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해 국가대표가 된 춘천시청 선수들. 왼쪽부터 김수진, 양태이, 김혜린, 하승연 선수, 이승준 코치.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해 국가대표가 된 춘천시청 선수들. 왼쪽부터 김수진, 양태이, 김혜린, 하승연 선수, 이승준 코치. ⓒ 박장식

 
고교 시절 혜성처럼 등장해 올림픽 출전을 두고 '팀 킴'과 일전을 벌였던 선수들. 그리고 그 다음 해 기어이 국가대표의 자리에 올라 한국 첫 세계선수권 메달이라는 경력을 썼던 선수들, 하지만 이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가대표 도전에서 번번이 실패했고, 올해 초에는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선수마저 떠나며 위기를 겪은 선수들.

그런 선수들에게 다시 '봄'이 왔다. 17일 진천선수촌 컬링장에서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 결승전에서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춘천시청(스킵 하승연·리드 김수진·세컨드 양태이·서드 김혜린)이 우승을 차지했다. 춘천시청은 자신들의 데뷔 시즌이었던 2018-2019 시즌에 이어 3년 만에 국가대표 자리를 탈환했다.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선수의 이적은 위기가 아닌 팀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은 오히려 자신들의 목표를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떠났지만, 선수들은 빈 자리를 그간 가려져 있었던 4명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캔버스로 만들었다.

잘 아는 상대였기에... 더욱 긴장되었던 경기

'전력 약화다', '춘천시청에 위기다'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열린 한국선수권 예선전에서는 춘천시청 '춘시' 선수들이 경기도청을 연장전 승부 끝에 6-5로 이겼다. 춘천시청은 여세를 몰아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강릉시청 '팀 킴'에게서도 승리를 얻어내며 태극마크를 반납케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춘천시청 선수들의 3년 만 국가대표 탈환 도전 앞에 '전 동료'가 모습을 드러냈다. 올 봄 춘천시청에서 이적한 김민지 선수의 팀 경기도청(스킵 김은지·리드 설예은·세컨드 김수지·서드 김민지·핍스 설예지)이 결승전 상대로 확정된 것.

송현고등학교 선후배 선수들로 팀이 구성되었다는 공통 분모가 있는 경기도청과 춘천시청이었다. 국내는 물론 국제대회에서 서로 여러 차례 맞붙은 데다, 더욱이 올 봄 춘천시청 스킵이었던 김민지 선수가 경기도청으로 이적하면서 뜻밖의 라이벌 구도도 생겨났다. 춘천시청 선수들로서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17일 진천선수촌 컬링장에서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 결승에서 춘천시청 선수들이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17일 진천선수촌 컬링장에서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 결승에서 춘천시청 선수들이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 박장식

 
하지만 이에 그칠 수 없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뒤 만난 선수들은 국가대표까지 꼭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오랜 친구의 이적으로 인해 주변에서 가타부타 하는 이야기에 상처 대신 의지를 얻어낸 셈이었다. 그렇게, 선수들의 의지를 증명할 자리였던 두 팀의 결승 맞대결이 펼쳐졌다.

결승전 첫머리는 그런 긴장답게 팽팽하게 이어졌다. 춘천시청이 먼저 첫 엔드 후공권을 가져가 2점을 따내며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도청은 섣불리 득점을 시도하지 않고 두 번의 엔드를 블랭크 엔드로 넘겼다. 경기도청은 4엔드에서야 첫 득점으로 균형을 맞추는 두 점을 올렸다.

춘천시청도 섣불리 접근하지 않으려 했다. 춘천시청은 5엔드와 6엔드에서 차례로 블랭크 엔드를 만들어 넘긴 뒤 7엔드 공격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7엔드 위기를 맞았다. 하승연 선수가 스킵 샷에서 상대의 1번 스톤을 빼내지 못하며 빅 엔드 기회를 도리어 한 점의 스틸로 뺏기고 말았다. 

간절함의 승리... 3년의 한 풀었다

7엔드를 비록 스틸로 뺏기며 경기의 균형이 깨졌지만, 춘천시청에는 정석적으로 경기를 풀어간다면 8엔드와 10엔드 후공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 기회를 선수들은 오히려 이용했다. 일단 8엔드, 춘천시청이 두 점을 가져가며 기회를 잡았다. 후공 기회를 잡은 것을 정석적으로 활용한 것.

9엔드에도 경기도청은 파상공세를 이어갔지만, 춘천시청의 최소 실점 전략이 통했다. 경기도청은 한 점만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스코어는 4-4, 이렇게 동점 상황 마지막 엔드에 돌입했다. 후공을 가져간 춘천시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스킵 샷에서의 집중력에 따라 경기 결과가 결단날 판이었다.

하지만 춘천시청 선수들이 제대로 상대를 막아놓고 나섰다. 춘천시청은 서드 김혜린의 샷에서 자신의 스톤 두 개를 하우스 안에 흐트려놓는 데 성공했다. 하승연 선수 역시 자신의 첫 번째 스킵 샷에서 상대 가드 스톤을 피해 하우스 안쪽 1번 스톤으로 자신의 스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7일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해 국가대표가 된 춘천시청 선수들이 우승의 순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17일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여자부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해 국가대표가 된 춘천시청 선수들이 우승의 순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박장식

 
경기도청 스킵 김은지의 마지막 샷. 던져진 김은지 선수의 스톤은 웨이트가 너무나도 약했다. 하우스 입구에 걸린 스톤은 하승연 선수가 마지막 스톤을 던지지 않고도 7-4의 완승을 거둘 수 있게끔 했다. 선수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휘한 간절함이 이루어낸 승리였다.

우승의 순간, 춘천시청 선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오랜 기간 동안 아쉬웠던 한을 모두 풀어낸 듯한 밝은 표정이었다. 코치석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던 이승준 코치 역시 버선발로 달려나와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세계선수권 동메달 있으니... 이번에는 금메달 따야죠"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막내 스킵' 하승연 선수는 "팀이 재정비되고 처음 치른 대회가 국가대표 선발전이라 긴장되었는데, 코치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고, 언니들까지 도와주면서 짧은 기간에 우승까지 해낼 수 있어 기쁘다"며, "언니들은 국가대표를 해냈었는데 나는 처음이라 더욱 기쁜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김혜린 선수도 "매년 국가대표를 다시 찾아와야지, 다짐을 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짧은 기간동안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다섯이서 똘똘 뭉치고, 춘천시청 팀에서도 도와주셔서 잘 되었던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승준 코치는 "준비 기간동안 간절함이 먼저고, 실력도 먼저라고 생각해 많은 훈련을 거쳤다. 그 덕분에 이런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훈런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이번 대표선발전은 다른 사람들의 비관적인 이야기를 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하승연 선수는 마지막 스킵 샷을 던지지 않고도 우승을 확정지었다. 하승연 선수는 "잘 들어오면 마지막 샷까지 내가 언니들과 함께 해결해야 했는데, 상대의 마지막 스톤이 약하게 들어오는 게 눈에 보이고 나서 '되었다!' 하는 심정으로 기뻐했다"고 마지막 순간을 돌이켰다.
 
 춘천시청 선수들은 팔목에 '침착하자', '감각' 등의 글귀를 적어놓고 경기에 임했다. 선수들의 부담감,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간절함이 어땠는지가 보이는 듯했다.

춘천시청 선수들은 팔목에 '침착하자', '감각' 등의 글귀를 적어놓고 경기에 임했다. 선수들의 부담감,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간절함이 어땠는지가 보이는 듯했다. ⓒ 박장식

 
양태이 선수는 팀을 재정비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민지가 지금까지 해온 시간이 길었어서, 처음 떠났을 때는 막막하기도 했었다"는 양태이 선수는 "새로운 스킵이 된 승연이가 잘 해줘서, 다른 팀과 붙어도 할 만하겠다 싶었다"며 지난 어려움을 회상했다.

특히 '막내 스킵'이 부담을 가질까봐 승연이에게 '우리가 실수를 했을 때, 팀 주장으로서 가감없이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단다. 잘못한 부분을 이야기했을 때도 "선수로서, 내가 잘못했구나,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양태이 선수의 설명.

오랫동안 함께 한 김민지 선수와 두 번 맞붙은 심정은 어땠을까. 김혜린 선수는 "10년 동안 같이 하니까, 다른 팀으로 만나는 것이 어색했다"면서도, "그래도 무조건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라고 말했다. 양태이 선수도 "결승에서 민지랑 붙을 때 더 지기 싫었다"라고 이야기했다.

4년 전 국가대표를 했을 때, 그리고 지금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를까. 김수진 선수는 "4년 전에는 어렸었기 때문에 그저 '이기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겼으면' 하는 생각으로 한 끝에 이겨서 더 기쁘다"며 웃었다.

이어 국가대표 기간 동안의 각오에 대해서는 "지난 대표팀 때 경험이 있었으니, 헤매지 않고 더 잘하려 하겠다. 세계선수권 동메달은 이미 땄으니 이번에는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도 밝혔다.

국가대표가 된 춘천시청 선수들은 오는 11월 열릴 범대륙 선수권과 2023년 봄 열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스무 살에 찾아온 영광 뒤, 새옹지마처럼 찾아온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3년 만에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태극마크를 품에 안은 춘천시청 선수들이 어떤 신선한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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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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