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사극 <환혼>에서는 가업이 무예와 도술인 4대 술사 가문이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경영한다.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드라마 속의 술사 가문들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6월 29일 제4회 방영분 때도 나타났다.

옹졸하고 심술 많은 세자 고원(신승호 분)이 장씨 가문의 하인인 주인공 무덕이(정소민 분)가 던진 똥물을 뒤집어썼다. 세자는 격분을 참지 못하면서도,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그냥 덮어뒀다. 장씨 집안을 포함한 4대 가문의 위상도 세자의 판단을 좌우한 요인 중 하나였다.
 
 tvN <환혼> 한 장면.

tvN <환혼> 한 장면. ⓒ tvN

 
도사가 좌지우지하는 국가
 
도사나 술사의 조직이 국가 핵심부를 형성한다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우리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다. 속세와 떨어져 산중에 은거하는 수행자들을 연상하게 되는 우리의 인식과 괴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사나 술사의 세계는 공권력에 의해 작동하는 국가질서와 거리가 멀다.

현대 한국인들이 국가권력과 거리를 둔 세계를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용어는 재야나 비제도권 혹은 시민사회 등등이다. 지하경제라는 용어도 자주 쓰인다. '사회 대 국가'의 관계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사회(社會)라는 단어도 그런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지금 우리가 쓰는 사회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일본인들이 영어 'society'의 한자 번역어로 만들어낸 단어다. 19세기 이전의 동아시아 문헌에 나오는 사회라는 글자는 지금 우리가 쓰는 사회와 의미가 달랐다.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는 종묘사직의 사(社)와 맥락을 같이했다. '사'는 토지신이나 그것에 대한 제사를 뜻했고, '사회'는 '사'에 대한 제사를 수행하는 모임을 뜻했다.
 
반면, 중국 학자 진관타오의 <관념사란 무엇인가> 제1권에 정리됐듯이,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쓰이는 '사회'는 경제적 하부구조와 그 위의 상부구조로 구성된 전체를 가리킬 때가 많다. 이런 의미의 사회는 국가를 포함할 때도 있고 국가와 대립적일 때도 있다.
 
'재야'나 '비제도권'도 그렇고 '시민사회'나 '사회'도 그렇고, 이런 단어들은 도사나 술사들의 세계를 지칭할 만한 현대적인 용어가 아니다. 재야나 비제도권은 제도권과 상반된 뉘앙스를 띠고, 시민사회나 사회는 국가권력과 상반된 뉘앙스를 띨 때가 많다. 이런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제도권과 국가권력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제도권이나 국가권력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한 도사나 술사들의 세계를 지칭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종교'라는 용어로 오늘날의 도사나 술사들을 묶기도 곤란하다. 현대 사회는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지만, 도사나 술사들의 종교는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을 일반적인 종교 카테고리로 묶기도 쉽지 않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도사나 술사의 세계를 지칭할 현대적 용어가 마땅치 않는 것은, 이들의 영향력이 미미해져 조직이나 결사를 이룰 만한 물적 토대가 갖춰지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일부가 개별적으로 대선 정국에 출현해 이슈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들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을 이룰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강호' 속에 담긴 의미
 
 tvN <환혼> 한 장면.

tvN <환혼> 한 장면. ⓒ tvN

 
하지만 고대에는 그들이 세력을 이뤘고, 그들의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도 활발히 사용됐다. 강호(江湖)라는 용어의 빈번한 사용 역시 그것을 반영한다.
 
이 용어는 속세로부터 지리적으로 떨어질 뿐 아니라 별도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의해 작동하는 그들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2019년에 <사회사상과 문화> 제22권에 게재된 김시천 상지대 교수의 논문 '천하에서 강호로: <장자>에서 강호의 발견과 사회의 상상'은 "장자의 독특한 조어(造語)인 강호", "그의 독특한 사회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는 강호" 등의 표현으로 강호와 장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강호라는 글자가 <장자>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분석한 이 논문은 "장자는 당시 법가와 유가가 주도하던 중앙집권화된 세계로서의 '천하'를 비판하며, 강호라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였다고 한 뒤 "중앙집권화된 권력질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의미로 강호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한다.
 
이런 강호의 세계는 <환혼>에 등장하는 술사들이 활동하기에 적절했다. 이는 고대 군왕들이 자신의 지배 구역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했던 '천하'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강호가 갖는 그 같은 이미지는 <장자>에 나오는 노나라 임금과 새의 이야기에도 나타난다. 노나라 임금이 극진히 대접했는데도 바닷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흘 만에 죽었다. <장자>는 이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새는 새의 방식대로 자기들끼리 살게 둬야 한다고 말한다. 강호 위를 떠다니며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잡아먹고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자>는 인간이 강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물고기가 물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에 빗대어 묘사한다. 인간이 도의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을 물고기가 물로 나아가는 것과 동일 선상에서 파악한다. <장자>는 외부의 간섭 없이 속세를 망각하는 공간이란 의미로 강호의 용례를 만들었다.
 
도사나 술사들의 세계를 표현할 현대적 용어를 만들거나 자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오늘날과 달리, 도사나 술사들이 독자적 세계를 구성할 역량이 있었던 과거에는 그들의 세계가 강호라는 용어에 의해 자주 표현됐다. 강호는 형식상으로는 특정 군주의 지배하에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과 관계없이 독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향했던 그들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환혼>에는 국가권력과 동떨어지기는커녕 국가권력을 직접 형성하는 4대 술사 가문이 등장한다. 국가권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강호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속세과 무관한 강호의 세계'와 이 드라마가 묘사하고자 하는 '속세와 밀접한 도사들의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주시하며 이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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