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판타지 사극 <환혼>에서는 술법이 가업인 4대 술사 가문이 등장한다. 가상의 국가인 대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사극에서는 장씨·서씨·박씨·진씨가 왕실과 함께 나라를 경영한다.
 
네 가문의 자제들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대표하는 대호국의 천하 4계로 추앙된다. 술사 가문 자제들이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는 술사가 대우를 받고 또 술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술사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환혼> 속 사람들처럼, 옛날 사람들도 그런 세계를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두 눈으로 술사들의 진짜 실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해도, 관념상으로나마 그런 세계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드라마 <환혼> 속 한 장면.

드라마 <환혼> 속 한 장면. ⓒ tvN

 
역사 속 도술 사례

현대 한국인들은 청산리대첩의 영웅인 김좌진 장군을 존경하지만, 그가 도술을 부렸을 거라거나 사후에 신선이 됐을 거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19세기까지만 해도 달랐다. 현실세계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을 도술의 세계, 술법의 세계와 연결시키는 일이 용인됐고, 또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위대한 인물이 실제로 도사가 됐느냐를 떠나, 그런 인물들을 술법의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이 거부감 없이 용인됐다. 이 점은 강감찬이나 서경덕 같은 인물들이 옛날 대중의 머릿속에 어떻게 기억됐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정3품 첨지중추부사 출신인 홍만종의 <해동이적>에 귀주대첩 명장인 고려 강감찬 장군이 소개한다. 이 책은 문과시험 장원급제자 출신인 강감찬을 도사나 술사로 서슴없이 묘사한다.
 
강감찬은 한동안 '서울시 공무원'이었다. <해동이적>은 그가 한양부 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런데 그가 살았을 때는 한양부가 아니라 남경(南京)이었다. 지명 변천 과정이 <해동이적>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은 것이다.
 
강감찬이 남경에 근무할 당시, 이 도시에서는 호환(虎患) 피해가 심각했다. 호랑이들의 잦은 출몰이 남경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왕왕 길거리에서 대낮에 사람을 해쳤다"고 <해동이적>은 말한다.
 
강감찬은 이 문제로 고민에 빠진 남경유수에게 "이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라며 자기가 해결하겠노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만 보라는 것이었다.
 
그런 뒤 편지를 써서 아전에게 쥐어줬다. 이걸 들고 북문 밖 골짜기로 가면 승려 두 사람이 있을 테니 그들에게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승려들이 있었고, 이들은 편지를 읽은 뒤 아전을 따라 '서울시청'을 방문했다.
 
강감찬은 처음 만난 승려들을 타일렀다. 사람들을 그만 해치고 너희가 사는 데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승려들은 너무도 고분고분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시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판관이 망령이 났구나. 승려를 호랑이라 하다니!"라며 탄식했다. 그러자 강감찬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술법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강감찬은 두 승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너희들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야겠다"라고 부탁했다. 두 숭려는 이번에도 고분고분했다. 강감찬의 지시대로 호랑이로 변신하더니, 우레와 같은 포효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아전들은 놀라 도망하고 서울시장은 "놀라서 넘어지고 거의 기절했다"고 <해동이적>은 말한다.
 
귀주대첩 영웅을 술사로 둔갑시키는 일은 연산군 시대의 홍문관 대제학인 성현(成俔, 1439~1504)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해동이적>에 인용된 바에 따르면, 성현은 강감찬을 칭송하는 시에서 "(그) 위엄은 북한산 호랑이도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홀연히 날아 한낮에 신선이 되어 올라가니"라고 읊었다.
 
홍문관 대제학이면 국가 공인의 대학자였다. 그런 대제학을 지낸 인물이 강참찬이 북한산 호랑이를 쫓아낸 일과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일을 칭송했다. 비범한 인물을 도사나 술사 혹은 신선과 연결시키는 사유 방식이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났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유 양식은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나 글에서 쉽게 발견된다.
 
출중한 인물을 초인적인 세계와 연결하는 모습은 <해동이적>에 나오는 또 다른 인물인 화담 서경덕(1489~1546)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불·선을 넘나드는 철학자였던 서경덕 역시 대중들의 눈에는 어느 정도는 술사로 비쳐졌다. 대중은 그가 철학자일 뿐 아니라 술사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해동이적>에 따르면, 서경덕의 동생인 서숭덕이 산천을 유람하며 수양하다가 10년 만에 귀향했다. 서숭덕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형에게 보여주고자, 물 밖에 없는 물통을 가져다놓고 낚시질을 시작했다. 잠시 뒤 그곳에서 한 자 반이나 되는 금붕어가 올라왔다.
 
동생이 보인 기적에 대해 서경덕은 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작 이 정도 배워 왔냐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동생에게 시범을 보여줬다. 낚시질을 해보이다가 물통에서 황룡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 서경덕이 동생에게 건넨 한마디는 드라마 <환혼> 제1회에서 술사 장강(주상혁 분)이 했던 대사와 비슷했다. 병들어 죽어가는 임금이 건강한 육체를 갖고 싶다며 환혼(영혼 교체)을 부탁하자, 장강은 "환혼술은 금지된 사술"이라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해동이적>에 따르면, 서경덕은 동생에게 자신의 재주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동생이 경솔하게 술법을 부리지 않도록 당부했다는 것이다.
 
물통에서 황룡을 끌어올렸다는 이야기와 달리, 서경덕이 지리산 승려와 잠 안 자기 대결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그런 대로 현실성을 띤다. 눈 감지 않고 누가 오래 버티는지 가려보자는 승려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 대결은 서경덕의 케이오승으로 싱겁게 결판났다. 승녀는 15일 만에 피곤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더니 그로부터 3일 뒤에 깨어났다. 서경덕은 수십 일이 지나도 눈을 감지 않고 버텨냈다고 한다.

형이상학적 세계
 
현대인들은 지력이나 체력 혹은 의지가 탁월한 사람들을 높게 평가한다. 인간이 보유한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사람들을 고평가한다. 반면, 옛날 사람들은 도술 하나쯤은 부린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높이 평가했다. 초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와 연결된 인물들을 높이 쳐준 것이다.
 
그래서 위인이나 영웅에 관한 옛날이야기에셔는 술법이 동반되는 일이 비일비재다. 학자나 장군으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장치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의 상당수는 주인공이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옛날 한국인들이 그것을 실제 사실로 믿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처럼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씨 뿌린 대로 수확을 거둔다는 관념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을 봐온 사람들이, 물 밖에 없는 물통에서 금붕어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유목지대 사람들에 비해 농업지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훨씬 두드러졌다. 신비주의보다는 과학주의가 더 지배적인 농업문명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한국인들이 강감찬·서경덕의 술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레 수용했다는 점이다. 술법 이야기를 사실로 믿은 사람들도 물론 적지 않았겠지만, 영웅은 비범해야 하며 보통 인간과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는 옛날 사람들의 관념이 그런 이야기의 확산을 촉진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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