 로버츠>, 1995년 이안 감독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출연하며 의미 있는 필모그라피를 쌓던 릭먼은 1997년 감독과 각본, 주연을 맡은 <윈터 게스트>를 통해 연출데뷔를 했다. <다이 하드>와 <로빈훗>의 강렬한 악역연기 때문에 릭먼을 악역 전문배우로 기억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지만 실제 릭먼은 드라마와 스릴러, 코미디 그리고 애니메이션 성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다.

릭먼은 2000년대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교수이자 슬리데린 기숙사의 사감, 불사조 기사단의 2기 단원을 역임한 스네이프 교수를 연기하며 해리 포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역대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이미지를 완전히 변신해 젊은 부하직원에게 흔들리는 중년의 가장을 연기했다(엠마 톰슨과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부부로 출연했다).

연극배우 출신의 뛰어난 발성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릭먼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겨울 나라의 앨리스> 등에서는 목소리 연기로만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릭먼은 췌장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지난 2016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리포터의 원작자 J.K.롤링을 비롯해 다니엘 래드클리프, 휴 잭맨 등 생전 릭먼과 인연을 맺었던 여러 인물들이 릭먼의 죽음을 애도했다.

경찰의 의무감과 정의감이 그가 가진 초능력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던 고 앨런 릭먼은 영화 데뷔작 <다이 하드>에서 인상적인 악역연기를 선보였다.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던 고 앨런 릭먼은 영화 데뷔작 <다이 하드>에서 인상적인 악역연기를 선보였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다이 하드>의 제작사에서는 28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이 투입된 대작영화의 흥행에 큰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느꼈고 이는 당대 최고 스타배우들을 향한 캐스팅 제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텔론, 해리슨 포드, 리처드 기어 등 스타 배우들이 타 작품 촬영 등을 이유로 전부 고사했고 결국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브루스 윌리스에게 영화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브루스 윌리스 캐스팅은 <다이 하드> 제작진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브루스 윌리스는 <어벤저스> 멤버들처럼 초인적인 능력은 없지만 경찰로서의 의무감과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존 맥클레인 형사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액션쾌감을 선사했다.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의 이미지 덕분에 1990년대 내내 여러 액션영화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단골로 연기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텔론 같은 액션스타들은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바탕으로 무거운 중화기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다수의 적들을 섬멸했다. 하지만 존 맥클레인은 다수의 적을 혼자서 쓰러트릴 수 있는 일당백의 실력을 가진 '슈퍼캅'과는 거리가 있다. 맥클레인은 영화 속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자주 다치고 상처 입지만 온갖 시련들을 극복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면서 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다이 하드>는 상업영화임에도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잘 만든 액션영화로 훗날 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오우삼 감독은 <첩혈쌍웅>에서 적의 다리를 향해 쌍권총을 쏘는 장면이나 등 뒤에서 적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통해 <다이 하드>를 오마주했다. 이 밖에 <언더씨즈>와 <패신저57> <에어 포스 원> 등 주인공이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다이 하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1편이 만들어진 <다이 하드>는 2013년까지 25년에 걸쳐 5편의 시리즈가 제작됐다. <다이 하드>의 상징배우인 브루스 윌리스가 전 시리즈를 개근한 가운데 존 맥티어난 감독은 1편과 3편, 4편을 연출했고 <클리프 행어>와 <딥 블루 씨>를 연출한 레니 할린 감독이 2편을, 존 무어 감독이 5편을 만들었다. <다이 하드> 시리즈는 1편부터 5편까지 총 14억 3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

일면식도 없는 뉴욕경찰의 편이 돼준 LA경찰
 
 LA경찰 파웰 형사(오른쪽)는 외로운 존 맥클레인 형사의 유일한 편이 됐다.

LA경찰 파웰 형사(오른쪽)는 외로운 존 맥클레인 형사의 유일한 편이 됐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철저히 고립된 고층건물에서 자신을 죽이려 혈안이 된 다수의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맥클레인 형사는 부상만큼이나 힘든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만약 이때 무전으로 맥클레인의 말상대가 돼주며 끊임없이 맥클레인을 격려했던 파웰 형사가 없었다면 맥클레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자포자기했을지 모른다. 파웰 형사는 과거 어린 아이를 총으로 쏜 트라우마 때문에 위험한 일에 끼지 않으려 하지만 맥클레인이 위험에 빠졌을 땐 주저 없이 총을 꺼냈다.

맥클레인을 무시하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유일하게 맥클레인을 믿어주는 파웰 형사 역은 1980~1990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흑인배우 레지날드 벨존슨이 연기했다. 톰 행크스 주연의 <터너와 후치>에서도 형사를 연기했던 벨존슨은 1990년에 개봉한 <다이 하드2>에서도 맥클레인의 조력자로 등장했고 2000년 <CSI 라스베가스 시즌1>과 2011년 <하드 오브 딕시> 등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흔히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좋은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이 하드>에서는 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의 영화인이 촬영감독으로 활약했다. 바로 1990년대 중반 일약 할리우드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얀 드봉 감독이다. <다이 하드>와 <붉은 10월><원초적 본능> 등의 촬영감독을 맡았던 얀 드봉 감독은 1994년 <스피드>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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