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없는 집에 7번째 공주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바리.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약을 구해오고 신들의 신이 된다."

굿을 할 때 무당들이 장구나 북 장단에 맞춰 부르는 이야기가 있는 노래를 뜻하는 서사무가(敍事巫歌)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연극 <발이 되기>가 17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다시 만난다.

신화의 주인공 처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소수자와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연극은 모든 관객들이 차별 없이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 전 회차 배리어프리로 제작됐다. 최근 몇 년간 유행처럼 번져 제작됐던 배리어프리 연극과는 분명 다르다. 간혹 특정 관객을 위해 몇 회차만 제작되는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모든 공연을 배리어프리로 올리는 것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특정한 몇 회차만을 위한 연극을 제작하는 것도 또 다른 차별이라 말하는 연출가 겸 배우 이승우씨. 그는 이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단순한 자막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중요한 요소로 융화시켰어요. 애초부터 배리어프리로 제작된 연극이 아니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필요한 무대 언어로 자막영상을 사용했거든요."

모티브가 됐던 서사무가 신화가 제목을 짓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해하니 그 이유를 이렇게 들려줬다.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밑바닥 인생을 봤어요. 사회를 지탱하고 굴러가게 만드는 저변의 사람들이죠.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들은 이 시대의 바리데기 같았거든요."
 
 배리어프리 연극 <발이 되기>의 공식 포스터

배리어프리 연극 <발이 되기>의 공식 포스터 ⓒ 극단적인승우

 
마치 그것은 자신의 신체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의 존재로 봤던 의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에게 장벽없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신념으로 진정한 배리어프리 연극을 제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품은 사전에 촬영한 영상물, 언어의 질감과 운율이 느껴지는 모션그래픽, 작품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상과 흐름을 통해 무대 위에서 또다른 언어를 구현했다.

지난해 6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1인극의 부활을 꿈꾸며 초연을 올렸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미래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석권한 작품의 세 번째 버전이다. 배우가 중심이었던 초연과 블랙박스에 맞게 재구성한 재연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1인 배우, 다양한 영상을 표현하는 모니터 등이 객석을 찾은 관객과 하나되어 발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11일 '극단적인승우'의 대표이자 배우를 맡고 있는 이승우씨를 만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배리어프리 연극 <발이 되기>의 공연 한 장면

배리어프리 연극 <발이 되기>의 공연 한 장면 ⓒ 극단적인승우

 
-서사무가인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연극 제목 '발이 되기'를 어떻게 짓게 되었나?
"바리데기에서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지만 결국 신이 되는 신화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신화적 성격보다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을 보았다. 그것은 신화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 같았다. 사회를 지탱하고 굴러가게 하는 저변의 사람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밑바닥으로 버려지거나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시대의 또 다른 바리데기 같았다. 우리 신체에서 발도 그러하다. 가장 낮은 곳, 답답한 곳에서 묵묵히 자신이 떠받들고 있는 신체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을 보게 되었다."
 
 -지난해 6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올렸던 초연, 그해 11월에 서울미래연극제에서 선보였던 재연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다. 전작에 비해 이번 공연의 특징은 무엇인가?
"초연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꼭 해보고 싶어 대관신청은 했지만 지원금 없이 제작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힘을 빼고 배우 자체에 집중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공간만이 가진 특징을 활용해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나왔다.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신화의 내용은 간직한 채, 현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연출과 구성이었다. 재연을 했을 때는 디테일을 많이 살리려 노력했다. 특히 신화장면의 언어에서 한국 전통호흡과 어법을 다양하게 활용하려 했다. 한국적 요소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되 지속적으로 느끼고 감각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블랙박스에 맞게 동선과 배치를 조정해야 했다. 재연에 접어들며 작품의 호흡이 전반적으로 여유로워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많은 것이 변했다. 대본과 연출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그 외의 요소를 책임지는 디자이너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작품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극장이 넓어진 만큼 배우의 동선과 에너지도 훨씬 폭넓고 자유로워졌다. 제일 큰 특징은 관객이다. 이전에는 모시지 못했던 분들을 모시고자 '배리어프리'를 진행한다. 관객의 폭이 확장된 만큼 공연되는 순간 객석과 무대의 변화된 호흡이 너무나 궁금하다."

 -최근 몇 년간 배리어프리 작품이 많이 생겨났다. 단순한 자막 노출이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융화되게 만들었다"고 비결을 밝혔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배리어프리 작품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기본 지식도 없었으며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이번에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대관단체 중 의사가 있는 단체에게 배리어프리를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지원했다. 다양한 교육과 워크숍을 거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배리어프리도 종류가 다양한데, 이번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해설을 진행한다. 그런데 작품이 애초에 배리어프리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었기에, 특정 회차를 두어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공연은 원치 않았다. 그것 또한 차별의 표현이다. 모든 회차를 배리어프리로 진행하며 일반관객과 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는, '함께 보아도 재미있는', '누군가에게만 필요한 장치가 아닌, 관객 모두에게 필요한 무대 언어'로서 자막영상이 되길 바랐다. 배리어프리용 자막해설과 더불어 사전에 미리 촬영한 영상물, 언어의 질감과 운율이 느껴지는 모션그래픽,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색상과 흐름 등 입체적으로 영상을 활용하여 무대 위 또 다른 언어를 생성하도록 노력했다."

-그동안 굿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을 이어온 이유가 있는가?
"가장 한국적 연극처럼 보였다. '한국 것이 가장 좋고 이것만 하겠다'는 국수주의는 절대 아니다. 연극을 할 수 있는 표현방법과 추구할 수 있는 재미가 다양한데, 가장 원초적 형태의 것에서 출발하고 싶었고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활용해야 심도 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한국연극의 원형을 찾다보니 전통연희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굿을 선택하게 됐다. 사람과 우주자연을 이어주는 행위, 누군가를 위하고 기억하는 행위, 말과 노래와 춤과 음악이 함께 하는 연극,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무대, 이러한 재미들이 아직도 나를 굿을 통한 연극으로 이끄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시대의 발이자 바리다'라고 말한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신화 속 주인공은 처음부터 위대하지도 않고 평탄하게 신이 되지 않는다. 항상 고통과 고난과 시험을 겪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을 넘어선 자들이 신이 되고 신화가 된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발이다. 누군가의 발밑에서 일하며 타인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발. 그러나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신화를 쓰고 있으며 언젠가는 바리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바리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나 활동계획을 알려달라.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실험해보고 싶다.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다른 표현방법을 찾고,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른 관객층을 위해, 다른 재미를 찾아내고 싶다. 전혀 새로운 연극과 전혀 낯선 굿을 하고 싶다. 그러나 결국 그것 또한 연극과 굿의 일부가 되게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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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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