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서울 광장에서 열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주최)'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폭우가 내리기도 했지만, 참가자들은 그조차 즐겼다. 3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행사인만큼, 의미는 더 깊었다. 13만 5천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쳤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모임 알파오메가 등 종교계는 물론, 필림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주한 대사들이 무대 위에 올라 연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마음속에 쟁여둔 무지개를 꺼내는 동안, 혐오의 목소리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축제가 펼쳐진 구역 반대편에서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집회가 펼쳐졌다. 혐오는 광장 뿐 아니라 서울시의 행정 조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주최측인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6일의 광장 사용 기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단 하루만을 허용했다. 오세훈 시장은 '신체 과다 노출 시 내년부터 광장 사용을 제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시장은 광장 사용 신고자의 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서울광장조례에도 맞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 오세훈의 개인적인 입장이 동성애 반대라는 건, 분명히 공개적으로 밝혔다"며 정체된 인식을 드러냈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여러 차례 슬로건으로 걸어왔지만, 그가 동행할 대상은 한정되어 있으니 씁쓸했다. 서울시에는 그가 '반대'하는 동성애자들이 여럿 살아가고 있다.

올해는 퀴어 문화 축제에 가지 못 했다. 내년에 퀴어 문화 축제에 가게 된다면, 좋은 음악들을 선곡해서 재생하는 부스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이미 전 세계 퀴어의 송가로 자리잡은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는 물론, 다음에 소개하는 곡들과 함께 광장을 걷는다면 어떨까. 오세훈 서울 시장이 광장에서 이 노래를 함께 듣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이랑이 지난 2020년 발표한 '환란의 세대'

이랑이 지난 2020년 발표한 '환란의 세대' ⓒ 포크라노스


1. 이랑 - 환란의 세대 (Feat. 아는 언니들) (2020)

싱어송라이터이자 독립 영화 감독, 작가인 이랑은 불편한 이야기를 애써 하는 사람이다. 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수상작인 <늑대가 나타났다>(2021)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 그리고 친구들이 겪는 고통을 노래했다. 케이팝 시상식인 서울가요대상에 초대받았을 때는, 공연 도중 수화를 통해 '차별금지법 지금'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환란의 세대'는 '늑대가 나타났다'와 함께 이 앨범을 대표하는 곡이다. 이 곡에서 이랑은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염세적으로 보이는 태도의 이면에는 '살아내자'는 마음이 녹아 있다. 특히 비혼과 퀴어, 페미니스트 합창단 '아는 언니들'이 참여한 버전은 원곡과 또 다른 감정의 울림을 선사한다. 이랑은 지난 7일,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서 "서울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족을 찾아서, 신의 놀이, 환란의 세대,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의 꿈이 내년에는 이뤄지기를 바란다.
 
 호지어(Hozier)의 데뷔 앨범 < Hozier >(2014)

호지어(Hozier)의 데뷔 앨범 < Hozier >(2014)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2. 호지어(Hozier) - Take Me To Church (2014)

군대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이어폰으로 타고 나오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박수를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호지어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Take Me To Church'의 장엄한 멜로디는 퍽 익숙하다. 'Take Me To Church'는 빌보드 핫 100 차트 2위에 올랐고,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인 호지어는 이 곡과 함께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블루스는 물론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이 곡에서, 호지어는 교회를 '거짓으로 쌓아 올려진 성지'라고 말한다. 곡의 말미, 절규하듯이 외치는 'Amen(아멘)'은 이 곡의 정수다. 보수 개신교 교회가 성소수자 혐오 정서에 기여했던 역사가 소환된다. 호모포비아들에 의해 탄압받는 동성 커플의 비애를 다룬 뮤직비디오 역시 인상적이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데뷔 앨범 < channel ORANGE >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데뷔 앨범 < channel ORANGE >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3. 프랭크 오션(Frank Ocean) - Bad Religion (2012)

프랭크 오션은 미겔, 위켄드와 함께 '피비 알앤비(PB R&B) 3대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뮤지션이다. 단 두 장의 정규 앨범만을 발표했지만, 그는 이제 특정 장르의 총아를 떠나, 오늘날의 대중음악을 규정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게이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는 첫 정규 앨범 < Channel Orange >(2012)의 발매를 앞두고, '지난 여름, 남자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호모포비아 정서가 극심했던 미국 흑인음악계에서, 대형 신인 프랭크 오션의 커밍 아웃은 거대한 사건이었다. 첫 정규 < Channel Orange >에 실린 'Bad Religion'은 애절한 짝사랑 노래다. 동시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나쁜 종교'에 비유하며, 개인과 사회의 불화를 암시한다. 교회를 연상시키는 도입부의 오르간 소리 역시 사뭇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자넬 모네의 정규 3집 < Dirty Computer >

자넬 모네의 정규 3집 < Dirty Computer > ⓒ 워너뮤직코리아

 
4. 자넬 모네(Janelle Monae) - 'I Like That'(2018)

자넬 모네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서는 뮤지션이다. 대중음악계와 영화계를 두루 오가며 활동했고, 노래와 랩, 춤의 경계를, 또 '신디 메이웨더'라는 페르소나와 '본캐'의 경계를 오간다. 2019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올랐던 < Dirty Computer > 에 자넬 모네가 지닌 흑인 여성의 정체성, LGBTQ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젠더적 의식이 두루 담겨 있다. 범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그는 수록곡 'I Like That'에서 "나는 언제나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내가 속한 곳이 옳다고 믿는다"고 노래한다. 그가 시종일관 씩씩하게 견지하는 삶의 태도는 퀴어 문화 축제에 나온 시민들에게도 힘을 불어 넣을 것이다. 한편, 조던 필 감독의 영화 <어스>(2019)에서도 이 곡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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