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2000년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괴물>,<마더>,<설국열차>,<옥자>,<기생충>까지 언제나 짧으면 2년, 길어도 4년 주기로 신작을 선보였다. 가장 텀이 길었던 시기가 <마더>(2009년 5월 28일 개봉)에서 <설국열차>(2013년 8월 1일 개봉)까지 걸린 4년 2개월이었는데 이는 <설국열차>가 무려 4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표방한 영화답게 화려한 캐스팅으로 유명했다. <괴물>의 부녀 송강호와 고아성을 비롯해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 에버렛, 2008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틸다 스윈튼이 열차의 2인자 메이슨, <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제이미 벨이 커티스를 따르는 에드가, 2012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휩쓴 옥타비아 스펜서가 아들을 빼앗긴 타냐를 각각 연기했다.

관객들의 많은 궁금증을 불러온 설국열차의 '최종보스' 윌포드는 당초 명배우 더스틴 호프먼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갔다. 하지만 호프먼은 촬영지인 체코로 이동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고 결국 봉준호 감독은 다른 배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윌포드 역의 배우가 바뀐다는 소식에 관객들은 실망했지만 이 배우가 윌포드 역에 캐스팅되면서 실망은 기대로 바뀌었다. 새로운 윌포드로 선택된 배우는 바로 <더 록>의 험멜 장군으로 유명한 에드 해리스였다.
 
 1996년 국내 극장가에서 <더 록>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인디펜던스데이> 밖에 없었다.

1996년 국내 극장가에서 <더 록>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인디펜던스데이> 밖에 없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주)

 
출연작마다 믿음직한 연기 보여주는 배우

톰 행크스나 로버트 드니로 등 6~70년대에 데뷔해 6~70대의 나이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우들은 전성기 시절 주연을 도맡아 연기하던 스타배우였거나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경력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에드 해리스는 영화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인정 받는 명배우이면서도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도 그리 많지 않고 영화제 수상 경력도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이다.

1978년 TV영화 <락포드 파일>로 데뷔한 해리스는 1981년 <모터싸이클의 기사들>, 1983년<필사의 도전> 등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심연>에서 민간석유시추선 딥 코어의 책임자 버드 브리그먼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주연 출연작 중에서 흥행작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해리스는 90년대부터 서브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출연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5년 <함정>을 통해 숀 코너리와 인연을 맺은 해리스는 이듬 해 숀 코너리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더 록>에 출연했다. 해리스는 <더 록>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전사한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관광지가 된 알카트라즈 감옥을 장악하는 험멜 장군을 연기했다. 해리스가 악역임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보인 <더 록>은 세계적으로 3억3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98년 <트루먼쇼>에서 쇼의 총 책임자 크리스토프를 연기하며 지적인 매력을 뽐낸 해리스는 2001년 <에너밋 더 게이트>에서는 독일군 저격수 학교의 교장 쾨니히 소령 역을 맡았다. 2006년에는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을 연기했고  2007년에는 밴 애플렉의 연출 데뷔작 <가라, 아이야, 가라>에 출연했다. 해리스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최종보스' 윌포드를 연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 오랜만에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2013년 <그래비티>에서 우주비행 관제센터의 목소리 연기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 해리스는 2017년 제니퍼 로렌스, 하비에르 바르뎀, 미셸 파이퍼 같은 명배우들과 함께 <마더>에 출연했다. 만으로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해리스는 국내에서 오는 22일 개봉하는 <탑건: 매버릭>에서 해군소장 체스터 '해머' 케인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더 록>을 명작으로 만들어준 비장한 인트로
 
 <더 록>의 험멜 장군 에드 해리스는 <트루먼쇼>와 <설국열차>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배우다.

<더 록>의 험멜 장군 에드 해리스는 <트루먼쇼>와 <설국열차>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배우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주)

 
<더 록>은 미 해병 수색대의 험멜 장군(에드 해리스 분)이 관광지가 된 알카트라즈 감옥을 장악하고 81명의 민간인을 인질로 잡으면서 시작된다. 알칸트라즈 섬은 교도소였을 당시 '더 록'으로 불릴 만큼 탈옥이 힘든 감옥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한 영국 첩보원 출신 죄수 존 패트릭 메이슨(숀 코너리 분)이 사면을 약속 받고 현장경험이 전무한 생화학 박사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 분)와 함께 감옥으로 역침투를 시도한다.

젊은 시절 '1대 제임스 본드'로 영국 최고의 섹시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고 숀 코너리는 1987년 <언터처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1996년 기획과 주연을 맡은 <더 록>에 출연한 코너리는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하는 매력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2012년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하일랜드의 수호자>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코너리는 지난 2020년 90세의 나이로 타개했다.

1995년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니콜라스 케이지에게도 <더 록>은 대단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으면서도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케이지는 <더 록>을 통해 관객들과 친숙한 배우가 됐다. 케이지는 <더 록> 이후 <콘 에어>와 <페이스 오프>, < 8미리 >, <내셔널 트레저>까지 꾸준히 흥행작을 선보이며 2000년대 중반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군림했다.

험멜 장군이 이끄는 해병대의 로켓탈취장면부터 메이슨과 굿스피드의 차량 추격씬, 샤워실에서의 전투, 험멜 장군과 메이슨의 긴장감 넘치는 설전, 마지막 공중폭격까지 <더 록>은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험멜 장군이 전장에서 상부의 늦은 지원 때문에 부하들을 잃고 아내의 묘비 위에 훈장을 올려 놓은 후 입맞춤을 하는 인트로야말로 <더 록>이 그저 흔한 액션 영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1996년은 <더 록> 외에도 '이단 헌트의 전설'이 시작되는 <미션 임파서블> 1편과 얀 드봉 감독의 재난영화 <트위스터>,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 등 많은 기대작들이 개봉했다. 하지만 <더 록>은 서울에서만 무려 90만 관객을 동원, 92만 관객을 모은 <인디펜던스데이>에 이어 1996년 국내 흥행 순위 2위에 오르며 국내 관객들에게 유독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특수부대 대장이 된 <터미네이터> 카일 리스
 
 마이클 빈은 <더 록>에서 SEAL 팀의 헨더슨 중령 역으로 관객들에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이클 빈은 <더 록>에서 SEAL 팀의 헨더슨 중령 역으로 관객들에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주)

 
에드 해리스가 열연을 펼친 인트로 장면 못지 않게 <더 록>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은 바로 샤워실에서 펼쳐지는 미국 네이비 SEAL 팀과 험멜 장군이 이끄는 해병대의 전투장면이다. 험멜 장군은 무의미한 살상을 막기 위해 SEAL 팀의 지휘관 앤더슨 중령에게 투항을 요구하지만 앤더슨 중령은 오히려 해병들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며 거절의사를 밝힌다. 결국 SEAL 팀은 하수구에 숨어 있던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전멸 당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군인정신을 지키다 전사한 앤더슨 중령을 연기한 배우는 1984년 <터미네이터>에서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온 전사 카일 리스 역을 맡았던 마이클 빈이었다. <터미네이터> 이후 <에이리언2>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히트작에 출연하지 못했던 마이클 빈은 <더 록>에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60대 중반이 된 최근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데이비드 모스가 연기한 백스터 소령은 험멜 장군의 오랜 동료로 긴 시간 동안 험멜 장군을 보좌해 왔던 해병여단의 2인자다. 프라이 대위(그레고리 스포리더 분)와 대로우 대위(토니 토드 분)가 험멜 장군을 배신할 때도 속임수를 써서 두 대위를 제압하려 했지만 이를 눈치 챈 배신자들에 의해 사살 당한다. 벡스터 소령 역의 데이비드 모스는 배우는 물론이고 감독과 작가, 가수까지 겸하는 만능엔터테이너다.

굿스피드의 여자친구 칼라(바네사 마실 분)는 굿스피드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에 그에게 임신소식을 알린다. 칼라는 굿스피드로부터 "세상이 점점 지옥이 돼가는 거 같아. 이런 세상에서 애를 낳아 키우는 건 그야말로 잔혹한 짓"이라는 푸념을 들은 후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며 순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굿스피드가 목숨을 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둘이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행복하게 영화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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