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어른'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법적으로 만 19세 이상은 성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편의적으로 어른을 분류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 일상의 언어적 표현에서 어른이라는 것은 칭찬의 의미에 가깝다. "어른 다됐네", "어른스럽다"는 표현속에는,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고 제대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어른일까? 책임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어른다운 삶을 살기 위하여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고민들이다. 6월 30일 방송된 tvN STORY <어쩌다 어른>에서는 '그냥 늙지말라' 2편으로 데이터 전문가인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세상이 '어른의 자격'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자산이나 나이처럼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일종의 기준들이 있다. 2015년 당시 설문조사에서 어른의 연관 감성어로 1위를 차지했던 것은 '걱정'이었다. 도움, 고민, 웃음, 좋아하다, 행복, 스트레스같은 단어들이 그 뒤를 이었다.

어른의 삶이란 힘든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결혼, 집안 대소사 등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다양한 압박을 받는다. 또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어른들은 모두가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고민을 안게 됐다.
 
2018년에서 2021년 사이 검색이 크게 늘어난 '정신과'라는 단어의 연관 감성어들은 현실, 환경, 대충에서 3년 사이에 의지, 추천, 직접 등으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마음의 병이 커진 현대인들은 정신과를 일반 내과 다니듯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내면의 불안을 더 이상 혼자 감추거나 방치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하는 것은 긍정적 변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킨 정신건강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등장과 심리상담 프로그램들의 인기도 이런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 주의할 점은, 그것이 나만의 고민이냐 혹은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고민이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전자는 나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만, 모두에게 같은 문제가 있다면 그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숙제가 남는다.
 
한국인들은 나이와 인생주기별로 각기 다른 고민에 직면한다. 2030세대는 취업과 연인관계 등에 대하여, 3040은 직장생활과 부동산, 5060은 건강과 부부관계가 주요한 고민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수 있다. 특히 각 세대에서도 '엄마'라는 집단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 유독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이자 딸, 아내, 며느리 등으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소화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이에 따른 역할관념, 즉 그 나이대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이 강하다. 자신이 그 나이에 맞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느낄 때마다 고민과 걱정이 늘어난다. 한국의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자주 거론하는 고민거리 3대장이 바로 '시간, 돈, 나이' 관련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논할 때 흔히 "나는 OO살이고 직장 O년차이고, 연봉이 OO"이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인생의 다양한 고민들이 오직 숫자화되는 정보로만 표현되는 것은 일종의 서글픈 사회적 강박이 낳은 결과다. 최근 보편적으로 쓰이는 스펙(Spec)이란 본래 설명서나 사양을 의미하며 인간에게 사용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표현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이 대비 성과, 인간의 가치 기준을 평가하는 의미로 바뀌어버렸다,
 
너도나도 고스펙을 쌓기 위한 무한 경쟁은, 개인 각자의 행복보다는 타인에게 평가받는 데 익숙한 삶을 초래한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돈과 나이가 되어버린다. 사회적 안전판이 불안한 사회일수록 인간들은 늘어가는 나이에 조급해지고, 안전판이 되어줄 금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삶의 가치를 객관적-금전적 지표로 단순비교한다면, 인간은 항상 자신보다 더 나은 대상과 비교하여 모자란 부분에 자괴감을 느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평타' 단어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최근 평균을 의미하는 일상 표현으로 자주 쓰이는 '평타'나 '국룰'이라는 단어 속에는, 경쟁사회속에서 너무 튀지도 처지지도 말고 "중간만 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무난하고 평범한 삶은 과연 최선일까. 평균이라는 말 속에는 곧 언제든 대체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남들이 하는대로 평균만을 추종하는 삶이 의외로 위험한 이유다.
 
그만큼 독특함, 유일함같은 고유성있는 매력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고유성을 개발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바로 '시간의 자율성'이다. 현대의 한국인이 시간이라는 선물을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의 한국 사회는 무리하게 일하는 사회에 가까웠다. 많은 한국인들은 개인의 자유나 여유를 희생하면서까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일과 삶의 분리'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칼퇴근 문화, 퇴근 이후의 사생활, 나만의 취미와 투자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직장생활 등을 경험하며 오늘날의 MZ세대 직장인들은 근무지와 근무방식을 어떻게 할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일 회사가 추구하는 근무방식이 맞지 않는다면 주저없이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를 결심할 만큼 합리적인 노동환경과 근무의 자유도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일자리인 직장은 여전히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에는 자아를 표출하고 증명하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자고 회사의 평균적인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짧아졌다.

지금 하는 일로써의 직업과, 내가 했던 일들을 모두 모아진 커리어의 개념이 분리되면서 일(Work)의 개념은 확장됐다. 내가 선택한 모든 일들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직업은 사라져도 커리어는 계속되기에, 인간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일에 계속 시도하는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여기서 코로나19의 등장과 맞물려 최근 몇년간 급상승한 키워드가 바로 '자아'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추는 체험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자아를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사회적 범주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 다시 묻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 각성된 자아는 삶의 주체성을 추구하게 되고, 달라진 시대 환경 속 새로운 관계의 변화들을 어떻게 수용하게 될지 고민에 직면했다.
 
오늘날 불확실한 미래에 고민하는 사람들 중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N잡러'가 늘어나고 있다. 직업과 수입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사람들은 당장의 현업 외에도 다양한 사회변화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제2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가치와 기준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삶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느냐'가 현대인들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된다.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현대인들은 자신이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더 몰입하려고 한다.

평생직장-연공서열-집단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직장문화와 달리, 오늘날에는 한정된 시간과 자신이 기여도에 따라 확실하고 합당한 평가보상체제를 빨리 요구하는 것으로 가치관이 변화하는 추세다. 이른바 '공평보다 공정'이다. 직장에서의 일은 '함께하는 것'에서 '각자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또한 각자의 비전이 다양해진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멘토링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최근 멘토링 연관 키워드를 보면 오은영, 아이유, 유튜버, 구독자, 크레에이터 같은 단어들이 상위권에 올라있다. 특히 아이유처럼 나에게 교훈을 줄 수 있고 본받을 만한 대상에 부합한다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가 원하는 분야의 멘토를 찾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 두드러진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다 어른'이 되어있다. QR코드, 무인점포, 스마트폰 앱, 로봇 카페 등 달라진 사회 시스템과 트렌드는, 누군가에게는 편리하지만 누군가에는 오히려 복잡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은, 오늘날의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늙는 것은 필수, 성장은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든다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성장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에는 어른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나이듦은 그저 늙는 것일뿐, 어른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책임을 깨닫는 성장을 요구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성장하지 못하면 그 사회의 짐으로 전락할수도 있고, 나의 욕망 또한 제한될 수 있다. 우리 모두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공평하지만, 자신의 성장에 얼마나 노력하고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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