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글로벌 흥행성적 1억 달러를 돌파한 작품은 모두 8편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이 8편의 공통점은 바로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점이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다시 말해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흥행이 없었다면 글로벌 흥행 1억 달러라는 성과는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아직 북미시장에서 한국 상업영화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영화 중에도 북미시장에서 5300만 달러, 한국(7100만 달러)을 제외한 해외시장에서 무려 1억 92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던 작품이 있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높은 흥행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으로 봉준호 감독과 영화의 위상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등장하기 12년 전이었던 지난 2007년, 한국영화가 아직은 해외시장에 도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에 글로벌 흥행을 목표로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2007년 한국 영화 최고흥행기록(840만)을 세우며 당당히 해외로 진출했지만 북미시장에서는 1000만 달러를 갓 넘기며 만족스런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심형래 감독의 미국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디-워>였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 <디-워>는 전국 840만이라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 <디-워>는 전국 840만이라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쇼박스

 
할리우드에 도전했던 최고의 코미디언

심형래 감독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그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희극인이었다. 코미디에서 수많은 히트코너와 유행어를 남긴 심형래 감독은 1984년 남기남 감독의 <각설이> 시리즈를 통해 영화에 진출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후반 <우뢰매> 시리즈와 1980년대 후반부터 <영구>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어린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코믹 배우로 자리 잡았다.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를 통해 연출을 시작한 심형래 감독은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작 <쥬라기 공원>과 같은 시기에 <영구와 공룡 쮸쮸>를 선보였다가 쓴맛을 봤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SF영화에 심취한 심형래 감독은 1994년 <티라노의 발톱>과 1995년 <파워 킹>, 1996년 <드래곤 투카>를 차례로 만들며 영화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은 심형래 감독은 1999년 한국형 괴수영화 <용가리>를 선보였고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 하는 겁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21세기 '신지식인 1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SF영화를 통한 할리우드 도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린 심형래 감독은 2007년 드디어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영구아트무비'의 기술이 집약된 괴수영화 <디-워>를 선보였다.

2007년 8월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 <디-워>는 84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7년 한국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심형래 감독이 타깃으로 삼았던 북미시장에서는 9월 15일(한국시각)에 개봉해 현지관객들에게 'B급 괴수영화' 취급을 받으며 1000만 달러를 갓 넘기는 수준의 흥행성적에 머물렀다. 게다가 미국 평론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28%, 관객점수 19%로 엄청난 혹평을 받기도 했다.

<디-워>를 통한 세계시장 정복이 실패로 돌아간 심형래 감독은 본업인 '슬랩스틱 코미디'로 돌아가 2010년 영화 <라스트 갓파더>를 선보였다. 하지만 <라스트 갓파더>는 1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국내에서만 250만 관객을 모은 후 쓸쓸히 잊혔고 2011년 7월에는 <디-워>의 상징이었던 영구아트무비마저 도산했다. 하지만 심형 감독은 최근 영구아트무비 직원들과 다시 의기투합해 2025년 개봉을 목표로 <디-워2>의 제작계획을 밝혔다. 

해외에선 'B급 괴수' 취급 받은 한국의 이무기
 
 심형래 감독의 기술이 총망라된 <디-워>의 이무기들은 북미를 비롯한 세계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심형래 감독의 기술이 총망라된 <디-워>의 이무기들은 북미를 비롯한 세계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 (주)쇼박스

 
사실 2007년 당시만 해도 괴수들이 등장하는 한국의 SF 액션영화가 세계시장에 도전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 내심 '국가대표' 심형래 감독을 응원하자는 심리가 있었다. 지금 보면 상당히 뜬금 없긴 하지만 영화의 엔딩곡으로 흐른 '아리랑' 역시 그 시절에는 꽤나 웅장하고 감동적으로 들렸던 게 사실이다. <디-워>가 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세계시장, 특히 많은 특수효과가 들어간 SF액션영화에 익숙한 북미관객들에게 <디-워>는 그저 동양의 이름 모를 감독이 만든 유치한 'B급 괴수영화'에 불과했다. 실제로 <디-워>의 스토리 진행은 단순하다 못해 상당히 허술한 편이다. 특히 이야기의 중요한 설정인 '코리안 레전드'는 골동품 가게 잭(로버트 포스터 분)의 내레이션과 짧은 조선시대 회상 장면으로 빠르게 설명하고 넘어간다(참고로 <디-워>의 각본은 심형래 감독이 직접 썼다).

<디-워>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주요 배우들도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대사도 대부분 영어로 처리돼 있다. 하지만 <디-워>에는 하이라이트인 시가전 장면에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군이 부라퀴 군단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물론 심형래 감독이 그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고려했을 리는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디-워>는 북미에서 '911테러' 6주년 주간에 개봉했다.

물론 <디-워>가 액션영화로써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든(제이슨 베어 분)과 세라(아만다 브룩스 분), 부라퀴 군단의 치열한 추격전,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은 부라퀴 군단과 미군들의 시가전, 선한 이무기와 부라퀴의 대결 등은 한국영화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꽤 볼 만한 액션장면들이다. <아일랜드>와 <트랜스포머> <닌자터틀: 어둠의 히어로> 등의 음악을 담당했던 스티브 자브론스키의 음악도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징어게임>과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K-콘텐츠들은 국내 시장을 목표로 제작됐지만 높은 완성도와 재미 덕분에 해외 시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지난 2012년 빌보드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마찬가지. 하지만 처음부터 대놓고 세계시장을 노리고 만든 <디-워>는 한국영화도, 미국영화도 아닌 모호한 국적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디-워> 주연배우들의 아쉬운 활동
 
 <디-워>의 두 주연배우 아만다 브룩스(왼쪽)와 제이슨 베어는 <디-워> 이후 할리우드에 정착하지 못했다.

<디-워>의 두 주연배우 아만다 브룩스(왼쪽)와 제이슨 베어는 <디-워> 이후 할리우드에 정착하지 못했다. ⓒ (주)쇼박스

 
<디-워>가 남긴 안타까운 결과 중 하나는 <디-워>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향후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남자주인공 이든 켄드릭 역의 제이슨 베어는 2004년 공포영화 <그루지>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주목 받는 배우였다. 하지만 <디-워> 출연 이후 베어의 필모그라피는 상당히 빈약해졌고 작년 드라마 <슈퍼걸> 단역 출연을 끝으로 공식적인 활동이 멈췄다.

<디-워>의 '여의주' 세라 역을 맡은 아만다 브룩스는 2005년 조디 포스터 주연의 <플라이트 플랜>에서 조연을 맡으며 주목 받고 있었다. 하지만 브룩스 역시 <디-워> 출연 이후 활동이 급격히 줄어 들었고 'B급 공포영화'의 조단역을 전전하며 배우생활을 이어갔다. 브룩스는 2016년 김윤진 주연의 <미스트리스>에서 에피소드 두 편에 출연했지만 2018년 드라마 <캐슬 락>을 끝으로 활동이 끊어졌다.

<디-워>에서 조선시대 '여의주'의 운명으로 태어난 나린 역의 반효진과 호위무사 하람 역의 현진 역시 안타깝게도 <디-워>가 배우 커리어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나린은 부라퀴에게 쫓기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 "사랑해요"라는 외마디 유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부라퀴에게서 나린을 지켜야 한다는 숙명을 갖고 태어나 힘든 수련을 견딘 하람 역시 부라퀴와 싸워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디-워>의 주요 배우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이든의 직장동료 브루스 역을 맡아 감초연기를 보여준 크레이그 로빈슨은 그나마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디스 이즈 디 엔드>에서 제임스 프랭코, 세스 로건, 엠마 왓슨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로빈슨은 <미국에서 온 모리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 등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로빈슨은 올해도 애니메이션 <배드 가이즈>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