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지금은 어느 대목 정도에 와있을까. 그 내용은 희극과 비극, 어느 쪽일까. 12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는 소설가 김영하 작가와 함께하는 '이야기 일체' 2편이 펼쳐졌다.
 
김영하는 자신의 타깃 독자는 아내였다고 고백했다. "아내의 생일선물로 소설을 써서 준 적도 있다. 그 소설을 준 뒤 6개월 뒤 결혼했다"고 말했다. 김영하 작가가 바라본 아내가 그대로 담긴 연애편지같은 작품이 바로 <오직 두 사람>이었다.
 
문학과 문학심리학 전공인 아내는 김영하가 집필한 작품을 가장 처음으로 읽는 독자이자 가장 냉철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김영하는 베스트셀러인 <살인자의 기억법> 초고를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정확히 몇 페이지부터 '다시 써'라고 했다"는 일화를 밝혔다. 심지어 아내가 다시 쓰라고 한 부분은 소설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었다고. 자칫 서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영하는 "조언을 거의 다 듣는다. 아내의 말을 안 듣고 책을 출간한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김영하의 작품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는 "너무 힘들어보여, 아직 젊을 때 소설에 집중해. 내가 당신을 알아, 당신은 눈앞의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이야"라는 아내의 조언에 힘을 얻어 "그래서 나는 사표를 썼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김영하 작가에게 아내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김영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와 다른 '창의성의 스위치'가 켜져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도 스위치를 켜주기 위한 준비 운동이 있다고. 한 단어를 제시하고 실제 있는 단어중 제시어와 가장 연관성이 떨어지는 단어를 이어 말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뇌는 자꾸만 익숙한 연관을 찾아내려는 습성이 있다. 멤버들은 처음엔 머릿속에서 자꾸만 비슷하게 연상되는 단어들을 지우고 전혀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는데 애를 먹었지만, 생각을 거듭하면서 점점 '뇌를 운동시키는 느낌'이라며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영하지만, 어릴 때는 특이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으며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한 사생 대회에서는 스케치북을 검게 칠하고 '밤까마귀의 울음'이라고 해석했다가 창의적이라는 칭찬 대신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훗날 성인이 되어 해외미술관에 가봤더니 김영하와 비슷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이 많았다고 한다. 양세형은 한 공익광고에서 아이가 수십장의 도화지를 오로지 검은색으로만 칠했는데 알고보니 여러 장을 모아서 퍼즐처럼 큰 고래를 표현하려고 내용이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예술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창의성을 그저 틀에 박힌 잣대로 규정하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다만 김영하는 창의성에도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부모들의 자신의 아이가 스티브 잡스처럼 자라기를 바란다. 그럴 때 '잡스처럼 되는걸 감당할 수 있겠냐' 질문한다."라고 밝혔다. 천재로 불리우는 인물들중 잡스는 대학 중퇴에 각종 기행으로 유명했고,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하루 10시간씩 잠을 자던 잠꾸러기였으며, 토마스 에디슨은 초등학교때 퇴학을 당했다. 창의적인 것과 그저 유별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가 될수도 있다.
 
김영하는 "창의적이라는게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창의적이지 않더라도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굳이 창의성을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창의력의 스위치를 꺼놓고 사는게 더 좋다. 그리고 렇게 사는 많은 분들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군인, 비행기 관제사, 철도안전관리자 등을 예로 들어 창의적이지도 않아도 정해진 룰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움직인다고 평했다.
 
김영하와 멤버들은 자리를 옮겨 이번엔 오감을 깨우기 위한 요트 체험에 나섰다. 탁트인 바다의 시원한 풍경과 바람에 멤버들은 모처럼의 힐링을 느끼며 만족스러워했다. 김영하는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등장하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바다가 주는 색다른 해방감을 설명했다.

김영하는 소설가의 직업병으로 휴가든 어디를 가도 스토리를 상상하게 되는 습관이 있다고 고백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어느 곳이든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쭉 나열해보는 것.
 
김영하는 학생들에게 '카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50가지'를 쓰게 하면 처음에는 뻔한 내용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민을 거듭면서 점점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즉석에서 '요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대리주차 요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등을 돌아가면서 제시했고 뒤로 갈수록 이색적인 상상력이 속출했다.

또한 김영하는 글을 쓸 때 정해진 틀이나 순서 없이 자유롭게 작성한다고 밝혔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첫 문장을 예로 들어 "세계적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첫 문장을 쓰고 말이 되도록 그 다음 문장을 쓰면서 길게 쓰면 글이고 소설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멤버들은 이번엔 한 사람이 한 문장씩 즉석에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게임을 진행했다. 처음엔 평이하게 전개되는듯하던 이야기는 멤버들의 애드립과 김영하의 각색 및 조언에 따라 스릴러→좀비물→코미디→막장 드라마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김영하는 "학생들에게 조별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하면 의외로 굉장히 재미가 없다. 오히려 혼자 만들라고 하면 훨씬 잘 만든다"라면서 그 이유로 "내성적인 사람들은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숨긴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주도하다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도 바로잡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영하는 이를 두고 "그래서 왜 소설가는 혼자서 일하는지 알 수 있다. 창조성은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영하는 스토리텔링의 초석을 닦는 데 있어서 "처음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뻔한 아이디어다. 뒤로 갈수록 쓸만한 게 나오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아이디어와 주제를 계속 파고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좋은 이야기란 끊임 없는 고민에서 나온다고 조언했다.
 
글을 오감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왜 중요할까. 김영하는 '감성근육'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근육을 키우면 운동을 더 잘하는 데 유리하듯이, 오감으로 잘 느껴야 잘 쓰고, 잘 써야 잘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그 순간의 감정을 좋다, 싫다로만 기록하는 것보다 오감을 동원하여 표현하면, 훗날 그 글을 다시 봤을 때 그때의 감정이 더 풍성하게 살아난다는 것.

멤버들은 김영하가 직접 만든 버터 문어 포케 요리를 함께 즐기며 배위에서 하와이의 정취를 느꼈다. '여행하는 소설가'로 알려진 김영하는 중국에서의 추방, 내전 중이던 캄보디아와 과테말라 여행기, 시카고에서 식탐 때문에 비행기 시간를 놓친 웃픈 일화 등을 차례로 언급했다.
 
김영하는 과거에도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온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읽지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는 글을 쓴바 있다. 이에 대하여 김영하는 "기억에 남을만한 경험을 했다면 고생을 해도 여행이 힘들지 않다."고 설명하며 오히려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보다 '난관을 겪는 여행'이 작가에서는 훨씬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하는 "우리는 인생이라는 책을 매일 고쳐쓰고 있는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만일 우리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나'라는 소설이 300페이지 안에 담겨야 한다면? 내 인생의 소설은 몇 페이지 쯤에 와 있을까. 김영하는 "자기의 삶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힘든 일을 당해도 견딜만해진다"라고 설명했다.
 
김영하는 자신의 현재 삶을 '240페이지' 정도라고 고백하며 "시련의 시기도 지났고, 이룰수 있는 것도 이뤘다. 소설의 끝을 잘 마무리해야 할 단계"라고 설명했다. 양세형은 절반인 '150페이지'로 해석하며 "사람도 일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이제껏 열심히 쌓아온 내공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김영하는 이를 소설용어로 '미드포인트'라고 설명하며 "등장인물-성격-갈등이 모두 공개된 상황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시점"이라고 해석했다.
 
이승기는 절반에서 조금 모자란 '142페이지'로 규정했다. "150페이지가 절반이라면, 남은 8페이지가 앞으로 인생 2막 후반전을 좌우할 수 있는 분기점"이라고 해석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이승기는 "예전엔 '나'를 위해서 살지는 않았다. 정해진 목표와 해야할 일들, 성취감으로 살았다. 그런데 만일 이대로 소설이 마무리가 된다면 내 스스로가 진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제는 나를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료들은 수긍하며 이승기가 어릴 때부터 탄탄대로만 걸어온 이미지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김영하는 돌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이 보는 이승기는 몇 페이지쯤 와 있을까. 효정은 100페이지 정도라고 비유했다. 이승기가 남은 200페이지를 채우기가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자, 김영하는 농반진반으로 "주인공이 힘들어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시련을 겪은 인물에게 애정을 느낀다. 좋은 일만 겪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냐. 일이 안 될 때 참된 성격이 나타난다. 그런걸 잘 극복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장하는 것"이고 설명했다.

막내인 효정은 자신의 인생이 아직 초반부인 30페이지 정도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고난과 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겪을 일들이 보이고 너무 기대가 된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볼게 너무 많다"며 MZ세대답게 지나온 과거보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동현은 자신의 격투기 인생을 '작은 주먹, 큰 꿈'이라는 제목으로 정의하며 300페이지로 1권이 끝났고, 두 번째 이야기를 집필중이라고 비유했다. 은지원은 의외로 결말부에 해당하는 299페이지에 비유하며 김동현과 비슷하지만 또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은지원은 "내 인생에 대입하면 할 만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여는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하여 헛살게 된 거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to be continued'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반전의 결말을 제시했다.

은지원은 게임에 비유하여 "만렙(게임의 최고레벨)을 찍으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게임들이 많다. 그처럼 다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며 그래서 이야기의 1막이 끝나면 터닝포인트로 2막이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질 인생을 기대했다. 은지원은 "2권의 장르는 또다른 모험을 찾는 어드벤쳐, 인생은 만렙부터"라고 색다른 정의를 내렸다.
 
김동현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김영하는 공감하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을 낳기 전 부모의 삶을 모른다. 부모란 책의 절반을 모르는 거다. 그 이야기는 부모인 나만 써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특별하고, 우리 각자는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인생이라는 책을 집필할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과 매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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