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잔나비 소곡집 ll :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앨범 표지

<잔나비 소곡집 ll :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앨범 표지 ⓒ 페포니뮤직


잔나비의 이번 앨범은 '초록초록'하다. 그러나 그 초록은 한낮의 쨍한 초록이 아니라, 비를 맞아 어딘가 처연한 초록이다.   

"가사가 예쁘면서도 슬퍼요."

신보 <잔나비 소곡집 ll :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의 세 번째 트랙 '여름가을겨울 봄.' 아래에 달린 한 청자의 코멘트다. 무언가가 예쁘면서도 슬프다는 건, 비를 맞은 나뭇잎이 싱그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픈 것과 비슷한 느낌인 걸까. 

"집에서, 오후에, 주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만든 곡들이에요.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잔나비 최정훈)

앨범의 소개 글이다.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앨범을 만드는 데는 아마도 실패한 듯싶다. 그 실패는 세 번째 트랙 '여름가을겨울   봄.'의 존재 때문이다. 산뜻해서 뽀송뽀송하다는 감각을 주기에 이 노래는 지나치게 촉촉하고, 아무튼 비에 젖은 나뭇잎 같아서 역부족이다. 그러니까, 좋다는 말이다. 그 실패가 무척 반갑고 달콤하다는 말이다.
 
"이 밤 누구의 사랑이 되어/ 춤을 추는가요?/ 찬 겨울 다 가고서야/ 무리를 지어 낸 마음들

내 사랑 그 애는 또 누구의 사랑이 되어/ 피고 또 피었던데/ 찬 계절이 제 몫인 듯/ 고갤 떨구는 내 마음"

이렇게 시작하는 '여름가을겨울   봄.'의 가사를 음미하기 전에 제목의 띄어쓰기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봄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건 왜일까. 그리고 봄의 발치에 마침표가 찍혀 있는 건 왜일까. 아니, 그에 앞서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여름부터 시작해 봄으로 끝나는 이 계절의 문법은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 다음의 가사가 그 이유를 모두 설명해준다.
   
"봄은 마지막 계절이 되어/ 끝이 나야 해요/ 저 피어난 꽃을 보면 그냥 내 마음이 그래요"
 
 잔나비 최정훈

잔나비 최정훈 ⓒ 페포니뮤직

 
이 곡을 만든 장본인인 최정훈은 말한다. "왜 봄은 항상 계절의 처음에 있을까요? 우리는 왜 애써 피운 꽃을 떠나 보내야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까요? 봄이 지나고 꽃이 지고 그것이 숙명이라면 나는 봄이 모든 여정의 마지막이길 바라요. 꽃 한 바탕 피우고 박수 한 번 받고 그렇게 막이 내리는 거"라고. 어떤 생각에서, 어떤 마음에서 봄이 저렇게 마지막에 뚝 띄워져 있는지, 문장의 맺음을 표시하는 마침표를 껴안고 있는지 이제 분명히 알 것 같다. 

노래는 이처럼 봄이 모든 여정의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희망보다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다음 가사 때문이 아닐까.
   
"단념, 그 일은 어려운 일도 아녜요/ 나는 아주 잘해서/ 이토록 무던한 내가/ 좋아질 때도 있어요"

단념이 어렵지 않다고, 자기는 그걸 아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화자. 대단하다고 맞장구를 쳐줘야할지, 울어줘야 할지 잘 모르겠는 가사다. 밖으로 드러나는 가사 뒤에 이처럼 숨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득실대는 게 잔나비 노래의 매력이다. 그래서 최정훈의 노래는 표면보다 이면이 더 유의미하다.       

어떤 청자는 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내 마지막이 봄이라면 뭐든 다 이겨내고 달려볼게."

이 사람은 그래도 희망을 더 많이 봤나 보다. 읽는 이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풍부한 함의를 담은 글을 문학적인 글이라고 정의한다면, 잔나비의 가사는 확실히 문학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적이다.
 
잔나비 최정훈 여름가을겨울봄 초록을거머쥔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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