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모비딕>의 고래, 인간 세상으로 나오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백경, 즉 하얀 향고래는 알비노증을 가졌기 때문에 흰색이다. 본래 향고래는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회색을 가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모비딕'은 그러니까 향고래 중에서도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난 개체라 할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눈에 잘 띄는 알비노 개체는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영우(박은빈 분)는 고래 덕후다. 그래서 툭하면 고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영우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남자 주인공 준우(강태오 분)에게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향고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이 드라마를 왜 기획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깊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모비딕>의 주인공인 하얀 향고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인 영우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는 바닷속 향고래처럼 크고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알비노증을 가진 돌연변이처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자폐를 가진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어렵다. 마치 자신만의 세계인 깊은 바다에 침잠한 고래와 같달까. 다른 개체들과 달리 알비노증을 가진 희귀한 향고래는 자폐를 가졌으나 천재적인 암기력과 순수함을 지닌,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귀하게 보이는 우영우라는 존재가 되어 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드라마 공식 포스터 물 밖으로 나온 고래처럼 영우는 뭍에 적응하려면 아직 배울 것이 많다

▲ 드라마 공식 포스터 물 밖으로 나온 고래처럼 영우는 뭍에 적응하려면 아직 배울 것이 많다 ⓒ ENA

 
소설 <모비딕>에서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의 종족을 사냥하고 학살하는 포경선을 향해 이 돌연변이 고래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인간과의 정면승부를 택한다. 고래를 잡는 포경선과 인간의 오만은 드라마에서 장애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편견과 억압으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런 편견과 억압을 변호사 우영우는 어떻게 정면 승부하며 돌파하는지를 소송에 휘말린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드라마 제1화에서 고령의 노인 영란(강애심 분)이 화가 나서 휘두른 다리미에 남편이 크게 다쳐 살인미수죄로 재판이 시작되지만 남편이 재판 도중 그만 숨지게 되어 살인죄로 죄목이 변경된다. 자기 자신을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방어하기 힘든 고령의 노인이면서 반평생 남편에게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으나 묵묵히 참고 견디다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재판정에 서게 된 영란을 변호하게 된 우영우는 기지를 발휘해 무죄를 입증해 낸다. 변호사로서 영우가 처음 맡은 사건이 자신이 어릴 적 커서 변호사가 되라고 처음 말해 준 집주인 영란의 재판이기에 끝에 닿은 감동은 더 배가 된다.

제2화에서는 결혼식장에서 드레스가 벗겨져 상반신이 노출된 신부 화영(하영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종교의 배타성, 결혼의 의미, 성소수자의 행복할 권리 그리고 직장 상사의 갑질 등 보다 심층적인 주제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사려 깊다는 것은 화영의 신분 설정과 성 정체성에서 엿볼 수 있다. 화영은 재벌가에 시집가는 상류층 자제이지만 화려한 삶과는 달리 결혼에 대한 선택권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당당히 사랑할 수도 없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자는 신분이나 경제력과 상관없이 어느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균형적인 시선이 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한다.

주인공 영우는 법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때로는 정확한 법률 지식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으로 사건 이면에 담긴 진실을 찾아내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영우 또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겪고 극복해야 할 내적이고 외적인 벽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드라마는 마치 왈츠처럼 경쾌하면서도 즐겁게 풀어나간다. 
 
이 드라마가 <모비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극 중 영우가 고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뽐낼 때 더 잘 드러난다. 소설 역시 바다와 선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 못지않게 고래의 생태에 대해 마치 동물학 논문처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작가가 그러하듯 영우 또한 사람들에게 고래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고래 이야기는 금지 사항이라 이를 자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우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극을 심각하게 이끌지 않으면서 에피소드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화감 없이 설득하는 데에는 우영우를 맡은 배우 박은빈의 공이 크다. 상큼하고 천진하고 순수하고 천재적인 이 역할을 과연 이렇게 소화할 배우가 누가 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고래와 왈츠를 추는 따듯한 세상을 꿈꾸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물 밖으로 나와 사람과 함께 살려면 고래는 왈츠를 출 수 있어야 한다. 물 밖으로 나온 하얀 향고래인 우영우 변호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자폐증을 가진 그녀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이해하는 아버지 광호(전배수 분)와 친구 동그라미(주현영 분)가 있다.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한 첫날, 어려운 형법은 술술 외우지만 건물의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이 영우에게는 너무 어렵다. 게다가 자신의 직속 상사인 시니어 변호사 명석(강기영 분)은 자신을 영 마뜩지 않아한다. 업무 중에는 '반향어'와 '고래 이야기'도 자제해야 한다. 퇴근길 다시 회전문 앞에서 쩔쩔매는 우영에게 같은 회사 직원인 준호(강태오 분)가 다가와 왈츠의 리듬을 떠올리며 회전문을 통과하라고 조언해준다. 곧이어 두 사람은 함께 왈츠를 추며 회전문을 통과한다. 

베테랑 변호사인 자신에게 "변호사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셨는데 그것도 잘 모르십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리고, 자신이 한 말을 따라 하는 이 이상한 신입 변호사가 못내 불편했지만 명석은 자신의 이름처럼 명석하게도 영우가 가진 힘,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참된 지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불편했던 자폐를 가진 사람을 동료로서 받아들이고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모습을 점차 보여준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영우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극 중 캐릭터들의 성숙한 모습이 유독 따듯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결국은 판타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 한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변호사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를 극복하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가 된 템플 그란딘의 사례처럼 이 판타지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순진한 이상주의일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반드시 우영우가 생겨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순수한 희망 덕분에 휴머니즘 가득한 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힐링'을 느낀다. 영혼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연주에서 오는 감동,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자작나무 숲 속에서의 산책, 팍팍한 삶 속에서 숨은 진주처럼 고귀함을 가진 휴머니즘 등...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보면 볼수록 힐링이 되는 드라마다. 영우 주위에는 다행히도 따듯하고 건실하며 상식적인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왈츠를 출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의 리듬과 조금 다른 리듬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함께 걷고 뛰기보다 즐거이 춤을 추자고 권하는 작가의 제안에는 청량한 페퍼민트 향기도 함께 담겨 있다.

아름답지만 생존력이 떨어지는 알비노증을 가진 향고래처럼 대단한 재능을 가졌으나 동시에 자폐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가야 할지, 어떻게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포용되어야 하는지 시청자로서 능히 배워 볼 준비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의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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