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노래방에서 자신의 가창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소찬휘의 < TEARS >를 부르는 것처럼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노래방에서 한 번쯤 불러 봤을 '고음 시험곡'이 있다. 바로 1990년에 발매됐던 메달밴드 STEEL HEART의 < She's Gone >이다. 최고 3옥타브 솔까지 올라가는 초고음을 자랑하는 < She's Gone >은 국내에 노래방이 도입되기 시작한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이다.

하지만 한국 남자들의 영원한 도전곡인 < She's Gone >과 이 노래의 주인공 STEEL HEART는 정작 미 현지에서 엄청난 명성을 가진 밴드가 아니다. 1990년에 결성된 STEEL HEART는 빌보드 싱글차트 14위(두 번째 싱글 <I'll Never Let You Go>)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대중적으로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STEEL HEART는 2집 활동 도중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가 무대세트에 깔리는 큰 사고를 당하면서 꾸준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STEEL HEART처럼 현지보다 국내에서의 명성이 더 높은 가수가 있는 것처럼 배우들 중에서도 유난히 국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할리우드 배우가 있다. 이 배우는 현지에서 어린 시절에 보여준 잠재력을 완전히 폭발시키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턱시도>와 <이프 온리> 등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러블리한 매력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배우 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그 주인공이다.
 
 <턱시도>는 <러시 아워1,2>에 이어 세계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한 성룡의 3번째 영화다.

<턱시도>는 <러시 아워1,2>에 이어 세계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한 성룡의 3번째 영화다. ⓒ CJ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보다 국내에서 더 사랑 받은 여배우

어린 시절부터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던 러브 휴이트는 1992년 가족 코미디 영화 <외계인 먼치>를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1993년에는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시스터 액트2>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귀여운 백만장자>와 <하우스 어레스트> 등 가벼운 가족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하며 연기경험을 쌓던 러브 휴이트는 1997년 호러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단행했다.

러브 휴이트가 주인공 줄리 제임스를 연기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세계적으로 1억2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러브 휴이트는 단숨에 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38만 관객을 동원했고 <찍히면 죽는다>,<해변으로 가다> 등 2000년대 초반 한국의 호러영화 제작붐을 주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998년 로맨틱 코미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2001년 범죄 코미디 <하트브레이커스> 등으로 인지도를 쌓던 러브 휴이트는 2002년 홍콩의 액션스타 성룡과 함께 <턱시도>에 출연했다. 6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턱시도>는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성룡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서울에서만 39만 관객을 동원했다. 러브 휴이트 역시 <턱시도>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호러 영화와 코믹액션 영화를 통해 국내에서 인지도를 한껏 끌어 올린 러브 휴이트는 2004년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뛰어든 판타지 멜로영화 <이프 온리>를 선보였다. <이프 온리>는 전국 10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17년에 재개봉 될 만큼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미국 현지에서는 제대로 된 배급조차 받지 못하고 곧바로 2차 시장으로 넘어가는 비운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현지에서 러브 휴이트의 상승세가 꺾인 시점이기도 하다.

러브 휴이트는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가필드>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개의 시즌을 모두 개근했던 드라마 <고스트 스위퍼러>가 러브 휴이트의 2000년대 대표작일 정도. 어느덧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중견배우가 된 러브 휴이트는 지난 2019년부터 응급구조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 9-1-1 >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시장 공략한 성룡
 
 성룡(왼쪽)은 <턱시도>에서 할리우드 신예스타 제니퍼 러브 휴이트와 특유의 '성룡식 코믹액션'을 마음껏 선보였다.

성룡(왼쪽)은 <턱시도>에서 할리우드 신예스타 제니퍼 러브 휴이트와 특유의 '성룡식 코믹액션'을 마음껏 선보였다. ⓒ CJ엔터테인먼트

 
90년대 중반 <홍번구>의 성공 이후 미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동하던 성룡은 1998년 <러시 아워>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턱시도>는 두 편의 <러시 아워> 시리즈로 5억9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성룡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자본과 기술의 도움을 받은 작품이다(물론 <턱시도>는 <러시 아워>시리즈 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총알택시기사 지미 통(성룡 분)은 뛰어난 운전실력을 인정 받아 미 비밀 첩보국 최고 요원 클락 데블린(제이슨 아이삭스 분)의 개인 운전기사로 스카우트 된다. 하지만 데블린의 차가 폭탄테러를 당하면서 데블린은 큰 부상을 입고 지미가 데블린 대신 그의 턱시도를 입게 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블린 행세를 하게 된 지미는 이론은 완벽하지만 현장경험은 전무한 여성요원 델 블레인(제니퍼 러브 휴이트 분)과 함께 첩보국의 비밀지령을 수행하게 된다. 

<턱시도>는 평범한 택시기사가 엄청난 기능이 숨겨진 턱시도를 입고 특별한 능력이 생겨 첩보임무를 수행하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미의 능력 대부분은 이미 배우 성룡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다. 성룡은 홍콩에서 그랬던 것처럼 <턱시도>에서도 대부분의 고난도 액션 연기를 직접 해냈다. 영화가 모두 끝난 후 배우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는 NG장면 쿠키영상 역시 성룡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장면이다.

영화 <턱시도>의 제작사와 배급사는 바로 1994년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라이벌을 자처하며 창립했던 <드림웍스>다. 드림웍스는 2000년대부터 실사영화 제작 편수를 대폭 늘렸는데 <턱시도> 역시 그 중 한 편이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너무 많은 정성을 쏟은 탓일까. 아시아 최고의 액션스타 성룡이 출연한 <턱시도>는 완성도나 흥행에서 아주 높은 평가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미 비밀 첩보국의 신입요원 델 블레인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교본을 통해 숙지했던 이론들을 읊으며 적들과 싸운다. 상당히 재미있는 캐릭터지만 그간 성룡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연기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러브 휴이트가 <턱시도>에서 조금만 더 개성 있는 방식으로 델 블레인을 표현했다면 <턱시도>의 흥행성적과 러브 휴이트의 위상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성룡에게 턱시도 넘겨준 '아빠 말포이'
 
 폭탄테러를 당한 클락 데블린은 엄청난 힘이 숨겨진 턱시도를 자신의 운전기사 지미 통에게 맡겼다.

폭탄테러를 당한 클락 데블린은 엄청난 힘이 숨겨진 턱시도를 자신의 운전기사 지미 통에게 맡겼다. ⓒ CJ엔터테인먼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드레이코의 아버지 루시우스 말포이를 연기했던 배우 제이슨 아이삭스는 <턱시도>에서 미 비밀 첩보국 최고요원이자 턱시도의 원래 주인 클락 데블린 역을 맡았다. 폭탄테러로 큰 부상을 당하는 데블린은 지미가 사건을 해결한 후 지미의 마지막 임무를 함께 할 때 건강하게 복귀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삭스는 2003년 <피터팬>에서 후크 선장과 웬디의 아버지로 1인2역을 맡기도 했다.

턱시도에는 반세기에 걸쳐 큰 사랑을 받았던 '소울의 대부' 고 제임스 브라운도 특별 출연했다. 지미의 턱시도를 만졌다가 지미에게 가격을 당한 후 의식을 잃는 역할이었는데 이 때문에 지미가 턱시도의 '모창기능'을 활용해 제임스 브라운 대신 뛰어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자칫 고령의 브라운이 강력한 턱시도의 공격에 사망한 게 아닌가 우려하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브라운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지미를 보며 미소를 짓는 장면이 나온다.

<턱시도>에서 물을 오염시켜 자신의 생수회사가 전 세계 물을 독점하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악의 축' 배닝 역은 리치 코스터가 맡았다. 영화 후반부 지미에게서 빼앗은 턱시도를 입고 지미를 위기에 빠트리지만 지미와 델의 합동공격에 여왕 소금쟁이가 베닝의 입 속으로 들어가면서 끔찍한 최후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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