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유능한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 오수재(서현진)는 야망을 추구하는 여자다. 힘을 키워 자신에게 상처준 이들을 이기고자 애를 쓴다. 그러기 위해 수재는 늘 강하고 독하며 똑 부러지게 행동한다. 이런 수재를 로스쿨 학생 공찬(황인엽)과 최윤상(배인혁)은 마음에 품는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공찬, 2회)
"난 누나를 볼 때마다 자꾸 그 때 누나를 찾게 돼. 아직은 있거든. 누나 안에 그때 누나가." (윤상, 6회)

 
이들은 강하고 야망있는 수재가 아니라 자신들이 알던 이전의 착하고 순수했던 수재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그런 수재의 모습을 찾아주려 애쓴다.  나는 이들의 이런 사랑이 회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정말 수재는 착해져야만 하는 걸까.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고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수재의 모습은 거짓된 것이니 바꿔야만 하는 걸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포스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포스터 ⓒ SBS

 
참자기와 거짓자기

대상관계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컷에 따르면 사람들은 참자기와 거짓자기를 형성해 살아간다. 여기서 참자기는 진짜 나라는 느낌을 주는 자아이며, 사람들은 참자기로 살아갈 때 생생한 나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반면, 거짓자기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발달시킨, 진짜 나와는 다른 모습의 자기를 말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사회적 역할과 의무 속에 살아가고 많은 시간을 거짓자기를 가동시켜 살아간다. 거짓자기에 지나치게 의존해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느낌, 공허감과 허무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니컷은 거짓자기를 나쁜 것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거짓자기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참자기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참자기를 드러내도 되는 안전한 환경인지 살펴보고, 참자기를 보호하는 역할로서의 거짓자기는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수재는 찬과 윤상이 파악했듯 많은 시간을 강하고 독한 모습의 '거짓 자기'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를 수재 자신도 인식하고 있다. 5회 수재는 '베프' 준희(차청화)에게 "사람들한테 욕먹고 뒷담화 들어도 다 개무시하고 절대 약한 모습 안보이려고 했어"라고 말한다. 이는 수재 스스로도 자신이 '거짓 자기'로 살아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찬과 윤상이 되살리려 하는 '착하고 순수한' 수재의 모습은 정말 '참자기'일까?
 
1회 수재는 박소영 자살 사건 후 아버지와 함께 했던 장소를 찾는다. 그리곤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어린 시절 마음에 새겨주었던 말들을 떠올린다.
 
"살면서 젤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인데 우리 수재는 착하고 똑똑하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다 마음을 내어줄 수 있거든."
"우리 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좋은 변호사가 돼야 해."
 

아버지의 이 말은 아마도 수재의 성정을 고려해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딸이 이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 역시 포함되어 있다. 사실 거짓자기가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경로는 어릴 적부터 들어온 양육자의 메시지다.

형편없는 어머니를 둔 수재로서는 (3회 수재의 어머니와 오빠들은 수재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만 취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이 자라는 거의 유일한 자양분이었을 테다. 때문에 아버지의 이 말은 수재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수재는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면들을 감안한다면, 찬과 윤상이 그토록 좋아하는 수재의 '착한 모습'도 완전한 참자기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로부터 내사받은 말들에 영향을 받은 면이 상당 부분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재의 참자기는 오래된 친구 준희와 함께 있을 때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준희는 8회 문과 전교 1등이었던 수재를 '미친년'이라고 묘사하는데 아마도 이는 수재의 목표지향적인 면을 표현한 말일 테다. 즉, 수재는 어린 시절부터 똑부러진 면을 지닌 아이였을 것이다. 동시에 수재는 준희 앞에서 강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피곤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허무한 마음과 아이 같고 여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든 모습이 수재라는 인물 안에 든 참자기의 면면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찬과 윤상은 '착하고 순수한' 수재의 모습만을 '참자기'라 여긴다. 세상 또한 수재의 전략적인 모습들을 '독하다'며 손가락질 한다. 때문에 수재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후졌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는다. 1회 아버지를 떠올리면서도 '아빠 난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라고 눈물짓고, 7회엔 찬 앞에서 자신이 "후지고 별로인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다양한 면을 존중해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결국 '자기혐오'를 키우고 만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형성한 나의 모습
  
 오수재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똑부러지는 자세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한다.

오수재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똑부러지는 자세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한다. ⓒ SBS

 
수재가 후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원래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는 강하고 전략적인 모습은 정말 잘못된 것일까? 이런 모습은 '거짓자기'이니 바꿔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수재가 겪어온 일들을 돌아볼 때, 이 거짓자기는 매우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재는 국선변호사 시절 자신이 맡았던 김동구(공찬) 사건에서 힘이 없을 때 겪는 부당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곤 "힘을 기르고 내용을 갖춰야 해"(2회)라고 다짐한다. 수재는 이를 위해 TK로펌에 입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TK로펌에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숱한 차별을 겪는다. 나아가 자신을 '키워주겠다'던 TK로펌 최태국(허준호) 회장은 수재를 도구로만 부릴 뿐이다. 최 회장의 아들 주완(지승현)의 아이를 가졌음에도 '주제를 모른다'며 내침을 당한 수재는 더 철저하게 스스로를 지켜야 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재는 그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능력과 힘을 갖추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한다.
 
물론, 수재의 이런 모습 역시 '참자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재 스스로가 선택한 '거짓자기'다.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수재는 이 거짓자기를 통해 참자기를 보호한다. 때문에 의뢰인이나 도움을 청하는 학생에게 모진 말을 뱉어내면서도 자신이 기른 힘을 이용해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고 남을 함부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도전한다. 이런 수재의 거짓자기는 위니컷이 말한 순기능적인 거짓자기라 할 수 있다. 거짓자기 덕에 수재는 착하기만 할 때보다 실질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었다.
 
 국선 변호사시절 순수하고 착한 모습의 오수재를 기억하는 공찬은 자신의 사랑으로 수재의 그런 모습을 되찾아주려한다.

국선 변호사시절 순수하고 착한 모습의 오수재를 기억하는 공찬은 자신의 사랑으로 수재의 그런 모습을 되찾아주려한다. ⓒ SBS

   
모든 사람이 '참자기'로만 살아간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참자기와 거짓자기를 유연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거짓 자기'를 형성해 자기 자신을 지켜가고,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참자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수재가 이런 면에서 매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착하지 않다'며 죄책감을 느끼는 수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도 수재를 사랑한다는 찬은 7회 수재에게 이렇게 위로를 건넨다.
 
"사람이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수 십 가지 수 백 가지 일수도 있고 그 중 한 두 개 후진 건 후진 것도 아니에요. 그냥 멋진 사람인 거지."
 
이 위로엔 '야망을 좇는 수재의 현재 모습은 후졌으며, 그럼에도 착한 예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괜찮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찬이 보여주는 이런 전제는 '여성은 야망을 좇기보다 남을 잘 돌보는 착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의 러브라인이 불편하다. 수재 같이 똑똑하고 야망있는 여성이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주려는 남자에게 끌린다는 설정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찬이 진정으로 수재를 사랑한다면, "열심히 자신을 지켜내는 지금 그 모습이 멋져요"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수재는 자신이 후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힘을 더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착해진 오수재'가 극의 결말이 아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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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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