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프로농구 스토브리그에서 '선수 대이동'만큼이나 눈길을 모았던 것은 바로 '감독교체' 바람이었다. 오프시즌 동안 프로농구 10개 구단 중 절반에 이르는 5개팀의 감독이 대거 교체됐다. 이는 프로농구 단일년도 최다 감독교체 타이기록이며 2004년 이후 무려 18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서울 삼성은 시즌 중반 사임한 이상민 감독의 후임으로 은희석 연세대 감독을 선임했고, 역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창원 LG는 조성원 감독과 결별하고 조상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과 계약했다.
 
김승기 감독은 안양 KGC를 떠나 고양 오리온을 인수한 신생구단 데이원의 초대 감독을 맡게 됐다. 김승기 감독의 이동으로 공석이 된 KGC 사령탑 자리는 김상식 전 남자대표팀 감독이 물려받았다.
 
여기에 지난 6월 20일에는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총감독으로 물러나면서 조동현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하는 깜짝 소식이 전해지며 농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2004년부터 현대모비스 지휘봉을 잡았던 유재학 감독은 무려 18년 만에 장기집권을 마감하고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프로농구 감독, 세대교체 흐름
 
작전 지시하는 추일승 감독 17일 오후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필리핀의 경기. 한국 추일승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추일승 감독 17일 오후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필리핀의 경기. 한국 추일승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프로농구 대규모 감독교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은 세대교체의 흐름이다. 2021년 기준을 프로농구 감독들의 평균연령이 52.9세였다면, 2022년에는 51.3세로 낮아졌다. 유재학-강을준-조성원 등 50대 이상의 베테랑 감독들이 물러나고 조동현-조상현-은희석 등 40대 감독들이 대거 새롭게 약진한 결과다. 오랜 세월 감독계의 주류로 군림했던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가 조금씩 저물고,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가 그 뒤를 이어받는 흐름이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신선우-최인선-김동광 등으로 대표되는 75세대(70년대학번, 50년대생)가 1세대로 활약했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63년생 3인방' 유재학-전창진-추일승을 비롯하여 김진-허재-유도훈-이상범같은 지도자들이 잇달아 등장하여 성공적으로 한 시대를 호령했다.
 
86세대는 대부분 40대 초반에 일찍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아 한 팀에서 오래 장기집권하거나(유재학, 허재, 유도훈), 여러 팀에서 성공가도를 이어가며(전창진, 추일승, 이상범) 축복받은 '감독계의 황금세대'로 꼽힌다. 매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프로의 세계에서 감독연차만 10년을 넘긴 인물들도 부지기수이며, 국가대표팀 감독만 무려 6명이나 배출했다. 86세대 감독들이 합작한 챔프전 우승횟수만 프로농구 역사의 절반이 훌쩍 넘는 14회에 이른다.
 
86세대 감독들은 단순히 팀성적과 개인적 성공을 넘어 자신만의 농구철학을 바탕으로 KBL의 리그 스타일와 지도방식을 확립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그렉 포포비치'로 불리우는 유재학 감독은 한 팀에서만 18년간 장기집권하며 외국인 선수 중심의 공격농구가 득세하던 KBL의 트렌드를 다채로운 수비전술과 조직력 위주의 농구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도 전창진 감독하면 모션 오펜스, 추일승 감독하면 빅포워드와 무한 로테이션을 떠올리는 등, 86세대 중에는 뚜렷한 개성과 스타일을 지닌 감독들이 많았다.
 
현대농구의 시대 흐름에 비교적 일찍 뒤처진 앞선 75세대와 달리, 86세대가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대를 이어가야 할 97세대의 성장이 그만큼 더뎠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97세대가 바로 그 유명한 '농구대잔치 세대'로 불리우며, 1990년대 대학농구의 인기와 프로농구 출범을 주도했던 KBL 1세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작 97세대는 선수시절의 명성에 비하여 지도자로 성공한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문경은-김승기-전희철 감독 등의 성공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이상민-현주엽-조동현-조성원 등 실패사례가 더 많았다. 선수시절의 명성으로 비교적 쉽게 기회를 얻었던 것에 비하면, 지도자로서의 체계적으로 준비되었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농구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유재학-전창진-추일승 등 1963년생 대표 명장 3인방이 선수시절에는 대부분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거나 일찍 은퇴한 대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쌓을 준비과정을 거쳤던 것과 대조된다. 감독의 재능과 창의성이 나이보다는 결국 의식의 문제라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한편으로 86세대 감독들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장기집권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그나물에 그밥이 되었다는 아쉬운 평가도 존재했다. 몇 년이나 공백기가 있었다거나, 개인적 구설수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 최근에 성과가 미미했던 인물들조차 또다시 기회를 얻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한국농구의 열악하고 뻔한 감독 인재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두 시즌간 연이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승기-전희철 감독은 97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꼽힌다. 이들은 현역 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타 출신이지만, 지도자로서 10년 가까이 코치 경험을 거치며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준비된 지도자들'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도 벌써 50대다.
 
젊은 지도자들의 성장 기대

다음 시즌부터 새롭게 등장한 40대 초보 감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쌍둥이 형제인 조상현 LG 감독과 조동현 현대모비스 감독은 다음 시즌 프로농구 초유의 '형제 감독' 대결이 성사됐다.
 
조상현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프로팀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팀 감독을 하차하는 과정에서 모양새도 그리 좋지 않아서 농구팬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더구나 LG는 전임 현주엽-조성원 감독을 거치며 몇 년째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어서 험난한 리빌딩 과정이 불가피하다.
 
조동현 감독은 부산 KT(현 수원) 사령탑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초보 감독 시절 KT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혹평을 받았던 조동현 감독은 프로농구 최다우승을 자랑하는 명문팀 현대모비스의 지휘봉을 이어받는 행운을 누렸다.
 
다행히 코치로서는 호평을 받았고 현대모비스의 팀 분위기를 누구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강점이지만, 전임자인 유재학 감독의 그늘이 워낙 거대하여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독이 될 수도 있다. 농구팬들은 KT에서의 실패경험을 자양분삼아 조동현 감독이 재기에 성공할지, 아니면 가는 팀마다 재앙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던 '제 2의 박종천-이충희'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또다른 초보 감독인 은희석 감독은 지난 시즌 최하위팀인 서울 삼성의 지휘봉을 잡아 팀 재건에 나서게 됐다. 연세대에서 선수 육성과 전술적 능력을 인정받았던 은 감독이지만, 김태환(중앙대-LG) 전 감독을 끝으로 대학무대에서 프로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도 드물다. 삼성은 바로 10년 전에도 당시 중앙대의 52연승 신화를 이끌었던 김상준 감독을 영입했으나 그해 꼴찌로 추락하며 암흑기의 서막을 알린 바 있다. '최하위팀 전력+초보 감독' 역시 프로에서는 가장 금기시되는 필패 조합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삼성의 선택에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유도훈 감독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농구단 입단식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유도훈 감독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농구단 입단식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으로 베테랑 감독들의 향후 행보에도 시선이 모아진다. 동기였던 유재학 감독이 물러나면서 다음 시즌 프로농구 최고령 감독 타이틀은 전창진 KCC 감독이 홀로 맡게됐다. 전 감독은 비시즌 이승현-허웅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며 다시 한번 우승도전에 나선다.
 
인천 전자랜드 시절부터 13년째 장기집권중인 유도훈 한국가스공사 감독도 국가대표 가드 이대성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며 86세대 감독 중 우승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시다. 화려한 멤버에 비하여 아쉬운 시즌을 보냈던 이상범 원주 DB 감독과 서동철 수원 KT 감독, 오랜만에 프로무대로 복귀한 김상식 감독은 명예회복이 절실하다. 추일승 감독은 최근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유재학 감독은 1997년 코치 시절을 포함하여 감독까지 무려 25년간이나 프로농구 현장을 빠짐없이 지켜온 유일무이한 인물이었으나 돌연 쉼표를 선택했다. 총감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직함에 불과하다.

세대교체도 필요하지만, 유재학 감독처럼 실적과 연륜을 인정받는 베테랑 감독의 존재감도 프로농구에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유재학 감독이 KBL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것처럼, 그 뒤를 이어 한국농구의 새로운 트렌드와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의 성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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