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또는 사회집단이 무력으로 상대국가를 해하는 행위인 '전쟁'은 인류가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난이다. 전염병과 기근,자연재해처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다른 재난들과 달리 전쟁은 대부분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나 신념에 의해 발생하는 '인재'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쟁에 나서는 군인들은 단지 신분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상관의 명령에 따라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당사자나 유족들이 겪은 고통이나 상처를 생각하면 전쟁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부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영화계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트로이>나 <안시성>처럼 고대전쟁을 다룬 영화부터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플래툰> <허트 로커>처럼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벌어졌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있다. 사실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보여주는 전쟁만큼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금으로부터 72년 전,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휘두르며 싸워야 했던 한국전쟁이라는 큰 비극이 있었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태극기 휘날리며>와 <남부군> <고지전> 등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제작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유독 이 영화는 전쟁의 끔찍함이 아닌 평화의 소중함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 개봉해 전국 8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5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웰컴 투 동막골>보다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는 없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웰컴 투 동막골>보다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는 없었다. ⓒ (주)쇼박스

 
선과 악을 넘나들 수 있는 입체적인 배우

분야를 막론하고 젊은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서울예대 졸업 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8년 장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을 통해 영화에 데뷔한 신하균 역시 젊은 시절부터 '천재배우'로 불리며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칸 영화제 3회 수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신하균을 캐스팅하고 싶어 소년병 설정이었던 정우진의 연령을 높였을 정도.

신하균은 2002년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 차례로 출연해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높은 평가와는 별개로 신하균이 2000년대 초반에 출연했던 <복수는 나의 것>과 <서프라이즈> <지구를 지켜라>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딘 신하균에게는 화려하고도 찬란한 2005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하균은 2004년 원빈과 함께 출연한 <우리 형>으로 240만 관객을 모으며 부진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신하균은 2005년 여름 자신이 출연한 영화 3편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 <친절한 금자씨>(카메오 출연)가 동시에 극장에 걸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신하균이 출연한 세 편의 영화는 도합 1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고 특히 <웰컴 투 동막골>은 전국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05년 최다관객 기록을 세웠다.

2007년 <더 게임>과 2009년<박쥐>, 2011년<고지전> 등에 출연하며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던 신하균은 2011년 연말 의학드라마 <브레인>에서 신경외과 전문의 이강훈을 연기하며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까지 주로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신하균은 <브레인>을 기점으로 2013년 <내 연애의 모든 것>, 2014년 <미스터 백>, 2016년 <피리 부는 사나이>에 출연하며 TV쪽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신하균은 2019년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에서 코믹한 악역 이무배를 연기하며 1600만 관객을 웃겼고 작년에는 jtbc드라마 <괴물>에서 엄청난 열연을 펼치며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올해도 4월에 개봉했던 영화 <앵커>에 출연했던 신하균은 오는 10월 티빙을 통해 공개될 예정인 이준익 감독의 드라마 데뷔작 <욘더>를 통해 2003년 <좋은사람> 이후 무려 19년 만에 한지민과 연기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 동막골은 모르길
 
 서로를 경계하던 남과 북, 그리고 미군은 직접 잡은 멧돼지를 나눠 먹으며 마음을 열었다.

서로를 경계하던 남과 북, 그리고 미군은 직접 잡은 멧돼지를 나눠 먹으며 마음을 열었다. ⓒ (주)쇼박스

 
영화 <웰컴 투 동망골>은 지난 2002년 장진 감독이 희곡을 쓰고 연출한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금은 '배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광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고 원작자 겸 제작자 장진감독이 직접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게다가 정재영과 신하균,임하룡,류덕환 등 원작연극에 출연했던 배우들 상당수가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기 때문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연극적인 색채가 진하게 풍길 수 밖에 없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11월, 리수화(정재영 분)가 이끄는 인민군과 국군 탈영병 표현철(신하균 분)과 문상상(서재경 분), 그리고 비행기 추락으로 고립된 연합군의 스미스 대위(스티브 태슐러 분)가 동막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산 밑에서는 동족 상잔의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몇 대째 산 위에서만 살아가는 동막골 사람들은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많은 관객들이 가장 재미 있어 하면서도 의미까지 있었던 <웰컴 투 동막골> 최고 명장면 중 하나는 남북한 군인 5명과 스미스가 힘을 합쳐 마을의 골치거리였던 멧돼지를 잡는 장면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만화적이고 과장되게 연출했지만 멧돼지 포획장면은 한국군과 북한군,연합군이 처음으로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을 무찌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멧돼지 사건 후 급격히 친해진 이들은 마을 곳간을 채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돕는다.

농사를 지으며 동막골 생활에 적응해가던 남북미 연합군은 마을로 정찰 온 공수부대에 의해 동막골이 인민군 기지로 오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수화와 표현철은 동막골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동막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폭격유도를 시도한다. 리수화와 표현철, 택기(류덕환 분)가 동막골 사람들을 살려낸 후 포화를 맞으며 미소 짓는 장면을 통해 영화의 주제인 '평화'와 '반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일부 관객들은 <웰컴 투 동막골>을 친북 및 반미영화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원작자인 장진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군대라는 조직 자체를 모두 비판했다. 연합군은 민간인이 사는 동막골을 적의 거점으로 오인해 폭격을 하고 인민군은 행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다친 동료들을 죽이려 한다. 그리고 국군은 한강다리를 끊으면서 자국민들을 죽게 만드는 끔찍한 선택을 했다(이는 한국전쟁 당시 실제 있었던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3대 영화제 여우조연상 휩쓴 강혜정의 대표작
 
 <웰컴 투 동막골>을 대표하는 '팝콘비' 장면은 원작연극에는 없는 박광현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웰컴 투 동막골>을 대표하는 '팝콘비' 장면은 원작연극에는 없는 박광현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 (주)쇼박스

 
2003년 <올드보이>의 미도 역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강혜정은 <연애의 목적>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박힌 강혜정의 대표 캐릭터는 조연으로 출연했던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이었다. 여일은 원작연극에서 배우 장영남이 연기 했었는데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여일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20대 중반이었던 강혜정에게 역할이 돌아갔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막골 안에서도 모자란 아이 취급을 받는 여일은 '동막골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여일은 총으로 위협하는 연합군의 공수부대 앞에서도 총구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장난을 치다 남북미 연합군과 공수부대의 총격전 도중 총에 맞고 사망한다. 강혜정은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대한민국 영화대상의 여우조연상을 모두 휩쓸었다.

북한군 소년병사 택기는 한국전쟁이 '남한의 북침'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지만 리수화의 정정에 무안해하며 "그래도 나는 쳐내려 가지 않고 그냥 내려갔소. 가라고 하니까 간 거지"라며 바로 수긍한다. 영화 중반 이후 여일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던 택기는 여일이 공수부대의 총에 맞고 사망하자 크게 분노해 공수부대원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여일의 순수한 미소가 떠오른 택기는 총구를 내리고 여일을 생각하며 오열한다.

2002년 원작 연극 공연 당시 나이가 더 어렸던 류덕환은 여일과 친남매처럼 지내고 말이 안 통하는 스미스와도 우정을 나누며 친해지는 동구 역을 맡았다(연극에서 소년병 택기 역은 신하균보다 나이가 많은 1972년생 김일웅이 연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류덕환이 청소년에 가까운 외모로 성장하자 제작자 장진 감독과 박광현 감독은 류덕환에게 택기 역을 맡겼고 류덕환은 택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영화 속에서 중요한 한 몫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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