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선거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에서도 5년에 한 번 대통령 선거를 하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교육감 및 교육의원 등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선발한다. 그 밖에 크고 작은 사고로 이들의 자리에 공백이 생길 때도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국민의 대리인을 선발한다.

선거는 일정연령 이상의 국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보통선거와 모든 유권자에게 1인 1표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평등선거, 유권자가 후보자를 직접 선출하는 직접선거, 그리고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는 비밀선거로 치러진다. 이를 '민주주의 선거의 4원칙'이라고 하는데 전국단위의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나 마을에서 열리는 작은 단위의 선거에서도 '투표의 4원칙'을 지켜 선거를 치른다.

이처럼 선거는 민주시민의 소중한 권리지만 국내에서는 대선을 기준으로 21세기 들어 한 번도 투표율 80%를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민주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 바로 자신의 한 표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는 남자의 운명적인 시간을 다룬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스윙보트>다.
 
 케빈 코스트너가 '한량'으로 변신한 <스윙보트>는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케빈 코스트너가 '한량'으로 변신한 <스윙보트>는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각 나라에서 꾸준히 제작된 선거 관련 영화들

사실 선거는 결과로 인해 후보 및 정당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당사자 입장에서는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영화로 만들기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군부독재 시절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소재에 대한 제약이 없이 자유로웠던 할리우드에서는 1970년대부터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1975년에 선보인 <내쉬빌>은 컨트리 음악제를 준비하는 마을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내쉬빌>은 순수한 컨트리 음악이 선거운동에 이용되면서 추악하게 변질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개봉을 하지 못했다. <내쉬빌>뿐 아니라 그 시절 정치와 선거에 관련된 영화들은 국내 극장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선거 관련 영화들이 국내에도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포크가수가 정치계에 도전하는 팀 로빈스 감독의 연출 데뷔작 <밥 로버츠>가 있었고 1997년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블랙코미디 <웩 더 독>도 놓치지 말아야 할 선거영화로 꼽힌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2011년작 <킹메이커>는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17년에 개봉한 <특별시민>은 현직 서울시장이 3선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전국 13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의 차기작이자 조폭두목이 국회의원선거에 도전하는 <롱 리브 더 킹:목포영웅>도 손익분기점 도달에 실패했다.

2020년에는 동명의 브라질 영화 판권을 구입해 제작한 라미란 주연의 코미디 영화<정직한 후보>가 전국 150만 관객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이변 아닌 이변을 연출했다(라미란은 <걸캅스>에 이어 <정직한 후보>까지 주연을 맡은 영화가 두 편 연속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하지만 지난 1월 설 연휴와 대선특수를 동시에 노렸던 설경구, 이선균 주연의 <킹메이커>는 78만 관객에 그치며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한 표의 중요성?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 아니다
 
 자기 손으로 미국 대통령을 뽑게 된 버드(왼쪽)는 어른스런 딸 몰리 덕분에 주변의 유혹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기 손으로 미국 대통령을 뽑게 된 버드(왼쪽)는 어른스런 딸 몰리 덕분에 주변의 유혹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에서 낚시와 맥주를 즐기며 사는 싱글대디 버드 존슨(케빈 코스트너 분)은 딸 몰리(매들린 캐롤 분)와 반드시 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선거날 술에 취해 잠이 들면서 투표장에 가지 못했다. 투표권이 없는 몰리가 아빠 몰래 투표를 했지만 시스템 오류로 인해 무효표가 됐고 하필이면 대선이 사상 초유의 동점이 되면서 버드는 선거법에 따라 10일 안에 자신의 손으로 미국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버드는 양 정당의 대선후보들과 면담을 갖고 자신의 말 한마디로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바뀌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버드의 성숙한 딸 몰리는 아빠의 곁을 지키면서 아빠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결국 자신의 집으로 날아온 국민들의 바람이 담긴 편지를 밤새 읽은 버드는 미국뿐 아니라 어쩌면 세상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자신이 가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늑대와 춤을>과 <로빈훗> < JFK > <보디가드> 등에 출연하며 1990년대 초반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코스트너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전성기가 비교적 빨리 저물었다. 평범한 소시민을 연기했던 <스윙보트> 역시 좋은 연기에도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하며 흥행 실패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코스트너는 2010년대 들어 <맨 오브 스틸> <히든 피겨스> 등 흥행작에 출연하며 1990년대 대스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스윙보트>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케빈 코스트너가 아닌 몰리를 연기했던 매들린 캐롤이라고 말한다. 1996년생으로 <스윙보트> 출연 당시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였던 캐롤은 아빠보다 훨씬 어른스런 말과 행동으로 실질적인 아빠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특히 영화 초반부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라고 했던 연설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명대사였다.

크고 작은 선거에서 투표장으로 가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나 한 명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게 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윙보트>에서는 한 표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결정됐고 현실에서도 지난 3월 한국의 대선에서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가 단 0.73%P였던 일이 있었다. '투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뻔해 보이는 교훈은 비단 영화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액션배우가 된 <스윙보트>의 매디슨 기자
 
 지역 방송국의 기자를 연기했던 폴라 패튼은 <미션 임파서블4>에서 이단 헌트의 동료요원 제인 카터 역을 맡았다.

지역 방송국의 기자를 연기했던 폴라 패튼은 <미션 임파서블4>에서 이단 헌트의 동료요원 제인 카터 역을 맡았다.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스윙보트>에서 몰리를 똑 부러지게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매들린 캐롤은 스칼렛 요한슨이나 엠마 왓슨처럼 성인배우로서 대스타로 성장하진 못했다. 하지만 캐롤은 성룡이 베이비시터로 변신했던 영화 <스파이 넥스트 도어>, 짐 캐리의 딸을 연기한 <페퍼씨네 펭귄들>, 전설적인 CCM 밴드 머시미의 보컬 바트 밀라드의 여자친구 섀넌을 연기했던 <아이 캔 온리 이매진>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버드와 몰리가 거주하는 지역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하는 매디슨은 버드를 집중 취재해 중앙진출을 노리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과의 면담을 위해 집으로 찾아온 몰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오해를 받지만 출세를 위해 악의를 가지고 버드부녀를 괴롭히진 않는다. 매디슨 기자를 연기한 폴라 패튼은 지난 2011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 분) 팀의 여성 요원 제인 카터를 연기했다.

재선을 노리는 현 대통령 앤드류 분(켈시 그래머 분)의 참모 마틴 폭스는 대통령에게 버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때로는 심심한(?) 몰리의 이야기 상대가 돼주기도 한다. 조용하게 존재감을 보여주는 폭스 역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나이젤과 <트랜스포머>의 조슈아 조이스, <헝거게임>시리즈의 시저 플리커맨 등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를 소화했던 스탠리 투치가 연기했다.

1990년대 영화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스윙보트>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도널드 그린리프를 연기한 배우의 얼굴이 상당히 익숙했을 것이다. 그린리프 후보를 연기한 배우는 다름 아닌 전설의 액션영화 <스피드>에서 폭탄테러리스트 하워드 페인 역을 맡았던 고 데니스 호퍼였다. 2010년 애니메이션 <알파 앤 오메가>의 목소리 연기까지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가던 호퍼는 같은 해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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