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가 본격적인 여름방학 및 휴가시즌에 돌입하면서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오는 8월 3일에 개봉하는 항공 재난 스릴러 <비상선언>은 송강호와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한국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송강호와 이병헌은 2008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나쁜 놈,이상한 놈>에 이어 14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다.

사실 <비상선언>은 지난 2020년 10월에 이미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당초 작년 여름시즌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예정보다 1년이나 늦은 2022년 8월에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게 됐다(하지만 공교롭게도 한 동안 잠잠했던 코로나19는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비상선언> 관계자들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흔히 촬영 후 여러 이유로 개봉시기가 미뤄지는 소위 '창고영화'들은 개봉이 늦어지는 만큼 관객들의 기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흥행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상선언>의 경우엔 완성도가 떨어질 거라는 걱정을 크게 할 필요가 없다. <비상선언>의 연출과 각본,제작을 맡은 인물은 바로 흥행파워와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들을 여러 차례로 선보이며 관객들의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한재림 감독이기 때문이다.
 
 전국 100만 관객을 살짝 넘긴 <우아한 세계>는 청룡영화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으로 흥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전국 100만 관객을 살짝 넘긴 <우아한 세계>는 청룡영화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으로 흥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흥행파워와 작품성 겸비한 충무로 대표 감독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한재림 감독은 지난 2003년 민병천 감독의 SF판타지 <내츄럴 시티>에서 각색과 연출부로 참여하며 상업영화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한재림 감독은 2년 후 박해일과 강혜정이라는 개성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데뷔작 <연애의 목적>을 선보였다. 한재림 감독은 <연애의 목적>으로 대종상 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연출가로서 재능을 인정 받았다.

한재림 감독은 2년이 지난 2007년 <괴물>의 송강호와 함께 두 번째 장편영화 <우아한 세계>를 선보였다. 흔히 영화 속에서 멋지게 미화되거나 우습게 희화화됐던 조직폭력배를 중년의 평범한 '가장'으로 설정한 <우아한 세계>는 전국 100만 관객을 살짝 넘기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한재림 감독은 <우아한 세계>로 청룡영화상과 평론가협회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송강호라는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했고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았으면서도 흥행성적은 썩 좋지 않았던 한재림 감독은 6년 동안 철치부심하며 차기작을 준비했다. 그리고 2013년 송강호와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조정석,이종석 등이 출연한 3번째 장편영화 <관상>을 선보였다. 2013년 추석 시즌에 개봉한 <관상>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등장씬(수양대군 등장씬)을 남기며 전국 910만 관객을 동원, <우아한 세계>의 아쉬움을 한 번에 털어 버렸다.

2012년 <연애의 온도>, 2015년 <특종: 량첸살인기>의 제작에 참여한 한재림 감독은 2017년1월 조인성과 정우성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 배우들을 캐스팅해 4번째 영화 <더 킹>을 연출했다. 연극에서 주로 활동하던 김소진의 '여우조연상 그랜드슬램(청룡, 대종상,백상예술대상)'을 이끌었던 <더 킹>은 전국 530만 관객을 동원했고 한재림 감독은 두 편 연속으로 흥행작을 만든 감독이 됐다.

<관상>과 <더 킹>을 통해 144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 대표감독으로 떠오른 한재림 감독은 2020년 스타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2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비상선언>이라는 또 하나의 대작을 연출했다. 비록 <비상선언>은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늦어졌지만 부지런한 한재림 감독은 이미 차기작 준비에 돌입했다. 한재림 감독은 현재 류준열과 천우희,박정민과 함께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8부작 드라마 <머니게임>을 촬영하고 있다.

그에게 조직폭력배는 그저 '직업'일 뿐
 
 강인구는 외국에서 행복한 가족들을 보며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지지만 라면과 깨진 그릇을 치우는 것도 본인 몫이었다.

강인구는 외국에서 행복한 가족들을 보며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지지만 라면과 깨진 그릇을 치우는 것도 본인 몫이었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지난 2003년 봉준호 감독은 2번째 장편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4년 후 한재림 감독은 <우아한 세계>로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의 주인공이 됐다. 장편 데뷔 후 두 번째 영화로 3대 영화제(청룡,대종상,백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감독은 한국영화 역사상 봉준호 감독(<살인의 추억>)과 이창동 감독(<초록물고기>, 장편데뷔작), 그리고 한재림 감독 밖에 없다(공교롭게도 세 편 모두 송강호가 출연했다).

사실 <우아한 세계>가 개봉할 때만 해도 한재림 감독은 이제 막 데뷔작을 선보였던 신예감독에 불과했다. 따라서 <우아한 세계>는 한재림 감독보다는 전작 <괴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1300만)을 세웠던 송강호의 신작으로 더 주목 받았다. 비수기인 4월에 개봉한 <우아한 세계>의 흥행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송강호는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4개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배우의 위엄을 재확인했다.

실제로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생활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들개파 넘버3 강인구는 여느 액션영화 속 조폭들처럼 폼을 잡지도 않고 여느 코미디 영화 속 조폭들처럼 망가지지도 않는다. 강인구는 회사의 실무를 도맡으며 회장(최일화 분)의 높은 신임을 얻고 있지만 집안에서는 아내(박지영 분)의 구박과 사춘기 딸(김소은 분)의 반항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여느 중년 아버지들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노회장과 노상무(윤제문 분)를 제거하며 조직을 배신한 강인구는 고향친구인 자길치파 2인자 현수(오달수 분)의 도움으로 자갈치파의 중역이 된다. 하지만 아내와 딸까지 유학을 보낸 강인구는 캐나다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비디오를 보면서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다가 라면그릇을 벽에 던져 버린다. 하지만 가족이 모두 외국에 나가있는 '기러기아빠' 강인구는 깨진 그릇과 엎어진 라면을 스스로 치울 수 밖에 없었다.

<우아한 세계>는 당대 최고의 신스틸러 중 한 명인 오달수가 송강호에 이어 주연에 이름을 올린 영화다. 이미 송강호와 <효자동 이발사>,<괴물> 등에서 호흡을 맞췄던 오달수는 <우아한 세계>에서도 송강호와 고향친구지만 각기 다른 폭력조직의 간부가 된 독특한 관계를 선보였다. 실제 절친 같은 뛰어난 연기호흡을 과시한 송강호와 오달수는 <우아한 세계> 이후 <놈놈놈> <박쥐> <변호인> 등 여러 작품에 함께 출연했다.

30대 후반에 뒤늦게 스크린 데뷔한 배우
 
 TV탤런트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박지영(왼쪽)에게 <우아한 세계>는 영화 데뷔작이었다.

TV탤런트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박지영(왼쪽)에게 <우아한 세계>는 영화 데뷔작이었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당신이 그리워질 때> <장녹수> 등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지영은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 출연 없이 TV 활동에 주력하던 배우였다. 그런 박지영에게 강인구의 아내 허미령을 연기했던 <우아한 세계>는 뒤늦은 영화 데뷔작이었다. 박지영은 베테랑 연기자답게 결혼 후 20년 가까이 조직폭력배의 삶을 놓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누구보다 남편을 걱정하는 강인구의 아내 역을 무난히 소화했다.

<우아한 세계>를 시작으로 2010년대에도 영화에 간간이 출연하고 있는 박지영은 2012년 <후궁: 제왕의 첩>에서 대비를 연기하며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는 1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2>에서 남편의 목숨값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강해상(손석구 분)에게 "돈 보내면 내 아들 살려 보낸다 해놓고 죽인 널 내가 어떻게 믿냐"고 일갈하는 최춘백(남문철 분)의 당찬 아내 김인숙을 연기했다.

송강호의 전작 <괴물>에서 노숙자로 출연해 괴물을 무찌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윤제문은 <우아한 세계>에서는 송강호와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 노상무를 연기했다. 즉흥적이고 다혈질이지만 조직 보스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들개파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한 노상무는 조직을 떠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강인구를 칼로 찌른다. 하지만 노상무는 오히려 강인구에게 잡혀 인질이 되고 교통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인구의 딸 희순은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에게 룸싸롱 쿠폰을 주는 조직폭력배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춘기 딸이다. 오죽하면 일기에 아빠가 칼에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쓸 정도. 희순은 영화 막판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가면서 아빠와 떨어져 살게 된다. 강인구가 조직에서 나오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희순 역은 2년 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추가을을 연기하며 유명해진 김소은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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