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포스터

영화 <브로커> 포스터 ⓒ 영화사 집

 
* 이 기사에는 영화 주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2004)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세계의 핵심 주제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고레에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가족'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상한 가족이 다수였다.

보호자의 부재로 어린 아이들끼리만 방치된 상황(<아무도 모른다>), 부모의 이혼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친자식인 줄 알았던 아들이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하는 남자(<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가족을 보여주었던 고레에다 감독은 마침내 <어느 가족>(2018)에서 예사롭지 않은 범죄자 가족의 이면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첫 한국영화로 기억될 <브로커>(2022)는 불법 입양이라는 범죄 행위로 잠시나마 유사 가족 형태를 만들게 된 주인공들의 여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어느 가족>의 주제 의식과 긴밀한 연결성을 취한다. 
 
 영화 <브로커> 힌 징먄

영화 <브로커> 힌 징먄 ⓒ 영화사 집

 
장대비가 쏟아진 늦은 밤,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앞에 아들 우성을 두고 간 소영(이지은 분)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우성을 팔고자 하는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 상현과 동수를 영유아 인신매매 현행범으로 잡고자 하는 경찰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이주영 분)의 대결로 이어지는 듯하다. 허나 다음날 우성을 되찾고자 하는 소영의 등장으로 상황은 예기치 않게 돌아가게 되고, 결국 상현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소영을 동행하는 걸로 일단락 시킨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기를 잘 키워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결시켜 준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지닌 상현과 동수, 끔찍한 범죄에 휘말려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소영, 상현과 동수의 검거를 위해 조작 수사를 계획하는 수진 등 선악의 딜레마가 공존하는 <브로커>의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명분 또한 뚜렷해 보인다. 때문에 <브로커>는 극중 소영, 상현, 동수, 수진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동조되지 않으면서, 그들의 행동을 섣불리 비판할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갖게 된다. 

주인공들의 생각지도 못한 선택
     
베이비 박스 문제에 있어서 유독 어머니에 대한 비난만 큰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브로커>를 제작했다는 고레에다 감독. 그는 돈을 위한 인신매매 범죄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모두 다 우성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축복하는 여정을 통해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을 어머니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책임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시킨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았고 설상가상 범죄에 연루되어 우성을 버려야 했던 소영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상현과 동수의 검거를 위한 잠입수사 중 우연히 소영이 우성을 버리는 모습을 목도한 수진은 "키울 수 없으면 아예 낳지를 말지" 하면서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수진이 불법 입양 브로커로 활동하는 상현과 동수를 수사하고 아이를 버리는 소영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우성의 안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수진이 할 수 있는 건 우성을 베이비 박스 앞에 두고 간 소영을 대신해 베이비 박스 안에 잘 넣어주는 것 그뿐이다. 
 
 영화 <브로커> 한 장면

영화 <브로커> 한 장면 ⓒ 영화사 집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준다고 둘러대고 있지만 실상은 돈이 우선인 상현과 동수의 사정 또한 그럴싸하다. 정도 많고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도박빚 때문에 불법 입양 브로커가 되어야 했던 상현과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사는 동수는 통상 악역으로 묘사되는 범죄자도 마냥 나쁘게 그리지 않는 고레에다 감독의 특징 중 하나다. 상현과 동수에게 불법 입양 브로커가 될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이 있다고 그들의 범죄까지 미화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베이비 박스에 놓여진 아이들이 상현과 동수와 같은 입양 브로커들 때문에 자신들을 잘 키워줄 수 있는 훌륭한 보호자를 만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 편만 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의 선택은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아기(우성)에 대한 축복과 염원이다. 어렵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태어나길 잘했어'를 마음에 품고 살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 우성을 둘러싼 여정의 시작점은 제각기 달랐지만 궁극적으로는 우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보여준 주인공들의 선택은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만약 내가 소영 혹은 수진, 상현, 동수라면 우성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브로커>의 주인공들처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포기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상처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유사 가족의 형태를 이루면서 아픔을 치유하는 따뜻한 장면들에 숨겨진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상한 가족을 통해 너무나도 당연해서 간과하고 있었던 통념들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는 고레에다의 장기는 여전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http://neodol.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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