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블라디미르 푸틴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21세기의 표트르 대제, 혹은 러시아의 히틀러로 불리우는 푸틴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러시아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 하는가. 7월 5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러시아 전문가인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출연하여 '푸틴, 러시아의 독재자인가, 구원자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러시아의 개혁군주였던 표트르 대제의 사례와 비교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바 있다. 표트르 대제와 같이 영토확장으로 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푸틴의 야망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전세계에서는 푸틴을 테러리스트이자 전쟁범죄자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푸틴은 러시아에서는 '푸틴 신드롬'으로 불리우며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 있다. 현대사에서 현재 생존 인물 중 푸틴처럼 많은 비난과 관심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인물도 드물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일리야는 "러시아에서 푸틴만큼 평가가 갈릴 정치인이 없다. 영향력면에서도 푸틴 만한 인물이 없다. 푸틴의 도발적인 발언이나 행보로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이 상승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고 증언했다.
 
미국인 존 그랜지는 푸틴이 유명 경제잡지 <포브스>로부터 2013년부터 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서방이 러시아를 구슬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하며, 오직 '푸틴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보도할만큼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평가했다.
 
푸틴의 남다른 성장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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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줄곧 '강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해왔다. 1952년 푸틴이 출생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에는 레닌그라드라고 불리우며 2차세계대전 '독소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통했다. 푸틴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다리부상을 당했고, 어머니는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독일군의 봉쇄로 아사 직전까지 갔다가 구조됐다. 푸틴이 태어나기 전 두 명의 형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푸틴의 남다른 성장배경은 러시아인들에게 큰 의미를 남겼다. 러시아인들에게 2차대전은 엄청난 희생과 비극의 역사다. 당시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겪은 비극을 그대로 체험한 푸틴의 가족사는 러시아 시민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까지 푸틴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푸틴 역시 전승기념일 퍼레이드에 가족사진을 들고 등장하는 등, 자신의 가족사를 정치적 이미지메이킹을 위하여 적극 활용했다.
 
푸틴은 어린 시절에만 해도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 덩치가 큰 친구들과 싸우면서 푸틴은 "약하면 얻어맞는다"는 약육강식의 이치를 일찍부터 깨달았다. 훗날 푸틴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50년 전 레닌그라드 거리는 나한테 규칙을 가르쳐줬다. 싸움이 불가피하다면 먼저 주먹을 날려라"고 회상했다. 성인이 된 푸틴은 체육특기생으로 항공대 진학을 꿈꾸면서 유도와 레슬링을 익혀 몸을 단련했다.

푸틴은 1968년 <방패와 칼>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2차대전 당시 소련군 첩보원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에서 첩보원 한 명이 수천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스토리에 매료된 푸틴은 소련정보기관 KGB 요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푸틴은 KGB 레닌그라드 지국에서 8년간 근무했다. 그는 자신이 KGB 소속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심지어 그의 아내마저도 남편의 직업을 정확히 몰랐다고. 푸틴은 지금도 오른팔은 고정시키고 왼팔만 흔들며 걷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적을 만났을 때 총을 가장 신속하게 꺼낼 수 있기 위한 KGB 특유의 훈련법 때문이라고.

푸틴은 이후 동독으로 파견되어 악명높은 비밀경찰인 '슈타지'에서 활동했다. 독일 통일 이후 슈타지의 탄압에 시달려온 동독 국민들이 동독 KGB 지부를 공격했는데, 푸틴은 소련에 지원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못했다. 훗날 푸틴은 당시를 회상하며 "내게는 조국이 더 이상 없구나, 소련이 병든 게 분명하다"며 절망감에 빠졌음을 고백했다. 이 사건은 푸틴의 개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동독에서 돌아온 푸틴은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이자 정치적 대부가 되는 솝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 의장과 재회하여 그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푸틴의 모국은 당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었다.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됐고 러시아가 출범했다.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푸틴은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푸틴은 '결국 소련의 붕괴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소련이라는 이름하에 역사적 러시아의 붕괴였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다. 천 년 전 세워진 나라를 크게 잃었다'며 박탈감을 고백했다. 푸틴은 이때 '질서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면 더 큰 치욕을 맛보게 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푸틴은 이후 상트페테부르크 부시장으로 재직하며 수완을 인정받았고, 고향을 경제 도시로 부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자산관리국 부국장에 임명되며 러시아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궁에 처음으로 입성하게 됐다. 이후로도 여러 요직을 거치며 승진을 거듭한 푸틴은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의 눈에 들어 1999년 8월 총리로 파격 발탁됐다. 당시만해도 푸틴의 이름을 알고 있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무명의 정치인에 불과했다.
 
푸틴의 명성을 높이게 된 사건이 2차 체첸 전쟁이었다. 당시 옐친 정권은 1차 체첸 전쟁의 패배로 대중의 신망을 잃으며 궁지에 몰렸다. 1999년 모스크바를 강타한 연이은 폭탄테러의 배후가 체첸 반군이라고 파악한 푸틴은, 체첸과의 전쟁을 재개할 명분을 얻었고 옐친에게 군통수권을 요구한다.
 
푸틴이 주도한 2차 체첸전쟁은 러시아의 완승으로 끝났다. 푸틴은 전쟁중에 직접 전투기를 몰아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찾아가는 쇼맨십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쟁에 지쳐있던 러시아 국민들은 늙고 병약했던 옐친과 달리, 젊고 강인한 푸틴에게 열광했고 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정치적 계산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이미 대중의 지지를 잃은 옐친은 대통령 임기를 3개월 남겨둔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을 하야하고 총리였던 푸틴에게 권력을 이양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일설에서는 부정부패가 많았던 옐친이 퇴임 이후 안전보장을 푸틴에게 약속받는 조건을 권력을 일찍 넘겼다는 소문도 있다. 푸틴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53%의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결국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당시 푸틴의 나이 48세였다.
 
하지만 푸틴은 불과 집권 3개월 만에 러시아 해군의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태로 인하여 여론의 비난을 받으며 정치적 위기에 몰린다. 푸틴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강한 러시아 프로젝트'를 제시한다.
 
첫 번째로 푸틴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소련 해체 직후 옐친 정권과 유착하며 정관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재벌 권력을 타깃으로 삼았다. 호도르콥스키, 베레좁스키 등 러시아를 뒤흔들던 여러 유력 올리가르히들이 푸틴의 손에 숙청당했다. 다만 푸틴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권력과 거리를 둔 올리가르히들은 측근으로 남겨놓았는데, 첼시의 전 구단주로 유명한 로만 아브라모비치 등이 대표적이다.
 
옐친에게 올리가르히가 있었다면 푸틴에게는 실로비키가 있었다. 군부, 정보기관, 군산복합체 출신들로 무력부처 관련 권력 실세를 가르키며 이들은 지금도 푸틴 정권을 떠받치는 친위세력으로 불린다. 푸틴을 키워낸 KGB와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들이 정부의 핵심요직에 대거 등용됐다. 소련해체 후 사라졌던 KGB는 연방보안국 FSB로 대체되며 러시아 국내 정보를 모두 관장하는 KGB 이상의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푸틴 정권의 최대 과제는 무너진 경제의 재건이었다. 푸틴은 소련 해체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에 싱크탱크인 CAST(전략 및 기술분석 센터)를 설립했다. 푸틴 집권 직후 러시아의 주요 자원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행운이 따르면서 경제성장률도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푸틴 집권 1기에 해당하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의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푸틴은 군개혁에도 나섰다. 푸틴은 여유로워진 재정을 국방비에 대거 투입했고, 군대의 규모는 슬림화했으나 효율적인 작전수행을 위한 시설 현대화와 직업군인 육성, 상시 대응 군체제로 러시아군을 변화시켰다. 또한 푸틴은 핵전략에도 변화를 줘서 러시아나 그 동맹국이 위협을 받을 경우 선제공격도 가능하도록 핵 관련 정책을 재조정했다.
 
경제-군사 개혁으로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푸틴은 이른바 '스트롱맨 이미지'로 자신을 연출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푸틴은 총리 시절 전투기 탑승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유도를 하는 모습이나, 혹한의 날씨에 얼음물 목욕을 즐기는 모습, 상의탈의를 하고 승마를 즐기는 장면 등으로 강력한 리더십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푸틴은 2004년 선거에서 71%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같은해 구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푸틴은 주변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데 민감하게 반응했다.
 
푸틴은 2007년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하여 "일급 체제(미국)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나토의 확장과 미국의 영향력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이에 반박하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의 설전은 큰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KGB 출신이었던 푸틴과 마찬가지로 게이츠 장관은 미 정보국 CIA 출신이라는 경력을 빗대어 "늙은 스파이들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2024년 러 대선에 미칠 영향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푸틴은 2008년 조지아-남오세티야 전쟁을 일으켜 서방에서 맞서는 스트롱맨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당시 푸틴은 3선이 금지된 러시아 법에 따라 측근이던 메드베데프를 잠시 허수아비 대통령에 앉히고 자신은 총리에 취임하여 여전히 실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당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푸틴이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조지아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명장면은 지금도 유명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미국과 서방세력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개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막상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당시에는 속수무책이었고 이는 주변국들에게 나토와 미국을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공교롭게도 전쟁이 거듭될 때마다 푸틴의 지지 기반은 더욱 단단해졌다.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푸틴은 조지아 침공 이후 2012년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크름반도를 병합하며 2018년에도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다가오는 2024년 러시아 대선에서는 푸틴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는 장면이다.
 
한편 푸틴은 본격적으로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에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했고, 2020년에는 대통령 2회 이상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도입했으나 개헌 이전의 대통령직 횟수는 백지화시키는 꼼수를 통하여 2024년에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만 69세인 푸틴은 앞으로 두 번 더 재선에 성공할 경우 만 84세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푸틴은 장기집권을 위하여 강력한 언론통제를 벌이고 있다. 국영 언론사들을 확대하면서 민영사들을 압박했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NTV의 소유주인 구신스키의 비리를 조사하여 구속시키고 회사를 국유화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SNS와 서구언론을 차단하며 푸틴을 비판하는 내용을 철저히 단속하는 등, 강도 높은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통제에도 불구하고 푸틴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체첸전쟁 당시 모스크바 폭탄테러가 푸틴의 자작극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전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푸틴이 흑해 연안에 비자금으로 초호화 궁전을 지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니발니 등이 잇달아 독살의 표적이 된 이른바 '방사능 홍차'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21년 리트넨코의 죽음이 독살이며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러시아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했던 빌 브라우더는 2017년 미국 상원 법사위에서 푸틴이 집권기간 동안 2000억 달러(약 241조 3천 억)의 돈을 부정축재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이는 전세계를 대표하는 갑부로 꼽히는 빌 게이츠나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을 능가하는 규모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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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무엇을 원하며 우리는 왜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가.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준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전쟁 외에도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실행에 옮기며 미국과 EU에 맞설 만한 구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유로마이단 사태부터 비롯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는 푸틴의 꿈에 균열을 만들었다. 푸틴은 늦어도 2013~2014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푸틴은 왜 하필 2022년에 되어서야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을까. 조 바이든 정권이 2021년 아프가니스칸 철군 사태로 수렁에 빠진 것을 보면서 미국이 더는 유럽에 개입하지 못할 것이는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미국은 경제 제재와 군사 지원만 할뿐 직접 개입은 꺼리고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간절한 노력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들의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푸틴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사태다. 미국 주도로 이루어진 국제질서의 틀을 '신냉전'이라는 이름하에 미국-중국-러시아의 다자 구도로 재편하면서 러시아의 영향력과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푸틴의 야망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21세기의 한반도 정세 역시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국제질서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현명한 대응법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는 힘으로 이룰 수 없고, 오로지 이해로만 이룩될 수 있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어록을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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