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의 스틸컷.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의 스틸컷.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출가를 하겠다며 사찰을 찾았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출가를 거절당했다. 수소문 끝에 향했던 다른 절에서마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당장은 출가를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에 데려다 준 친구와 함께 방랑생활을 시작한 '예비 스님'은 당당히 법복을 입을 수 있을까?"

28일까지 진행되는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지역 밀착 섹션 '시네마틱 강원'에 유일한 장편 영화로 이름을 올린 <오늘 출가합니다> 이야기다. 출가를 하겠다며 친구들과 '쫑파티'까지 마쳤건만 출가를 거절 당한 '예비 법사', 그리고 3년 동안 준비한 영화가 엎어진 영화 제작자의 방랑기를 담은 로드 무비이다.

강원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김성환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작품인 <오늘 출가합니다>는 영화 제작을 하다가 배우로 처음 데뷔한 나현준 배우의 생활연기, 그리고 영화를 위해 정말 삭발까지 감행하는 투혼을 보여준 양흥주 배우의 명품 연기가 돋보인다.

출가하려는데 거절을 당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출가를 결심하고 친구들을 원주로 불러모은 성민(양흥주 역). 밤을 새워 친구들과 추억을 나눈 성민은 서울에서 영화 제작을 하던 친구 진우(나현준 역)에게 자신이 몰던 차를 준다는 솔깃한 제안과 함께 출가를 하는 절까지만 바래다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 부탁을 받아 진우는 친구의 차 키를 건네받고 절로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가 않다. '오늘 출가하는데 육식을 하면 안 된다'는 성민의 고집에 콩나물국밥집을 갔다가, 콩나물국밥에 섞여 나온 오징어를 보고 성민이 가게 주인에게 따지기도 하고, 절 입구의 불교용품점에서는 '오늘 출가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짐만 들고 가려고 한다'며 법복 바지를 두고 흥정을 벌이기도 한다.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의 스틸컷.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의 스틸컷. ⓒ 평창국제평화영화제평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가자를 받아들인다는 절에 도착한 성민. 진우에게 합장을 하고 떠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의 핸드폰이 울린다. 아뿔싸. 절에서 출가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나이 제한을 성민의 나이보다 더욱 낮게 걸어두었단다. 그렇게 1박 2일로 끝날 줄 알았던 여정이 생각보다 더욱 길어진다.

다행히도 성민의 '스승님'께 오대산의 한 절에 가면 괜찮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오대산으로 향한 두 사람. 하지만 두 번째 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출가를 거절 당한다. 설상가상, 진우도 영화가 투자자와 제작자 간의 갈등 끝에 엎어지며 오갈 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결국 진우의 뚜껑이 열렸다. 진우는 성민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큰스님을 향해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성민은 이에 질 세라 원주에서 있었던 '쫑파티' 때 친구가 주었던 꿀술까지 뜯으며 절 경내에서 병나발을 불기까지 한다. 진우는 실망감에 젖어 사찰 앞 계곡에 몸을 담그고 시위 아닌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광란의 밤이 지나고, 남은 둘은 방랑자가 되어 강원도 곳곳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갑작스럽게 거사가 된 성민과 오랜 기간 힘을 쏟았던 자신의 영화를 스크린에 띄우기는 커녕 크랭크 인조차 시키지 못하게 생긴 진우의 방랑에서, 두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살펴보는 맛이 이제 남은 여정에 있다.

가볍게 보러왔다가... 강원도 풍경에 마음이 뺏기네

중년층 사이에서 화두가 되는 '중년 출가'를 다룬 영화라는 재미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던 김성환 감독다운 연출도 <오늘 출가합니다>의 맛이다. 갑작스럽게 들렀던 원래 가려고 했던 절에서 거절을 당한 뒤 다음 절을 향해 가는 길, 연화산을 넘어 오대산 산길을 넘나드는 모습에서는 탄성이 나온다.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동해 바다의 질리지 않는 연출도 볼거리이지만, 특히 800살은 족히 넘었을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담은 연출은 예술이다. 여름부터 시작해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까지 이어지는 사계절을 담은 씬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올 법한 주제의 영화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26일 대관령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오늘 출가합니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왼쪽부터) 이화정 기자, 나현준 배우, 김성환 감독이 GV를 진행하고 있다.

26일 대관령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2022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오늘 출가합니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왼쪽부터) 이화정 기자, 나현준 배우, 김성환 감독이 GV를 진행하고 있다. ⓒ 박장식

 
감독의 역량도 눈에 띈다. 장년층에 출가를 결심하는 이들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들을 조명한 내용의 미디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김성환 감독은 중년 출가에 대한 내용을 주변인, 출가를 결심한 이의 가족, 그리고 당사자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사실 이유가 있었다. 김 감독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열린 <오늘 출가합니다>의 GV에서 "아는 사람이 출가를 결심했다가 절에서 거절을 당한 뒤, 우리 동네로 와 나와 만났던 적이 있다"며, "실제로 나이 제한 때문에 예비승이 되는 것을 거절당했더라. 그 부분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며 주변의 이야기가 반영되었음을 넌지시 밝혔다.

그래서인지 <오늘 출가합니다>는 주인공의 동행자로 영화 제작자를 채택했다. 나현준 배우는 20년 넘게 영화 프로듀서나 제작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포지션에서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연찮게 원하는 포지션이 되어 출연했다고 전했다. 나현준 배우는 "감독님은 물론, 다른 스태프나 배우들 역시 믿어주고 도와주신 덕분에 큰 위기를 느꼈던 것은 크게 없었다"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 것은 물론, 아름다운 강원도의 풍경이 돋보여 눈이 참 즐거웠던 <오늘 출가합니다>. 반계리 은행나무의 사계절 모습 때문에라도 개봉관에서 한 번쯤은 더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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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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