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큐어> 메인 포스터 이미지

영화 <큐어> 메인 포스터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큐어>가 재개봉을 맞이한다. 예술영화시장에서 안정된 흥행이 보증된 거장들의 대표작 재개봉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신작 개봉이 모조리 서랍에 들어가 버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런 경향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대개 극장 개봉 당시 크게 흥행했거나 상품성을 인정받은 명작들의 경우에 한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 <큐어>는 제대로 국내 개봉도 거치지 못한 작품이다. 애초에 1997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이니 일본대중문화 수입개방 직전이라 공식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게 불가능하던 시절의 작품이다.
 
하지만 뭔가 독특한 공포영화가 화제라는 소문은 현해탄을 금방 넘어왔고, 한동안 <큐어>는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며 '전설'이 되었다. 극장 개봉은 놓쳤지만 볼 사람은 다 찾아본 영화가 된 것이다. 감독이 세계적 거장이 되면서 이 영화는 더욱 더 자주 언급되었고, 어렵게 기회를 잡아 관람한 이들에겐 감독의 대표작으로 칭송되었다. 공식 개봉은 아니지만 기획전 상영회 등을 통해 목마른 이들에게 아주 가끔씩 꾸준히 관람 기회가 베풀어져 급한 갈증만 풀어주는 시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1997년 영화가 20여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정식 국내 극장 개봉을 기다린다.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세계 예술영화감독을 상징하는 이름 중 하나인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 목록에서도 여전히 정점에 있는 <큐어>는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죽지 않는 좀비처럼 끊임없이 호출되는 걸까?
 
1_아무것도 믿지 못할 기이한 영화 속 세계
 

도쿄 인근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의 시체에는 동일한 방식으로 마치 인장을 찍듯 기괴한 표시가 남아 있다. 범인은 곧 체포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터지기 시작한다. 범인이 사건마다 다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범인들은 회사원, 교사, 경찰, 의사 같은 평범한 사회구성원들이었다. 피해자는 범인의 가족이나 지인들이었다. 범인은 평소에 가정생활이나 사회활동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더 기이한 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음을 인정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답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 타카베는 미궁에 갇힌 심정이다. 점점 사회는 흉흉해지고 살해 동기는 오리무중인 가운데 희생자만 늘어간다. 그러던 중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범인들은 모두 '마미야'라는 남자와 접촉한 직후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확인된다. 경찰은 그를 참고인으로 소환하지만 대체 왜 그가 살인을 교사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교사가 가능한지를 입증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런 타카베를 포함해 차례로 등장인물들에게서 어떤 결핍과 모순 같은 심리적 구멍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주인공을 포함한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벼랑으로 내몰린다.
 
영화는 초반 잔혹범죄에 대처하는 경찰을 맡은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짠하게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사건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는 즈음부터 미스터리 공포 장르로 전환된다. 하지만 <큐어>에는 원한을 품은 유령도, 괴력의 살인마도, 인외의 괴수도 등장하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요소가 아예 없진 않지만 모든 건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일어난다. 모든 걸 기획한 범인은 하지만 철저하게 평범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잠재의식 속에 갖고 있을 욕망과 불안을 끄집어내 이용할 뿐이다. 결국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인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평소 모습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기만의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인가.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의 가슴을 죄이면서 질문을 던진다.
 
2_통념을 거부하는 <큐어>의 기이한 풍경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는 할리우드 공포영화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것 같은 기본전제와 멀찍하게 거리를 둔다. 관객의 말초적 감각을 한껏 자극하기 위해 현란한 초 단위 편집과 특수효과에 의지하기는커녕, <큐어>는 지독히 건조하고 느릿느릿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대부분의 사건은 백주대낮에 벌어진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미드소마> 같은 작품의 선구자 격인 셈이다. 심지어 '롱 테이크' 기법을 적극 활용해 '원 씬 원 컷'으로 촬영되었다. 공포영화라면 응당 자극적인 사운드를 활용해 관객에게 불길함을 예고하고 잔뜩 겁을 줘야 할 텐데 이 영화에서는 음악도 그리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는 정말 기막히게 사용된다.
 
<큐어>는 여전히 '영화'란 극장에서 상영되는 걸 전제로 기획되고 제작되던 시절의 산물이라 그런지 철저하게 모든 게 극장에서의 관람환경에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큐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예전에 여러 경로로 이 영화를 봤더라도 다시 극장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1997년 등장한 영화다. 대체 그 시절은 어땠기에 이런 기괴한 영화가 탄생한 걸까? 이 영화는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밀레니엄'을 앞둔 시절의 결정체와도 같은 작업이다.
 
지금은 그런 일도 있었었지 하고 넘어가지만 당시엔 'Y2K'로 전 세계 정보통신이 마비되고 경제와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괴담이 횡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상상조차 힘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던 세기말의 출구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외형을 가지게 된다면 답안으로 등장하는 게 바로 <큐어>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한 이 저예산 미스터리 스릴러는 얼핏 보기엔 당시 열풍을 일으키던 'J호러'의 변주로 포함만 시켜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분명히 그 당시엔 <링>이나 <주온>이 해당 장르의 대명사였다. <큐어>는 그 물결의 지극한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영화 속 분위기처럼 본 작품의 명성 혹은 악명은 검은 물밑에서 스며오듯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혔고 이제는 '고전'에 등극했다.
 
공포영화광들이 기대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이 영화에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창자로 줄넘기를 하는 장면은 없다. (피는 좀 많이 나오긴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쏘우> 시리즈처럼 신체훼손과 무력감이 쌍으로 보는 이에게 달려드는 그런 부류는 절대 아니다. 잔혹 수위가 결코 낮은 편은 아니지만 세기말 전후로 전 세계에서 쏟아지던 잔혹 영화들에 비하면 명함 내밀기도 힘든 수준이다. (그 당시엔 매년마다 '00영화를 능가하는!', '보다가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가!'가 경쟁처럼 이뤄지곤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과 고어 수위 경쟁을 벌이던 공포 장르물의 세계에서 <큐어>는 외관상 그저 심리 추리묘사에 집중한 소품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이 영화는 무섭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싹해지며 한기를 느끼게 된다. 이미 공포영화 장르의 법칙에 통달해 "이때쯤이면 살인마가 튀어나와야 할 타이밍이고 저런 행동을 하면 반드시 봉변을 당하고~" 지식을 뽐낼 준비를 마친 관객이 가득하던 시절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스크림> 시리즈가 탄생했던 시기와 <큐어>의 등장은 정확히 겹친다) 하지만 그런 '마니아'들의 기대를 사뿐히 즈려밟듯이 영화는 비개연성의 극을 달린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하고 극장에서 탄식했을 관객들 표정이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3_<큐어>만의 영화적 인장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아주 잘 보는 편이다. < 13일의 금요일 >이나 <나이트메어>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같이 시리즈로 이어진 '슬래셔' 무비 전성시대에 수없이 많은 양산형 공포영화를 비디오와 케이블 채널로 보고 또 봤다. 가련한 희생자들을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찍고 자르고 썰어대는' 그런 영화들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밥을 먹었다. 수위가 낮으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쎈', 마치 올림픽 순위 경쟁하듯 강도 높은 공포영화를 찾으러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마치 중독되는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도 있었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그해의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금지구역 섹션 상영작 품평은 공포영화 애호가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여흥이었다)
 
이런 자극의 문제는 더 센 것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제작진은 대개 두 가지 방법론을 택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발전한 특수효과를 살려 극도의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3D 효과가 적극 도입되고 다채로운 영화 테크닉이 개발된 장르가 공포영화다. 촬영감독이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배우 뒤를 뛰어가는 고역을 치르게 만든 '핸드헬드' 기법이 정착하는데 <샤이닝>의 공적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운 일이다. 두 번째로는 더 불쾌하고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쪽 방향은 금방 식상해질 관객에게 더 많은 비용과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고, 뒤쪽 방향은 이미 현실에서 자극적인 사건사고가 펑펑 쏟아지는 걸 체험한 관객의 이목을 끌기가 난망하다는 점이다. 결국 속도와 표현수위 경주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공포의 유효수명은 갈수록 짧아진다.
 
그런데 참 오랜만에 다시 본 <큐어>는 여전히 두려움과 한기를 느끼게 만든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다시 볼 때마다 망설여지는 그런 경험은 참 만나기 힘들다. 대체 얼마 만에 이런 감정을 겪게 된 것인지 아득해지는 순간이다. 영화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최신영화 뿐 아니라 반세기 훨씬 전에 만든 영화도 깔끔하게 복원하거나 원래 색깔을 부활시키는 마법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데 <큐어>는 새롭게 추가하거나 재편집한 부분이 전혀 없음에도 그런 디지털 마사지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게 만든다. 그래서 감독의 본래 의도대로 무서움을 느껴야 할 때 무섭고 긴장해야 될 때 긴장된다. 오직 시청각적 누수를 줄여낸 것만으로 영화의 질감이 제대로 돌아온 셈이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 속 사건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공간들-가정집, 파출소, 공중화장실 같은-에서 발생한다. 언뜻 보기엔 개연성 제로인 부조리함의 극치 같은 사건들을 계속 터트리며 영화는 시치미 뚝 떼고 던져뒀던 미끼들을 하나씩 조립한다. 마치 살인마가 조금씩 관객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런 면을 놓고 보면 <큐어>는 당대 공포영화의 유행법칙과는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고전적인 해당 장르의 원형질에는 매우 충실한 편이다.
 
공포영화의 재해석 과정에서 '공포' 대신 '장르'가 중시되는 경향이 발생했다. 원초적 공포를 유발하는 대신에 관객은 편안하게 현실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팝콘을 씹으며 왁자지껄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장르의 출발과 괴리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스크린 속 가련한 희생자들은 게임 속 좀비처럼 감정이입과는 무관하게 유희적으로 소비될 뿐이다. '나'는 안전하고 별개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큐어>는 고집스럽게 관객에게 간접체험을 극한까지 해보도록 등을 떠민다.
 
<큐어>는 공포영화의 소 장르 중에서도 귀신이나 유령의 원한을 동원하는 '오컬트'로 분류될 수 있다. 해당 장르 특유의 거미줄 죄여오는 듯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관객의 신경을 긁는다. 비유하자면 재래식 칠판에 분필로 긁어대는 느낌, 혹은 날이 서 있는 종이 끝부분에 손가락을 베이는 그런 체험을 의자에 묶인 채 벌벌 떠는 관객에게 선사하는 영화다. 내 옆의 평범한 지인이 어느 순간 덤덤하게 평소처럼 다가와 칼을 휘두르고 뒤통수에 총을 들이대는 경험을 도망도 못가고 당하게 된다니! 이런 극한의 공포는 보는 이의 청각도 고문한다. 정제된 미니멀 사운드 효과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 꼭 필요할 때만 뜬금없이 등장해 은근슬쩍 이미지와 결합해버린다. 부지불식간에 관객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 꼴이 된다. <큐어>는 그런 영화다.
 
4_'세기말' 일본의 건조하고 불안한 풍경화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대체 구로사와 기요식 감독은 왜 이런 기괴한 세기말 풍경을 그려냈을까. 1955년생인 감독은 일본 영화이론 연구의 대표 중 하나인 하쓰미 시게히코 밑에서 수학하며 영화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폭넓은 탐구를 거친 학구파 감독이다. 하지만 학부를 마친 후 감독은 오랜 시간 '핑크무비'를 찍으며 기회를 노려야 했다. 핑크무비란 당시 '로망 포르노'라 불리던 일본 성인영화의 한 유형으로 일정 시간 이상의 에로 장면만 들어가면 저예산 영화에서 감독의 연출 재량을 허용하는 시스템 하에서 생산된 성인영화들을 일컫는다. 이 소 장르는 재능은 있지만 상업영화 제작사의 투자를 받지 못하던 신진 감독들에겐 생계인 동시에 기회의 수단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또한 이 시절을 오래 겪어야 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는 쪼들리고 예술적으론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하던 30대 중반에 감독은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가 스탈링 요원을 맞이하며 심리적으로 그를 압도하던 장면에서 착안해 후다닥 한 편의 시나리오를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나 감독의 시나리오는 일본의 당대 사회현실과 결합되어 완성되었다. <양들의 침묵>의 해당 장면이 특별한 자극적 요소 없이 오직 말과 분위기의 힘으로 대단한 흡인력을 발휘한 명장면이란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대체 일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걸까?
 
감독이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얻은 건 1991년경이라고 한다. 영화는 1997년 세상에 선보였다. 그 기간 감독이 살며 듣고 보고 체험한 일본은 <떠오르는 태양>이나 <로보캅>에서처럼 경제성장의 절정에 있던 일본이 미국을 접수할 것 같던 시기를 지나 '버블'이 붕괴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던 장기 침체의 시기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사회 전체가 겨우 유지는 되지만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사라져버린 1억 2천만의 사람들이 가득한 섬나라.
 
사람들은 변화를 꿈꿨지만 오랜 타성에 젖어 있던 일본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50년 자민당 일당체제가 무너지고 야당이 집권하기도 했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내공도 강했지만 긍정적 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일본은 이 당시 거품 붕괴 후 성장 없이 현상유지만 30년째 거듭 중이다. '갈라파고스화'가 시작된 것이다. 현재 일본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때 유래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정체된 사회의 풍경은 어떤 걸까.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로 악명을 전 세계에 날린 옴 진리교 사건을 바로 이 시절의 어두운 초상 중 대표 격으로 들 수 있겠다. 옴 진리교를 비롯한 오컬트와 사이비 신흥종교들이 득세하던 게 바로 감독이 한창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촬영하던 시절이다. 사이비 종교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상륙해 여전히 누군가는 맹신하고 있는 '유사과학'이나 '음모론'의 상당수가 당시 일본사회의 산물이다. '음이온' 효과나 '게르마늄' 효능,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은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병든 사회의 흔적. 사람들이 불안하고 의지할 곳을 찾는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런 시대의 징후는 문화예술인들에게 기민하게 포착되었다. 우리에겐 가벼운 에세이나 단편소설 작가로 흔히 치부되곤 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옴 진리교 테러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인터뷰해 집필한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를 출간한 것만 봐도 당시 일본사회의 병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짐작 가능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 그런 사회적 어둠을 지독하게 효율적으로 <큐어>에 흡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영화 후반에 밝혀지는 범행의 전모와 가해자의 지적 수준은 평범한 피해자들과 대조되어 공포감을 더한다. 실제 옴 진리교 독가스 테러의 범인들은 당대 일본사회 내에서도 엘리트층에 속했다. 그런 그들이 사이비 교주의 한눈에 봐도 조잡한 초능력에 넘어가 재산을 헌납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풍경, 그리고 피해자 대부분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던 서민들이란 점은 거대한 사회적 충격이었다. '사교'의 탈을 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것들이 득세한다는 건 그만큼 그 사회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증명인 것이다.
 
5_세기말의 기운을 갖고 돌아온 <큐어>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영화 <큐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그런 시대적 현실을 재료 삼아 배양된 공포로 가득한 <큐어>, 그 음침한 분위기에 현대인의 위선과 욕망이 어우러진 본 작품의 위력은 지금 봐도 명불허전 그 자체다. 다양한 열린 해석이 가능하도록 숨김없이 통로를 개방한 채 밀려오는 <큐어>는 우리 곁에 숨어있는 '어둠의 심연'인 셈이다. 항상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지만 무시하고 지나치곤 하던 우주적 공포의 총합이 이 영화에는 가득하다. 영화를 선택한 관객은 금단의 지식을 탐닉하다 열어선 안 될 문을 연 스티븐 킹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암흑의 허수공간을 열다가 빨려들고 말 테다. 한번 휘말리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졌을 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떤 기분일까. <큐어>에는 그걸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비명' 3부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이후 연달아 선보인다. 1997년 <큐어>에 이어 2001년 <회로>, 2006년 <절규>로 이어지는 연작은 지극히 일상의 소재와 오컬트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한번 보고 잊는 게 아니라 우리 뇌리에 근거지를 만들어놓고 때때로 돌아오는 공포로 가득한 연속체다. 이후 감독은 보다 다양한 실험과 치밀한 심리묘사에 집중하는 작업으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다. 후속 영화들도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으로 좋은 성과와 평가를 받아내고 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두근거리며 찾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어>가 주는 질감은 특별하다.
 
나는 이 영화가 여전히, 오히려 지금이 더 무섭다. 그저 말초적 수단에 의지하는 깜짝쇼나 혐오스러운 과잉이 아닌 체험을 강제하는 영화다. 니체가 말했던 바로 그 순간, 어둠이 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큐어>가 기어코 끄집어낸 암흑의 심연은 그 근본이 해소되기 전에는 온전히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영화를 보는 이의 경험과 상상력이 작품의 흑 마술을 몇 배 더 증폭시키는 세상에서 관객 또한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정보>
큐어 キュア Cure
1997|일본|범죄, 스릴러
2022. 7. 6. 개봉|111분|15세 관람가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주연 야쿠쇼 코지(타카베 켄이치 역), 하기와라 마사토(마미야 쿠니히코 역)
출연 우지키 츠요시(사쿠마 마코토 역), 나카가와 안나(타카베 후미에 역),
오오스기 렌(후지와라 역), 도구치 요리코(미야지마 아키코 박사 역),
호타루 유키지로(쿠와노 이치로 역), 덴덴(오이다 역),
토다 마사히로(하나오카 토루 역), 하루키 미사요(하나오카 토모코 역),
나카야마 슌(키무라 역), 아타카 아키라(야스카와 역)
각본 및 원작 구로사와 기요시
수입 및 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10회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
제21회 일본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조연상
「영화 예술」 1997년 일본영화 베스트 1위
제13회 고베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남우조연상
제7회 일본영화 프로페셔널 대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베스트 텐 1위
제20회 요코하마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일본영화 베스트 텐 1위
제53회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미술상
키네마준보 1997년 일본영화 베스트 5위
키네마준보 90년대 일본영화 베스트 4위 (2019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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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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