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대구에서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되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개구리 소년들'로 명명되었고 온 국민이 무사 귀가를 바랐지만 2002년 유골로 발견되었다. 그 후로 20년이 흘렸지만 어떻게 사망했는지 가설만 무성할 뿐 밝혀지지 않았다. 와룡산에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9일 MBC < PD수첩 >에서는 '와룡산에 묻힌 진실'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개구리 소년들' 사망 사건 관련해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바탕으로 한 실험과 함께 자연사 등 다각도로 사망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이 다뤄졌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방송 다음 날인 20일 '와룡산에 묻힌 진실' 편을 취재한 이중각 PD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두개골 X자 손상, 인위적 도구 가능성 높아"
 
 이중각 PD

이중각 PD ⓒ 이영광

 
-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와룡산에 묻힌 진실' 편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났는데 소회가 어때요?
"많은 분이 저희 방송을 보셨고, 다시 개구리 소년 사건에 관심을 갖고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모든 가능성을 찬찬히 살펴보자는 저희 취지에 대해 시청자들께서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30년 전인 1990년대 초 있었던 대구에서 일어난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에 대한 것이잖아요. 왜 이걸 하게 됐나요?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가 올해로 20년 됐어요. 20년이 지났는데도 누군가 살해를 했는지, 혹은 조난으로 인한 자연사인지 명확하지 않아요. 그래서 찬찬히 살펴보자는 거죠. 유족들의 입장은 어떻겠어요. 자식들이 사라진 지 11년 만에 유골로 돌아왔는데 20년이 지나도 왜 자식들이 사망했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어요."

- 이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아셨어요?
"1991년 실종 직후에는 전국민적인 관심 사안이었기에 언론을 통해 실종 사건을 접했고요, 2002년에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구체적인 사안, 소년들 두개골의 상처가 X자 모양이라는 점 등 구체적인 사안을 몰랐죠."

- 취재하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2002년 경북대 법의학교실에서 소년들이 타살됐다는 추정을 발표했잖아요. 2011년 타 방송사에서 이 사건을 되돌아본 방송을 했는데, 저도 그 방송을 시청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소년들이 살해됐다고 생각했죠. 이번 취재하면서 소년들이 산에서 조난 당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분들을 만나보고 이 사안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 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것이잖아요. 글 내용은 뭐죠?
"인터넷 게시판에 한 네티즌이 개구리 소년들의 두개골에 있는 X자 손상은 버니어캘리퍼스로 내려친 흔적이라고 주장한 거죠. 1990년대 초 글쓴이의 경험으로 돌이켜 봤을 때 동네 뒷산에 불량 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짓을 했는데, 개구리 소년 사건도 그런 이들이 저지르지 않았을까라고 추리한 글이죠. 이 글을 읽고 그럴 만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외에도 수많은 언론사가 이 사안을 다뤘잖아요."

- 범인이 글을 올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식으로 의심하는 반응도 있긴 한데, 저희가 알 수는 없고요. 저희 외에도 많은 언론사가 글쓴이와 접촉을 시도했는데 응하지 않았어요."

- 개구리 잡으러 간 게 아니라고 알거든요. 왜 이들은 개구리 소년이 된 거죠?
"도롱뇽이 와룡산 일대에서 서식했나 봐요. 그런데 도롱뇽이라는 동물이 흔하지 않은 거잖아요. 그래서 시민들이 도롱뇽을 모르니까 당시 기자들이 이걸 개구리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 2002년 유골이 발견되었을 당시 경찰들이 손상흔과 일치하는 도구를 찾으려 했지만 못 찾은 거잖아요, 거기 버니어캘리퍼스는 없었나요?
"저희가 2003년에 방송한 < PD수첩 >을 보면 당시 경찰이 보관 중이던 흉기 중에 버니어캘리퍼스는 안 보였어요. 그런데 제가 2002년 유골 발견 후 경찰이 입수한 도구 전체 목록을 입수한 건 아니어서 경찰이 버니어캘리퍼스로 실제 실험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 근처 공고에서 버니어캘리퍼스 사용을 안 했는데 근처 공장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거죠?
"버니어캘리퍼스가 사용됐을 수 있다는 가설이 저희 실험 결과 꽤 설득력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네티즌이 쓴 글에서는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그걸 사용한다고 지목했는데요, 와룡산 가까이 있는 그 공업고등학교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겁니다. 본인들 학교에는 기계과가 없으니 버니어캘리퍼스를 쓸 일이 없는데 와룡산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로 봤으니까요. 와룡산에서 범위를 넓히면 공업고등학교들이 꽤 있고 산업단지들도 있어요. 많은 공장이 입주한 대규모 단지고요. 정밀 측정 도구이기 때문에 학교나 공장에서 곧잘 쓰이고요."

- 방송 보니까  우철원군 친구가 나오잖아요. 경험 얘기했는데 그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31년 전 사건이고 철원군 친구도 본인을 협박한 사람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저희가 사실을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고, 우리 경험상 비행 청소년들이 야산에서 일탈행동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죠."

-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 주장하는 의견도 있잖아요. PD님은 유골 나온 현장 가 보셨는데 어땠어요?
"지금 와룡산 일대는 아파트와 상가들이 밀집한 곳이에요. 산에는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주민들 왕래도 잦고요. 하지만 30년 전에는 대구 외곽의 농촌지역이었거든요. 또한 와룡산 주변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주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도 많았고요. 특히 소년들이 발견된 곳은 근처 주민들도 다니지 않았던 곳이라는 주민들 증언이 있습니다. 해발고도가 300m이기 때문에 산 자체가 높지는 않아도 등산로가 아닌 곳은 경사가 심하고 미끄러워요. 31년 전에는 더 힘들었겠죠".

"2시, 4시 목격 지점 사이에서 유골 발견"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 제가 알기로 아이들이 길을 잘 알아서 길 잃을 가능성은 낮다던데.
"소년들이 자주 가던 와룡산 일대와 유골이 발견된 지역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와룡산이 높지는 않아도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인데요. 유골 발견 지점은 소년들이 살던 동네 주민들이 자주 가지 않던 곳이라고 합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그쪽으로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많아요. 기록상으로 유골 발견 지점과 거주지가 약 3.5km 떨어져 있는 걸로 나와요. 험한 산길이고 소년들 발걸음으로 따지면 한 시간은 더 걸렸을 겁니다."

- 그럼 소년들이 왜 갔을까요?
"소년들이 발견된 곳에서 200m 정도 아래 군부대 사격장이 있었어요. 당시 그 지역 초등학생들이 탄두 주우러 가끔씩 사격장 주변에 갔다고 합니다. 또한 소년들 발견지점 근처에서 탄두 138발이 든 우유 팩이 발견됐어요. 그 우유 팩은 소년들이 실종되던 시기 유통되었던 제품이기 때문에 소년들 것으로 추정합니다. 결국 사격장 근처에 탄두 주우러 갔을 가능성이 높아요."

- 자연사했을 경우 두개골 상흔이 설명 안 되잖아요.
"자연사를 주장하는 분들은 유골 발견지점에서 쉽게 발견되는 Shale(퇴적암의 일종)이 두개골을 손상시켰다고 말씀합니다. 셰일이 풍화나 침식작용에 의해 쉽게 깨지는데 깨진 모서리가 날카롭거든요. 셰일이 비바람에 굴러와서 두개골에 손상을 가했다는 겁니다. 다만 법의학자들은 그 부분에 동의하진 않아요. 인위적인 도구가 아니면 X자 손상을 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 유골이 발견된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고 했잖아요, 혹시 거기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일단 소년들이 실종된 날은 임시 휴일이었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았다는 게 부대 입장이고, 만약 사격을 실시했다면 소음이 엄청 크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사격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은 없습니다. 결국 소년들이 군부대 사격장에서 빗겨 난 총탄에 희생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소년들이 실종된 후 사격장 근처에 탄두를 주우러 갔을 가능성이 배제됐고, 그 때문에 사격장 주변을 수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특히 개구리 소년들이 살던 지역과 꽤 떨어진 곳에서 소년들을 목격했다는 복수의 증언이 있었거든요. 실종 당일 오후 4시경 개구리 소년들과 초면이지만 그들에게서 도롱뇽 알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고 그때 빨간 모자를 쓴 군인이 나타나 쫓아냈다는 겁니다. 그 후 소년들은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는 증언인데요, 오후 2시경 소년들을 목격했다는 지점과 오후 4시경 목격했다는 지점 사이에서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거죠. 두 지점 사이를 수색했다면 소년들을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거죠."

- 좀 더 빨리 유골 발견했다면 진실 규명 가능성이 있었을까요?
"그렇죠. 왜냐면 근육과 피부 조직들이 남은 상태라면 소년들의 사인을 밝히는 데 더 많은 단서가 있었겠죠. 하지만 11년이 지나 백골 상태였기 때문에 두개골의 손상을 제외하면 법의학자나 경찰이 구할 수 있는 단서는 없는 셈이죠."

- 제보자 김윤성(가명)씨 증언이 얼마나 신빙성 있을까요?
"이분이 사격장 고무통 안에서 목격한 것이 개구리 소년들과 연관성이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요.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보자 외에도 고무통을 목격한 훈련병들을 찾아야 하는데 그 명단을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증언은 워낙 구체적이고, 고무통의 행방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부대 안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거죠. 군부대에서 사격이 없었다고 해서 경찰은 군부대 인근을 수색하지 않았다는데, 당시 군부대에서도 수색에 나섰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격장 인근에서 유골을 발견하지 못했냐는 거죠. 제보자는 대구 경찰에 이 목격한 사항을 제보했고 조사를 받은 상태입니다."

- 증언만 있고 물증이 없는데 조사가 가능한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분이 훈련 받았던 시기 신병 교육 받은 분들과 사격장을 관리했던 군인들 상대로 확인해야죠."

- 지금 30년 지난 거잖아요. 사인을 밝힐 수 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단서들과 제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밝혀야죠. 1888년에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잭더리퍼 사건에 대해서 지금도 영국에서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더라고요. 런던 경찰뿐 아니라 연구자들도 범인이 누군지 밝히기 위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실종 직후에 경찰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목격 진술과 새롭게 나온 증언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수사기법을 동원해서 우리 경찰도 재조사해야죠."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나요?
"안타까움이 제일 크죠. 실종 후 온국민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소년들이 11년 만에 유골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점, 그리고 20년이 흘렀어도 사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유족들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30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만난 전문가들께서 말씀해주신 게, 행정 효율면에서 장기미제사건을 추적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이런 사건을 해결한다면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경찰이 개구리 소년 사건 같은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제가 < PD수첩 >을 연출할 때는 우리가 흔히 팩트라고 말하는 사실관계, 문서나 당사자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취재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소년들의 행방을 명확히 알 거나 사건을 목격한 이도 없어요.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없고 추론할 수 있는 정도뿐이죠. 그래서 몇 가지 가설들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니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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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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