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KBO리그 최고의 라이벌은 단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두 주역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김광현(SSG랜더스)이다. 하지만 KBO를 대표하는 '괴물좌완' 류현진과 김광현은 같은 리그에서 활약했던 6년 동안 한 번도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2010년 5월 23일 두 투수가 나란히 선발로 예고되며 야구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하필이면 당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두 괴물의 맞대결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류현진과 김광현이 21세기를 대표하는 라이벌이라면 KBO리그 41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라이벌로 꼽을 수 있는 선수들은 역시 고 최동원과 선동열이다. 한국시리즈 4승과 3년 연속 트리플크라운(1989~1991년)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두 투수는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프로 입단 후에도 영·호남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로 80년대 중반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함께 활약하는 기간 동안 맞대결이 한 번도 없었던 류현진-김광현과 달리 최동원과 선동열은 총 3번에 걸쳐 맞대결을 펼쳤다. 두 투수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최고의 라이벌답게 3번의 선발 맞대결에서도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1987년 5월 16일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선발 맞대결은 24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퍼펙트 게임>은 '야구비수기'인 연말이 아닌 야구가 개막하는 3~4월에 개봉했다면 다른 흥행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퍼펙트 게임>은 '야구비수기'인 연말이 아닌 야구가 개막하는 3~4월에 개봉했다면 다른 흥행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외인구단> 이후 흥행작 없었던 야구영화들

<국가대표>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스포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가 무척 힘들다. 아무래도 영화내용에 과몰입하는 스포츠 팬들과 영화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영화팬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일반 대중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접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가 유행되기 전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군림하던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야구영화는 1963년 고 김기덕 감독(1934년생)이 연출하고 고 신성일 배우와 엄앵란 배우가 출연한 <사나이의 눈물>이었다. 1977년에는 '역전의 명수'로 불리는 군산상고를 모델로 한 <고교 결전 자! 지금부터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야구영화는 1986년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을 모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90년대 들어서도 야구 관련 영화는 꾸준히 제작됐다. 하지만 신현준이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나오는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는 전국 8000명을 동원하는데 그쳤고 고소영-임창정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단지 남자주인공 직업이 야구심판인 멜로영화였다. 송강호와 김혜수, 황정민, 조승우, 고 김주혁 등이 출연했던 김현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 YMCA 야구단 >도 정통 스포츠 영화로 분류하긴 힘들다.

2004년에는 비선수 출신의 프로야구 도전기를 다룬 <슈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됐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사실적인 야구경기의 구현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전국 83만 관객으로 크게 흥행하진 못했다.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광주에는 괴물투수 선동열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출발한 <스카우트> 역시 영화에 대한 호평과는 별개로 흥행에서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야구소재의 영화가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던 2011년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그린 <퍼펙트 게임>이 개봉했다. <퍼펙트 게임>은 2011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개봉했지만 <미션임파서블: 고스트프로토콜>에 밀려 전국 150만 관객에 그쳤다. 2013년에는 김용화 감독이 200억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색다른 야구영화 <미스터고>를 선보였지만 전국 130만 관객에 머물며 '야구영화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배우들의 노력으로 재연해낸 전설들의 명승부
 
 최동원(조승우 분,오른쪽)과 선동열(양동근 분)이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은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최전성기였다.

최동원(조승우 분,오른쪽)과 선동열(양동근 분)이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은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최전성기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퍼펙트 게임> 초반부를 보면 신입기자 김서형(최정원 분)이 술에 취해 선배기자에게 "최동원과 선동열 중 누가 더 센 지, 그냥 붙여보면 되잖아요?"라고 묻는다. 그 때 선배기자 강성태(김영민 분)는 한심하다는 듯 산낙지를 젓가락으로 누르며 "너 두 사람한테 걸려 있는 게 한 두 갠 줄 알아? '최동원-선동열', '부산-광주', '경상도-전라도', '연대-고대', '롯데-해태'"라고 말한다. 그만큼 최동원과 선동열은 그 시절 많은 부분을 상징하던 선수들이었다.

<퍼펙트 게임>은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끝내고 군에 입대한 조승우가 전역 후 처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최동원을 연기한 조승우는 성실한 캐릭터 연구를 통해 현역 시절 최동원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은 물론 작은 습관들까지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실제로 영화 <퍼펙트  게임>에 대해 혹평하던 평론가들도 조승우의 연기와 노력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최동원으로 완벽하게 빙의한 조승우에 비하면 선동열을 연기했던 양동근은 상대적으로 조금 어설프게 보였던 게 사실이다. 양동근 역시 조승우 못지 않은 철저한 연구로 선동열의 투구폼을 완벽하게 재연하려 했지만 영화의 실제 모델인 선동열 전 감독이 이를 만류했다고 한다. 꾸준히 투구훈련을 해오지 않았던 일반인이 단기간에 자신의 투구폼을 함부로 따라 하다간 어깨나 팔꿈치 등에 큰 부상이 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 <퍼펙트 게임> 역시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실제와 달리 각색된 부분이 많았다. 특히 화장실과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김용철(조진웅 분)과 김일권(최민철 분)의 난투극과 벤치 클리어링은 실제 경기에서는 없었던 장면이다. 만약 실제로 야구장에서 선수들끼리 주먹다짐을 한다면 그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즉각 퇴장을 당하고 향후 출전정지 등의 중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진웅이 연기한 김용철은 영화 속에서 최동원의 인기를 질투하고 사사건건 최동원에게 시비를 거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이는 당연히 최동원을 돋보이게 하려는 영화적 과장이었고 실제 김용철과 최동원은 1983년부터 롯데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절친한 사이였다. 김용철은 1988년 최동원이 선수회 관련으로 구단과 대립했을 때도 최동원의 편을 들어 구단의 탈퇴각서에 사인을 거부하다가 최동원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천만 배우' 마동석이 소심한 후보포수?
 
 '천만 배우' 마동석은 <퍼펙트 게임>에서 최동원에게 동점홈런을 터트리는 가상의 해태 후보포수 박만수를 연기했다.

'천만 배우' 마동석은 <퍼펙트 게임>에서 최동원에게 동점홈런을 터트리는 가상의 해태 후보포수 박만수를 연기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문난 칠공주>의 나미칠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최정원은 영화 <이장과 군수>,<마이 파더>,<대한이, 민국씨> 등에 출연했다가 2011년 <퍼펙트 게임>에서 열혈 신입기자 김서형을 연기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2>의 히어로 마동석은 당시 <퍼펙트 게임>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후보 포수 박만수 역을 맡았다. 프로 원년부터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설정으로 나오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대수비로 경기에 출전해 1-2로 뒤진 9회초 2아웃에서 최동원으로부터 극적인 동점솔로홈런을 터트렸다. 물론 박만수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캐릭터다.

프로야구 최고 투수지만 술을 유난히 좋아하던 선동열에게 "일탈행위가 계속되면 퇴단시킬 수 있다"라고 큰 소리치는 카리스마 넘치는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선과 악을 넘나들며 믿음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손병호가 연기했다. 다만 실제 김응용 감독은 '코끼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185cm, 95kg의 큰 체격을 가진 거구인데 손병호는 172cm, 70kg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예전 영화를 보면 오늘날 대형 스타로 성장한 배우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퍼펙트 게임>에서도 내년 7월에 개봉할 <더 마블스>에 출연하게 될 스타배우 박서준이 등장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앞두고 부산과 광주 시민들은 둘의 맞대결 결과를 예상하는데 박서준이 연기한 칠구는 광주사람임에도 노련한 최동원의 우위를 예상한다(<퍼펙트 게임> 출연 당시만 해도 엔딩크레딧에는 박서준이 아닌 본명 '박용규'로 기재됐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퍼펙트 게임 박희곤 감독 조승우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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