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100여 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5개 주요 부분(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여주연상)을 석권한 세 작품의 하나인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 한국영화사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 최상단에 올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제작된 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구라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 작품 <큐어>는 라이트한 영화 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앞선 두 작품과 이름을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포영화계의 걸작이다. <큐어>는 기요시 감독이 <양들의 침묵>을 본 뒤 1시간 만에 구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범인을 추적하고 체포하지만, 범인이 다시 탈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카베 형사(야쿠쇼 고지)는 골치가 아프다. 아내(나카가와 안나)가 정신병을 앓고 있어 다카베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직장에서는 연쇄 엽기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 중인데 회사원, 교사, 경찰, 의사 등 평범한 사람들이 뚜렷한 동기 없이 가족이나 동료를 살해한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목 아랫부분부터 가슴 밑까지 칼로 X자로 똑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미스테리한 사건에 의문은 품고 수사를 시작한 다카베는 이들이 모두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라는 청년을 만난 후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힌트는 피해자에게
 
제목인 <큐어>가 무슨 의미인지 추측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서는 의외로 살인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쥐고 있다.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마미야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여기는 어디지. 너는 누구지. 최면에 걸리게 될 살인자는 대답한다. 여기는 OO해변이고 나는 교사인데 위층에서 자고 있는 여자의 남편이야. 나는 경찰이고 여기는 경찰서야. 위치와 장소, 직업과 사회적 역할을 말하는 사람에게 마미야는 라이터 불빛을 켜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그리고 언제나 이 물음에서 하나의 신이 끝나고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사람만 마미야의 최면에 걸린다. 이때 살해된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최면에 빠진 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최면에 빠진 이들을 하나의 직업이나 가정 혹은 사회적 역할로 구분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다른 남편이나 교사, 경찰, 의사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다. 남과 다른 나의 이야기를 끝내 떠올릴 수 없을 때. 최면에 걸린 이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된 것마냥 X자로 목을 그어 사람을 죽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들은 각각의 결핍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오프닝에서 매춘부를 살해한 이는 가정에서 성생활의 만족이나 안정감을 찾기 어려웠을 확률이 높다. 마미야에게 술을 주는 게 어떠냐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하고 커피를 대접한 교사는 서서히 벌어지는 균열을 발견했을 거다. 담배 하나에도 깐깐한 동료가 3년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경찰은 무심하게 그의 머리에 권총을 쏜다. 공중화장실에서 남자의 얼굴 가죽을 벗긴 의사는 여성이란 이유로 직업군 내에서 성차별을 받아왔다. 무관심, 소외, 무의미, 단절된 관계 등이 차곡차곡 응축된 살인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대낮에 살인이 벌어지는 이유로도 연결된다. 반면 마미야의 최면은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고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밤에 이루어진다. 범인과 다카베의 차이가 여기서 벌어진다. 범인들이 낮이나 밤이라는 하나의 시점에서만 마미야를 만난다면, 다카베는 낮과 밤 모두 마미야와 조우한다. 스스로 경찰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라고 자각하고 있는 다카베는 이미 텅 비어있는 인물이다. 비어있는 걸 또 비울 수는 없다. 자신이 텅 비어있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마미야와 다카베는 이렇게 낮과 밤까지 공유하며 동기화된다. 영화의 원제가 '전도사'였다는 사실이 오싹하게 다가온다.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현재진행형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이 <큐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이 두드러지는 점은 범인이 잡히지 않고, 나아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쇄살인범 수색보다 군부독재의 체제유지에 더 많은 공권력이 투입했고, 보여주기식 브리핑을 위해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가짜범인 만들기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살인의 추억>에서 범죄를 조장하고 방치한 건 1980년대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이다.
 
다카베의 친구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사쿠마는 말한다. 최면에 걸리더라도 살인이 나쁘다는 윤리의식이 있다면 결코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고. <큐어>는 도쿄를 주 배경으로 삼지만 도쿄의 특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 펼쳐질 뿐이다. 그러나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의 내면은 일상적이지 않다. 세탁소의 손님은 잔뜩 화난 말투로 누군가 죽여버리겠다는 혼잣말을 하다가 태연하게 세탁물을 되찾아간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로케이션 장소가 병원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중충한 회색빛 도쿄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영화가 기이한 시공간으로 빠지는 장면이 두 번 있다.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때, 탈옥한 마미야를 추적해 오래된 병원 건물로 갈 때. 다카베는 창문 너머 구름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똑같은 디자인의 버스는 어쩌면 같은 행선지로 향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두 건의 살인이 벌어진다. 다카베의 아내가 특유의 X자 상처를 안고 미이라처럼 앙상한 형상으로 발견되고, 마미야는 다카베의 총격을 받고 허공에 X자를 그리며 죽는다. 상상 속의 장소처럼 보이는 곳에서 다카베를 구속하고, 또 이해하던 두 사람이 최후를 맞이한 후 다카베는 새로운 전도사로 거듭난다.
 
마미야가 최후를 맞이했어도 살인은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마미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메스머리즘으로 대표되는 사교(邪敎) 집단의 가르침은 1900년대부터 축음기를 통한 음성메시지, VHS를 통한 영상 콘텐츠로 알음알음 전파되어 왔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마미야의 등장 이전부터 같은 수법의 살인은 계속 벌어졌을 것이고, 이후에도 다카베를 통해 이어진다는 암시가 등장한다. 그냥 평범한 얼굴을 가진 이가 옛날 일이 생각나 시체가 있던 논두렁의 배수로를 지켜봤다는 <살인의 추억>의 엔딩. 레스토랑의 직원이 갑작스레 식칼을 들고 사라지는 <큐어>의 엔딩은 영원히 반복되고 멈출 수 없는 돌림노래의 끔찍한 예고다.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멈추지 않는 비어있는 세탁기
 
명작은 시대를 녹여내지만 걸작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큐어>가 25년 만에 한국에서 첫 개봉을 하고 아트하우스 상영이라는 불리함을 딛고도 1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의 영역을 구축한 덕이라고 볼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익스트림무비와 인터뷰에서 '평범한 누군가 감염되어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은 초기 코로나 사태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라는 질문에 '당시에는 순수하게 재밌는 영화로 찍었으나 현대인이 봤을 때 비유적인 생각을 하면서 볼 수 있는 거 같다'라고 대답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다카베의 부인은 세탁통이 비어있어도 세탁기를 돌리는 버릇이 있다. 다카베는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집에서는 분주히 작동하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않는 세탁기의 소음이 울려 퍼진다. 다카베는 세탁기의 전원을 '자연스럽게' 내린다. 그 일상 너머에는 아내의 자살을 상상할 만큼의 무기력, 무의미, 관계의 단절이 내는 굉음으로 소란하다. 그러나 감정을 비추지 않도록 훈련받은 그는 목을 메단 아내의 환상 앞에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임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좇아가지 못해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 노동에서 성취감을 맛보기는 어렵다. 거리두기로 단절되어 아직 복구되지 못한 관계로 소리 없는 아우성은 늘어간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비어있는 세탁기가 멈추지 않고 소음을 내는 것처럼 무의미한 반복을 거듭하는 우리는 어쩌면 끔찍한 치유를 소망하지는 않을까. 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공포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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