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참 흐뭇한 드라마다. 30만 원 짜리 정식을 앞에 두고 '김초밥'을 먹어도 그 선택을 존중해주는 법무법인 한바다의 정명석(강기영) 팀장과 팀원들은 그들의 말처럼 참 "다채롭다"(2회). 자폐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이들은 레즈비언 커플, 또 다른 자폐인, 탈북민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사건을 맡는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따뜻함' 가운데 나는 자꾸만 마음 한 켠이 '따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따뜻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드라마인데도 말이다. 이런 '따끔함'을 주인공 영우도 느꼈는지 영우는 4회 이런 말을 하고는 변호사를 그만두려 한다(물론, 지금은 복귀했다).
 
"제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도 사람들 눈에 저는 그냥 자폐인인 우영우인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따끔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미세먼지처럼 인식하기 힘든 '미세 차별'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돌아보면 유난히 따끔했던 건 3회 방송분이었다. 3회에는 '마이크로 어그레션' 그러니까 '미세 차별'이 자주 등장한다.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은 특별한 악의나 해치려는 의도 없이 행하는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무시나 모욕을 뜻한다. 한국어로는 주로 '미세 차별'로 번역되곤 하는데 마치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차별이라는 의미다. 미세 차별의 특징 중 하나는 차별을 가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차별인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3회 영우가 이준호 사무관(강태오)과 길을 걸을 때 준호의 대학 후배가 등장한다. 이 후배는 준호에게 "오빠는 아직도 봉사하는구나"라고 하더니 영우에게 "화이팅"이라고 한다. 아무런 악의 없는 이 말들은 영우를 불편하게 한다. 이 말 속엔 자폐인은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이는 영우에게 '동등한 한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따끔'한 지점은 바로 이런 장면들이었다. 법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폐 환자'라고 영우를 지칭하는 검사, 영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택시 기사.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행위가 '차별'인지 조차 모른 채 행하는 미세 차별을 행하고 있었다.
 
미세 차별은 이처럼 아주 짧은 순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행해지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심리적 소진, 자괴감, 고립감 등 많은 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 마치 미세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건강을 해치듯 말이다. 여러 차례 미세 차별을 경험했던 3회 영우는 "저는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미세 차별'이 영우에게도 큰 상처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문화적 겸손'을 지닌 사람들
 
반면, 영우와 한팀인 정명석, 최수연 변호사(하윤경) 그리고 이준호 사무관은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영우를 대한다.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면서도 영우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던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종일 영우와 지내면서도 영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들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것이 '문화적 겸손'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겸손이란 타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즉, 문화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개방적으로 성찰하고,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은 나와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에 대해 스스로가 지닌 자동적 사고 혹은 편견을 인식할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태도로 경청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명석은 1회 영우를 채용하라는 대표에게 찾아가 "자폐라고 쓰여 있는 뒷장은 왜 안 보았냐"고 따졌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명석은 영우와 함께 하면서 차차 변해간다. 그러더니 영우를 '자폐 환자'라고 지칭한 검사에게 "자폐가 있다고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데 자폐 환자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감수성을 지니게 됐다(3회). 명석의 이런 변화는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해가고자 하는 '문화적 겸손'을 지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수연은 영우를 솔직하게 대한다. 영우는 자신을 친구로 대해주는 이런 수연을 '봄날의 햇살같다'고 느낀다.

수연은 영우를 솔직하게 대한다. 영우는 자신을 친구로 대해주는 이런 수연을 '봄날의 햇살같다'고 느낀다. ⓒ ENA

 
영우의 로스쿨 동기이기도 한 수연이 영우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자연스럽다. 수연은 영우가 답답한 행동을 할 때는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영우로 인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전문을 잡아주고, 생수병을 따주는 등 영우에게 필요한 도움들을 자연스레 행한다. 영우 역시 이런 수연의 태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데 이는 수연이 영우를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닌 '평등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역시 문화적으로 겸손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준호는 영우를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는 태도로 대한다. 1회 회전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영우에게 "문이 너무 힘들게 되어있죠?"라고 물은 것, 영우의 고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줄 수 있는 것 등은 준호가 '나는 당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다'는 문화적 겸손을 지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준호는 5회 "속아 넘어가기 대회에서는 자폐인이 1등 할 것"이라고 말하는 영우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이어지는 영우의 설명에 준호는 "이런 이야기 도움이 돼요. 제가 변호사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라고 말한다. 이는 영우의 세계를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준호의 겸손의 태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미세차별을 막아주는 '문화적 겸손'
 
이런 '문화적 겸손'은 미세 차별로부터 모두를 보호한다. 명석은 영우가 의뢰인 앞에서 고래 이야기를 꺼낼 때 스스럼없이 "그만하라"고 말하는 데 이는 영우를 진정으로 동등한 동료로 대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려라는 이유로 의뢰인에게 이런 영우를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영우로 하여금 '시혜를 받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을 것이고 의뢰인에게도 신뢰감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겸손한 태도는 이처럼 함께하는 일터 분위기를 만든다.
 
수연의 태도는 영우에게 '봄날의 햇살'이 되어준다. 영우는 5회 수연에게 "너는 봄날의 햇살같아"라며 수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는 솔직한 수연의 태도가 편안하게 느껴졌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괴감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부분이었다. 6회 함께 쇼핑을 할 때도 수연은 무조건 영우에 맞춰주지 않는데 이런 태도는 영우에게 동등하다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준호는 '궁금해하며' 영우를 대했기에 영우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듯, 나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영우를 보았기에 준호는 영우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열린 마음은 자연스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영우 역시 이런 준호에게 그 다른 어떤 사람보다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다.
  
 준호는 영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잘 모른다'는 태도로 묻고 들어준다.

준호는 영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잘 모른다'는 태도로 묻고 들어준다. ⓒ ENA

 
이처럼 '문화적 겸손'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어가도록 돕는다. 명석, 수연, 준호는 영우를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적절한 도움을 주며 함께 한다. 이런 태도는 영우를 편안하게 하고, 미세 차별 속에 자괴감을 느꼈던 영우가 다시 변호사로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문화적 겸손'은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편향되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따끔'해진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바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편견을 돌아봐야 할 때일 것이다. 이런 성찰과 점검은 영우의 동료들이 지닌 따뜻함의 근간이 되는 '문화적 겸손'을 기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는 미세 차별을 방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주는 '따끔한 순간'들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따끔함을 통해 보다 따뜻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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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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